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디오판독이 진행 중인 가운데 헤드셋을 착용한 심판진. /뉴스1 © News1 이성철 기자

(서울=뉴스1) 정명의 기자 = 이솝 우화 중에 당나귀를 팔러 가는 아버지와 아들의 얘기가 있다. 주변에 휘둘리지 말고 확실한 주관으로 정확한 판단을 해야 한다는 교훈이 담긴 얘기다.
처음에 당나귀를 끌고 걸어가던 부자. 주변의 지적에 따라 아들이 탔다가, 아버지가 탔다가, 부자가 함께 탔다가, 결국엔 당나귀를 장대에 매달아 짊어지고 가던 중 버둥거리던 당나귀가 강에 빠져 죽는다.

멍청하다고 욕먹고, 버릇없다고 욕먹고, 아동학대라고 욕먹고, 잔인하다고 욕먹고. 계속해서 비난을 받던 부자는 소중한 재산인 당나귀를 잃고 만다. 흔히 귀가 얇다고 하는 사람의 나쁜 예다.


심각한 판정 논란에 홍역을 앓고 있는 한국야구위원회(KBO)가 돌아볼 만한 얘기다. 지난 22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KIA 타이거즈와 키움 히어로즈의 경기에서 대형 오심이 발생했다. 규정 미비로 일어난 비극이었다.

KIA가 3-0으로 앞선 8회말. 1사 주자 없는 가운데 이정후의 타구가 중견수 김호령에게 잡혔다. 김호령은 점프해 공을 잡아낸 뒤 펜스에 살짝 부딪히면서 착지하는 호수비를 선보였다. 그러나 2루심 최수원 심판은 타구가 펜스에 맞았다고 판단, 2루타를 선언했다. 이후 키움의 집중타가 터지면서 승부가 뒤집혔고, 키움의 4-3 역전승으로 경기가 끝났다.

KBO리그에는 비디오판독이라는 오심을 바로잡을 수 있는 제도가 있다. 그러나 이날 경기의 오심은 번복할 수가 없었다. KIA가 앞서 2차례 판독 신청 기회를 모두 소진했기 때문. 현행 규정상 양 팀에게는 각각 정규이닝 동안, 번복 여부와 관계없이 2차례의 신청 기회가 주어진다. 연장전에 들어가면 1차례씩 더 기회가 생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한 보완책이 지난해 도입됐다. '구단의 신청과 별도로 경기당 1회에 한해 심판의 재량으로 비디오판독을 실시할 수 있다'고 KBO리그 규정에 명시돼 있었다. 그러나 이 규정은 한 차례 논란을 남긴 채 1년 만에 폐지됐다.

한화 이글스, KT 위즈의 팬이라면 기억하고 있을 장면이다. 2019년 7월6일 대전에서 열린 경기. 7-8로 뒤진 한화의 9회말 마지막 공격 1사 만루 찬스에서 김태균이 유격수 땅볼을 쳐 병살타로 이닝이 종료됐다. KT 선수들은 승리 세리머니까지 펼쳤다.

경기는 끝난 것이 아니었다. 한용덕 당시 한화 감독이 덕아웃을 박차고 나와 심판에 항의했다. 비디오판독이 실시됐고, 김태균이 1루에서 세이프된 것으로 판정이 뒤집혔다. 극적으로 8-8 동점을 만든 한화는 연장 끝에 9-8 역전 끝내기 승리를 챙겼다.

심판 재량으로 실시한 비디오판독의 좋은 예였다. 판독 결정 시점이 조금 늦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오심을 바로잡았다. 그러나 곧장 논란이 들끓었다. '떼쓰면 들어준다', '평소엔 실시한 적이 없다' 등의 쟁점을 빗나간 비난이 KBO와 심판들을 향해 날아들었다.

그래서일까. '심판 재량 비디오판독'은 1년 만에 폐지됐다. 확대 적용해야 한다는 일부 주장도 있었지만 묵살됐다. 이제서야 류중일 LG 감독의 "오심을 번복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는 발언이 공감을 얻고 있다.

폐지 이유가 '형평성의 문제'라는 말도 들린다. '재량'이라는 모호한 기준이 낳는 부작용도 분명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최우선 가치인 '정확한 판정'을 포기할 정도는 아니다.

최근 프로야구의 핵심 가치로 떠오른 '스피드업'도 심판 재량 판독 규정을 폐지한 이유 중 하나로 보인다. KBO는 올 시즌 심판 재량 판독 폐지와 판독 시간 단축(5분→3분)을 한데 묶어 발표했다. 경기 시간을 줄이기 위해 정확한 판정에 필요한 3분도 아깝다는 판단했다면 그야말로 큰 패착이다.

프로야구는 10개 구단이 6개월 넘게 치열하게 싸우는 대장정이다. 그 과정에서 구단별로 각기 다른 불만이 나올 수밖에 없다. 모두의 입맛을 충족시키긴 불가능에 가깝다. 프로야구의 단기, 중장기 계획에 따른 각종 정책도 신경 써야 한다. 당나귀를 짊어진 부자처럼 KBO의 규정이 왔다 갔다 한 이유다.

단 하나.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되는 것이 있다. 바로 심판 판정의 정확성이다. 주변에서 어떤 비난이 들려도, 어떤 과제가 눈앞에 있어도 KBO는 오심을 줄이기 위한 방법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한다. 이번 논란은 차치하더라도 흔들리지 않는 주관을 가져야 하는 게 KBO에 요구되는 자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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