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심언기 기자 = 당정은 의과대학 정원을 2022년부터 매년 400명씩, 10년에 걸쳐 4000명을 추가 양성하는 안을 지난 7월23일 발표했다. 10년 간 지역에서 의무 복무하도록 하고 지역 의대도 양성하는 장밋빛 청사진이다.
모든 국민들이 수도권-지방 어디에 살든 양질의 진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든다는 취지에는 충분히 공감한다. 의료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 지역별 불균형을 바로잡는다는데 반대할 이 누가 있을까.
문제는 단순히 의사 숫자만 늘려 해결하려는 탁상행정에 있다. 인기과 편중, 비인기과 기피라는 근원적 불균형의 고착화에 대해선 깊이 있는 분석이나 성찰이 없다. 의료계 반발이 뻔히 예상되는데도 최소한의 의견수렴 과정도 거치지 않은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현재도 매년 3000여 명의 의사가 배출되고 있다. 하지만 이들 대부분은 기초의학이나 중증외상외과·흉부외과·소아외과를 외면한다. 대신 성형외과·피부과 등을 선호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의료수가 때문이다.
일이 힘든데 의료수가도 낮은 비인기 분과에 비해 인기 분과는 상대적으로 업무강도가 낮고 의료사고 위험부담도 낮다. 비급여 항목이 많은 인기 분과는 벌이도 낫다. 의료인으로서의 사명감이란 허울만으로 책임은 무겁고 실리는 적은 분과에 이들을 묶어두기는 역부족이다.
의료계에서 의료수가 인상 혹은 현실화 주장이 제기되면 늘 '제 밥그릇 챙기기'란 딱지가 붙는다. 의료수가 인상이 곧 건강보험료 부담으로 이어질 것이란 국민 우려가 밑바탕에 깔린 것으로 보인다. '의사=고소득 전문직'이라는 뿌리깊은 인식도 저항감에 한몫 한다.
하지만 냉정하게 현실을 돌아보면 낮게 묶여 있는 의료수가로 인한 부작용과 폐해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병·의원들은 급여 항목을 최소한의 필수 인력으로만 유지할 뿐 수익을 낼 수 있는 비급여 진료에 주력한다. 이국종 교수로 대표되는 중증외상센터가 병원 입장에서는 '계륵' 보다 못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원인이다.
진료를 하면 할수록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현 의료체계 속 기초의학·기피과가 설 자리는 없다. 해당 분과에 대한 의사 개인의 뚜렷한 신념 외에는 지원 유인이 없다. 손해를 감수하며 운영하는 3차 의료기관들조차 운영 확대를 주저하는 실정이다. '진료 수요'는 높지만 '의사 수요'가 적은 아이러니는 여기서 시작된다.
때문에 매년 3000명의 의사가 배출돼도 비급여 진료로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성형외과·피부과만 문전성시를 이루고 비인기과는 빈자리 메우기에도 허덕인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들에게 돌아온다. 성형외과는 당일 진료·수술이 가능하지만, 정작 생명과 직결되는 중증외상 관련 치료는 응급상황이 아닌 바에야 석달씩 대기하는 경우가 흔한 현실이다.
이같은 미스매치는 현재 배출되는 의사 인력부족 문제가 아니라는게 의료계 전반의 공감대다.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 역시 잘 알고 있을 터다. 하지만 의대정원 확대 등 7·23 정책을 내놓는 과정에서 복지부는 뒤로 숨었고 의료계의 의견 수렴과정도 없었다.
당정이 의대정원 확대를 발표한 지난달 23일 코로나19 확진자는 59명을 기록했다. 광복절 집회 및 사랑제일교회 등 교회발(發) 감염 확산이 분출하기 전 시점으로, K-방역 성과에 대한 우호적 여론이 상당한 시기였다. 그 때문인지 대한민국 의료 체계를 뒤흔들 설익은 정책은 최소한의 공론화 과정도 거치지 않고 일방 추진됐다.
대통령이, 총리가 연일 의료계를 강경하게 압박하는 말들을 쏟아내고 있지만, 의료계는 여전히 격렬하게 반발하고 있다. 코로나19 최전선에서 분투해온 소위 '비인기 분과' 의사들의 반발이 가장 거셌다.
뿌리를 도려내는 수술 대신 영양주사로 이파리만 늘리는 단발성 대책이란 비판이 빗발친다. 감염병과의 전쟁 선봉에 서온 의사들 등에 비수를 꽂았다는 배신감도 상당하다.
그럼에도 의료계의 감정적 대응이 지지를 얻기는 힘들어 보인다. 어떠한 대의명분으로도 코로나19 감염자가 폭증하는 현 시국에서의 파업은 대중에게 환자와 국민 생명을 볼모로 한 이익추구 행위로 비춰지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상황이 엄중한 만큼 이제는 '강대강 대치'를 벗어나 정부와 의료계가 한 발씩 물러날때다. 의학전문대학원 좌초를 겪은 의료인들을 설득하기 위해선 정부가 정책 수정 가능성도 열어두고 의료계 의견을 허심탄회하게 수렴해야 한다. 의료계 역시 당면한 국가비상 사태 극복에 조건 없이 힘을 보태는 것이 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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