김영광을 모델로 기용한 BYC. /사진제공=BYC 홈페이지 화면캡처
김영광을 모델로 기용한 BYC. /사진제공=BYC 홈페이지 화면캡처



# 아버지의 셔츠 속에 비친 새하얀 메리야스, 통풍성 좋은 소재로 무더운 여름을 책임지던 시원한 모시메리, 첫 월급을 타자마자 부모님에게 선물한 빨간 내복부터 첨단섬유기술이 적용된 발열내의 제품까지.
BYC, 쌍방울, 남영비비안 등 국내를 대표하는 토종 속옷 브랜드들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긴 세월 동안 국민의 실생활 깊은 곳에 스며들며 성장했지만 내수침체, 저출산, 대형 SPA(제조·유통일괄형)브랜드 침공 등에 밀려 점점 설자리를 잃고 있는 것.


초여름 페스티벌 중인 보디가드. /사진= 보디가드 홈페이지 화면캡처
초여름 페스티벌 중인 보디가드. /사진= 보디가드 홈페이지 화면캡처


◆3년 실적 들쭉날쭉… 점유율 ‘뚝’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토종 속옷 브랜드를 운영하는 업체들은 최근 수년간 적자와 흑자를 넘나들며 불안정한 실적 흐름을 보이고 있다.

‘비비안’을 보유한 남영비비안은 지난해 매출이 1.5% 줄어든 2061억원, 당기순손실 67억원을 기록해 적자로 돌아섰다. 2017년 4억9000만원의 영업이익을 올리면서 흑자 전환한 지 1년 만에 다시 적자로 돌아선 것. 매출은 소폭 줄었지만 판매비, 관리비 등 각종 비용이 늘어나면서 적자를 면치 못했다는 설명이다.


쌍방울. /사진=쌍방울 홈페이지 화면캡처
쌍방울. /사진=쌍방울 홈페이지 화면캡처


‘비너스’로 대표되는 신영와코루는 지난해 영업이익이 전년보다 87% 줄었고 속옷 전문기업인 코튼클럽도 지난해 매출은 706억원으로 5% 증가했지만, 당기순이익은 44%나 떨어진 48억원에 그쳤다.
속옷 브랜드 ‘보디가드’를 운영하는 좋은사람들은 2016년과 2017년 2년 연속 40억원대 적자를 기록했지만 제조원가 등 비용을 절감한 덕분에 지난해엔 25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하며 흑자 전환했다. ‘트라이’를 보유한 쌍방울 역시 각종 비용을 줄여 3년 만에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수익성 개선 작업을 벌이고 있는 BYC는 지난해 매출과 당기순이익이 전년 대비 각각 1%, 30% 증가한 1979억원, 91억원을 기록했다. 하지만 당기순이익 중 66%는 건설 및 임대사업 매출이었고 섬유부문 매출은 33%에 그쳤다.

들쭉날쭉한 실적 탓에 토종 속옷 브랜드들의 점유율도 꾸준히 하락하고 있다. 시장 조사 회사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속옷시장에서 가장 높은 점유율을 자랑해 온 BYC의 시장점유율은 2013년만해도 7.5%였으나 지난해엔 5.5%까지 떨어졌다.

3년 전 4%대 시장점유율로 2위를 기록했던 속옷 전문기업 코튼클럽은 2017년부터 3위로 밀려난 후 지난해에는 점유율이 3.6%까지 떨어졌다. 신영와코루의 비너스 역시 지난해 점유율이 3.4%, 남영비비안의 비비안은 지난해 점유율이 2.7%로 하락했다.


비비안브라. /사진제공=비비안
비비안브라. /사진제공=비비안


◆SPA, 해외브랜드, 홈쇼핑 공세에 밀려
토종 속옷업체들이 고전을 면치 못하는 건 한정된 파이를 나눠먹는 상황이 됐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유니클로 등 SPA 브랜드에 게스, 캘빈클라인 등 해외 이너웨어 브랜드까지 활동 중이다.


이 뿐 아니다. 아웃도어 브랜드들도 이너웨어를 만들고 대형 유통업체도 PB(자체상품)를 통해 속옷시장에 진출한 상황이다. 여기에 홈쇼핑을 공략하는 신규 브랜드도 잇따라 속옷사업에 발을 들이고 있다.

실제 토종 속옷 브랜드의 부진 속에 해외 브랜드가 틈새를 비집고 시장점유율을 늘리고 있다. 세계적인 속옷 브랜드 헤인즈 브랜즈의 원더브라는 2009년 국내 발매를 시작한 후 2013년 속옷 시장점유율이 1.4%에 불과했지만 지난해 4.4%로 치솟았다. 이로써 원더브라는 국내 속옷시장 점유율 2위 브랜드로 우뚝 섰다.

국내 패션 브랜드 점유율 1위인 SPA 브랜드 ‘유니클로’는 속옷시장에서도 선두권에 속한다. 유니클로의 속옷시장 점유율은 2013년 2.2%였지만 지난해에는 3.1%로 뛰어 점유율 4위를 차지했다.

업계 관계자는 “SPA브랜드가 공격적으로 매장을 확대하고 고급 외국 란제리브랜드가 홈쇼핑까지 진출하면서 국내 속옷브랜드의 입지가 줄어든 것이 사실”이라며 “브랜드의 정체성을 잃지 않은 선에서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소비자의 니즈를 파악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마트PB 데이즈의 퓨징 모델컷. /사진제공=데이즈
이마트PB 데이즈의 퓨징 모델컷. /사진제공=데이즈


◆시장 이미지 벗고 재기할까
토종 속옷업체들은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젊은 매장·상품’을 콘셉트로 내세우며 재기를 도모하고 있다. 좋은사람들의 보디가드는 매장 리뉴얼을 통해 젊은층 끌어안기에 나섰고 남영비비안은 젊은층을 겨냥한 디자인과 가격대의 제품을 확대하는 등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스포츠브라, 와이어를 숨긴 ‘히든와이어’ 브라 등으로 트렌드에 대응하는가하면 로드숍과 아웃렛을 위한 전용 제품인 ‘퓨어 앤 에센셜’도 출시했다. 이 제품은 심플하고 젊은 디자인에 합리적인 가격이 특징이다.

대리점 위주로 영업해온 쌍방울은 백화점 매장을 늘려가고 있다. 특히 백화점에는 기존 대표 브랜드 ‘트라이’보다 고급화한 새 브랜드 ‘티콜렉션’을 선보이면서 중년 남성들이 선호하던 백색 내의에서 탈피한 디자인으로 젊은층 공략에 나섰다.

BYC도 배우 김영광을 모델로 발탁하는 한편 서울 강남 유명 클럽에서 유명 가수를 불러 파티를 여는 등 젊어진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보수적인 분위기의 국내 속옷업계에서 BYC의 행보는 파격적이라 당시 큰 주목을 받았다.

이처럼 토종 브랜드들이 고급화 전략을 내세우는가 하면 유통망을 확대하는 등 다양한 출구 전략을 마련하고 있는 상황. 하지만 아직까지 이렇다 할 성과가 드러나지 않아 올해 매출 하락폭이 더욱 클 것으로 업계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속옷업계 관계자는 “변신을 꾀하고 있는 토종 속옷업체들이 젊은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을 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면서도 “아직까지 쌍방울과 BYC 등 대표적인 토종 브랜드는 재래시장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 쉽게 상황을 반전시키긴 어려울 전망”이라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91호(2019년 5월7~13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