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8코리아세일페스타 당시 명동 거리. /사진=뉴스1 DB |
세계 최대 쇼핑행사인 중국 광군제와 미국 블랙프라이데이(블프)를 앞두고 소비심리가 들썩이고 있다. 광군제는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업체인 알리바바가 매년 11월11일 진행하는 할인행사다.
2009년 시작한 광군제는 10년 만에 4000배 이상 성장해 지난해 하루 동안 2135억위안(약 34조7000억원)의 매출을 냈다. 미국에서는 추수감사절(매년 11월 넷째주 목요일) 다음날인 금요일(11월29일)에 연중 최대 할인행사인 블프가 열린다. 이날 하루에만 미국 소매업 연간 매출의 20~30%가 발생할 정도로 소비가 집중된다.
국내에서도 글로벌 쇼핑 대목을 잡기 위해 ‘코리아세일페스타’(코세페)가 열린다. 코세페는 정부가 2015년 미국 블프를 벤치마킹해 만든 행사로 올해 5회째를 맞는다. 그간 코세페가 9~10월에 진행됐던 것과 달리 올해는 11월1~22일로 일정을 조정했다. 지난해 대비 행사 기간도 2배 이상 늘렸다. 행사 주체는 정부 주도에서 민간 주도로 바꿨다. 중국 광군제와 미국 블프에 발 맞춰 정면 승부하겠다는 각오다. 하지만 정작 업계와 소비자들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이유가 뭘까.
◆소비자·제조사 모두 외면하는 코세페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올해 코세페 참가 신청 기업은 총 589개사(10월22일 기준)다. 코세페에 참여하는 제조·유통·서비스업체는 해마다 늘고 있다. 행사 첫해인 2015년 92개 업체에서 2016년 341개, 2017년 446개, 지난해 451개로 꾸준히 증가했다.
하지만 소비자들의 호응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할인 품목이 적은 데다 할인율도 크지 않아서다. 지난해 코세페 행사를 살펴보면 신상품 할인율은 10~30%, 재고상품은 50%에 그쳤다. 이는 온라인 최저가를 활용하거나 백화점 및 브랜드 정기세일을 이용할 때와 유사한 수준이다. 반면 중국 광군제와 미국 블프는 50% 안팎의 세일이 기본이고 최대 90% 할인가의 재고떨이 상품도 나온다.
참여업체 입장에서도 코세페는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다. 지난해 코세페 참여업체는 총 451개사로 2015년보다 4.9배 증가했으나 매출은 4억5000원으로 시행 첫해 수준을 유지했다. 코세페가 가져오는 경제효과가 미미하다보니 기업들은 참여 자체를 저울질 하는 모양새다.
반면 중국 광군제와 미국 블프는 매출 효과가 뚜렷하다. 국내 제조업체들이 글로벌 쇼핑 축제로 눈을 돌리는 이유다. 지난해 광군제 당일 중국인들의 해외직구 구매 순위에서 한국은 3위를 차지해 전년 대비 순위가 두 계단 상승했다.
특히 국내 패션·화장품업체들이 좋은 실적을 거뒀다. 아모레퍼시픽 설화수의 윤조에센스는 티몰에서 오픈 1분 만에 1만개가 매진됐고 마몽드 BB쿠션은 1시간 만에 8만개 이상 팔렸다. LG생활건강의 후는 광군제 하루 동안 천기단 화현세트를 6만1000개, 숨37는 워터풀 세트를 2만6500개를 판매했다. 이랜드그룹의 중국법인 이랜드차이나는 하루에 4억4400만위안(약 723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 광군제나 미국 블프는 전세계에서 구매 수요가 넘치는 탓에 박리다매가 가능하다”면서 “이와 달리 코세페는 시장이 한정적이고 소비자들의 관심이 적어 마냥 가격을 낮추기 어렵다. 할인액만큼 판매액을 늘려 보충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올해 유통사마저 등 돌렸다
제조업체의 외면 속에 코세페는 지난 4년간 유통업체 중심 행사로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유통업체 역시 할인 여지가 크지 않다. 유통구조상 제품의 가격결정권이 제조업체에 있기 때문이다.
미국 블프는 유통사들이 직매입한 제품을 재고 소진한다는 차원에서 시작한 행사다. 유통사가 직접 상품을 사다 마진을 붙여 판매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자연스레 재고가 생긴다. 재고관리 비용이 부담스러운 유통사 입장에서는 역마진을 감수하면서 대폭 할인에 나서는 것이다.
반면 국내 백화점과 아울렛은 대개 직매입 방식이 아닌 특약매입 방식으로 운영된다. 쉽게 말해 유통업체가 직접 제품을 구매하지 않고 제조업체에 판매 공간을 빌려주는 셈이다. 백화점은 입점 브랜드로부터 상품을 외상 매입해 판매한 후 판매수수료를 공제한 상품대급을 지급한다. 판매하고 남은 제품은 반품도 가능하다. 백화점이 재고 부담을 지지 않는 데다 가격 결정권이 제조사에 있어 파격적인 할인이 불가능한 구조다.
올해는 이마저도 시원찮다. 백화점업계가 공정거래위원회 지침에 반발해 코세페 참가에 미온적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다. 최근 공정위는 백화점의 특약매입 방식이 제조업체에게 판촉비용을 부당하게 떠넘길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백화점이 정기세일 가격할인분의 절반을 부담하라는 내용의 ‘대규모유통업 특약매입거래 심사지침’ 개정안을 내놨다.
이를테면 정가 20만원짜리 상품을 세일기간에 50% 할인해 10만원에 판매할 경우 할인비용 10만원 중 절반인 5만원을 백화점이 부담해야 한다는 의미다. 기존에는 백화점이 할인분의 10%, 즉 1만원만 부담하면 됐다.
백화점업계는 산업부와의 협의 끝에 코세페 참여를 결정했지만 할인 규모는 위축됐다. 국내 5개 백화점(롯데·현대·신세계·AK·갤러리아) 모임인 백화점협회는 공정위 지침대로 할인비용의 50%를 분담하게 되면 영업이익이 25% 줄어든다는 분석을 내놨다. 반면 할인행사를 하지 않으면 영업이익 감소율이 7~8%에 그쳐 코세페를 비롯한 정기세일을 실시하지 않는 게 낫다는 입장이다.
백화점업계 관계자는 “백화점에 할인가 절반을 부담시키면 정기세일을 하지 않거나 소극적으로 진행하게 될 것”이라며 “올해는 코세페에 참여하지만 할인행사 대신 사은품 증정, 점포 이벤트가 주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616호(2019년 10월29일~11월4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