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최동원. 롯데자이언츠 제공
최동원영화 ‘퍼펙트게임’이 케이블채널 OCN에서 20일 오후 방영되며 故 최동원에 대한 관심도 올랐다.
‘퍼펙트게임’은 2011년 개봉한 영화로, 선동열과 최동원이 투수로 맞붙었던 화제의 프로야구 경기를 생생히 재연했다.

선동열과 최동원은 고려대-연세대, 호남-영남 등 학연과 지연 모두 당시 한국사회 양극을 달렸고, 나란히 ‘국보급 투수’ 후보에 올라있었다. 또한 호남과 영남을 대표하는 프로야구팀 해태 타이거즈와 롯데 자이언츠의 에이스로 경쟁을 펼쳐나갔다.


‘선동열 대 최동원’ 경기는 총 3번 열렸고, 영화는 1987년 5월16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린 마지막 대결을 그렸다. 이 경기는 15회까지 두 전설적인 투수가 처음부터 끝까지 마운드를 지키며 2 대 2 무승부를 기록했다. 선동열은 232개, 최동원은 209개 투구를 기록할 정도로 치열한 승부를 벌였다.

영화 ‘퍼펙트게임’ 포스터.
1958년생인 최동원은 경남 남해 출신으로 구덕초·경남중·경남고를 졸업한 뒤 연세대학교에서 대학 선수 생활을 했다.
1981년 실업야구팀 롯데 자이언트에 입단했다. 그 해에 17승4패 기록을 세우고 코리안시리즈에 진출한다. 코리안시리즈에서는 1차전에서 6차전까지 모두 등판해 2승1패1세이브를 기록해 팀이 우승하는데 일조했다. 최동원은 최우수선수, 다승왕, 신인투수상 3관왕에 올랐다.

이후 한국전력공사로 이적했다 프로리그로 올라간 롯데 자이언츠에 1983년 입단한다.
프로 데뷔 첫해 208.2이닝(5위), 평균자책점 2.89(11위), 탈삼진 148(4위)를 기록했다. 9승16패를 올렸는데 8승은 완투승이었다. 25세 프로 데뷔 선수로서는 준수한 성적이었다.

1984년은 최동원 이름 세 글자를 각인시킨 해였다. 삼성과 맞붙은 한국시리즈에서 1차전 선발로 완봉승을 거둔 것을 시작으로 3차전 완투승, 5차전 완투패, 6차전 구원승, 7차전 완투승으로 4승1패를 올리며 롯데 자이언츠의 창단 첫 우승을 이끌었다.


그러나 화려한 활약은 ‘선수 혹사’로 이뤄진 것이었고, 청소년기부터 이어져온 무리한 투구로 기량은 하향곡선을 그렸다.

1988년에는 ‘프로야구선수협회’ 창설을 주도해 구단과 사이가 벌어졌다. 결국 대규모 트레이드로 삼성에 보내졌다. 그는 프로야구계에 실망해 미국으로 출국했다 이듬해 삼성에 복귀했다. 그러나 전성기에 혹사당한 여파에 구단들에 대한 실망이 겹쳐, 김성근 당시 감독의 만류에도 은퇴를 결정한다.

은퇴 후 지도자로 변신한 그는 2001년과 2005~2006년 한화 이글스 투수코치를 지냈다. 이어 2006~2008년 한화 2군 감독을 맡았다. SBS와 KBS스카이스포츠에서 해설자로도 활동했다.

이색적으로 ‘정치 경력’도 있다. 1991년 ‘꼬마 민주당’에 입당했다. ‘꼬마 민주당’은 민주정의당(대통령 노태우)-통일민주당(대표 김영삼)-신민주공화당(대표 김종필)의 3당 합당에 반대한 의원들이 모여 만든 정당으로, 당시 이기택과 노무현 등이 주축이었다. 당명은 민주당이지만 ‘꼬마 민주당’으로 불린다.

1991년 6월에는 김영삼의 지역구인 부산 서구에 광역의회 의원 후보로 출마했지만, 37.8% 득표로 낙선했다.

그는 2010년 지병인 대장암으로 요양 생활을 하다 경기 고양시의 한 병원에서 향년 53세로 숨졌다. 롯데 자이언츠는 최동원의 등번호 11번을 영구결번으로 지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