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온라인으로 열린 시집 '능소화가 피면서 악기를 창가에 걸어둘 수 있게 되었다' 출간간담회에 안도현 시인이 참석해 말하고 있다.(창비 유튜브 캡처)© 뉴스1

(서울=뉴스1) 이기림 기자 = 2013년 7월이었다. 안도현 시인의 절필 선언이 있던 때는. 그는 당시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에 박근혜 전 대통령의 이름을 거론하며, 박 전 대통령이 대통령으로 있는 나라에서는 시를 단 한 편도 쓰지 않고 발표하지 않겠다는 글을 올렸다.
2017년 4월이었다. 안도현 시인이 다시 시를 선보인 때는. 안 시인은 2016년 12월 박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하고, 대법원에서 그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가 무죄로 확정되며 다시 시를 쓰기로 했다. 그리고 약 4개월 만에 '그릇'과 '뒤척인다'를 발표했다.

그리고 2020년 9월, 안도현 시인의 신작 시집 '능소화가 피면서 악기를 창가에 걸어둘 수 있게 되었다'(창비)이 세상에 나왔다. 무려 8년 만에 안도현의 이름을 달고 나온 시집이다. 그래서일까, 22일 온라인으로 열린 출간 간담회에서의 안 시인의 모습에서는 설렘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실제 그는 "첫 시집을 낸 것처럼 두근거린다"고 말했다.


안도현 시인은 한국 서정 시단을 대표하는 시인이기도 하지만, 정부를 비판하며 절필까지 할 정도의 기질도 있다. 그가 이런 정신을 갖게 된 건, 20대를 보낸 1980년대의 한국사회가 혼란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안 시인은 "시인으로서 세상의 큰 움직임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시가 세상을 바꾸는 데에 역할을 해야 한다고 믿고 있었다"고 말했다. 당시 그의 머릿속에는 민주화, 통일, 노동해방이란 개념들로 가득했다.

20대 초반에 등단한 그는 30년 넘게 시를 써오면서 이 생각에 갇혀 있었다. 그는 "시를 쓰면서 스스로 세상에 바라던 것들이 많았다"라며 "세상은 움직이지 않고 버티고 있는데, 나 혼자 조바심 내고 시로 무엇을 해보려 하고 있더라"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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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계획에 있던 절필은 아니었지만, 오히려 이 기간에 그는 '휴식'을 취했고, 변화의 계기를 마련했다. 그는 "휴식을 보내고 나니, 시에 대한 욕심도 덜 부리게 되고, 뭐든 쓸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이같은 시인의 달라진 생각이 담긴 시가 '식물도감'이다.
식물에 관한 짧은 시를 연작시처럼 쓴 시로, 시구 중 한 문장이 시집의 제목으로 쓰이기도 했다. 그는 "원래 식물을 좋아하는데, 시간이 갈수록 식물이라는 게 사람 못지않다고 생각된다"며 "사람보다 시간을 빨리 알아채는 것 같고, 미래를 예측하는 것 같기도 하고, 때로는 영혼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그런 식물에 대한 느낌, 체험을 시라는 이름으로 소개한 것이다.

이런 접근법은 이미 육체적으론 성장이 끝난 시인의 정신적 성숙함을 더욱 견고하게 만들었다. 안 시인은 최근 40년간 살아온 전북을 떠나 고향인 경북으로 돌아왔다. 귀향한 그는 농촌살이를 하면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뿐만 아니라, 사람과 동식물, 자연과의 관계에서도 겸손함을 가지고, 낮게 조용히 살아야한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또한 "조금 더 작고, 느린 것들의 가치를 시로 써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안 시인은 마치 갓 등단한 시인처럼, 또는 첫 시집을 낸 시인처럼 꾸준히 시를 쓰고 있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집에만 있다 보니 생긴 일이기도 하지만, 독자들에게 있어서는 다행인 일이다. 또한 동네 고등학생들에겐 세상의 사물을 바라보는 방법을 가르치는 선생님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최근에는 계간지 예천산천을 만들어 고향을 외부에 알리는 일도 하고 있다. "악순환은 되풀이되지 않을 거라 생각"하는 안도현 시인은 그렇게 조용히, 겸손하게 살아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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