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옥중에서도 반푸틴 활동은 계속됐다. 그의 SNS는 여전히 살아있었다. 먼저 유튜브를 통해 푸틴 대통령의 '호화 궁전' 의혹을 폭로했다. 검은 돈을 끌어모아 흑해 인근에 호화 저택을 지었다는 얘기였다.
영상 속에선 카지노와 폴댄스 무대, 영화관 등 각종 유흥시설이 포함된 1조4000억원짜리 아방궁이 3D 컴퓨터그래픽으로 생생하게 펼쳐졌다. 모두가 경악했다.
나발니가 푸틴의 '호화 궁전'이라고 주장하는 건물. <출처=알렉세이 나발니 유튜브>
파장은 컸다. 나발니를 없는 사람 취급하던 푸틴 대통령은 이례적으로 직접 해명에 나섰다. 이미 10년 전부터 제기된 의혹이며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푸틴 대통령과 막역한 사이로 알려진 러시아 올리가르히(재벌) 아르카디 로텐버그는 해당 저택이 자신의 것이라며 비호에 나서기도 했다.
폭로 카드는 더 남아있었다. 나발니는 푸틴 대통령이 내연녀와의 사이에 숨겨진 딸을 두고 있다며 루이자라는 열일곱 살 소녀의 신상을 공개했다. 이 소녀의 SNS에는 샤넬과 입생로랑 등 각종 명품 브랜드 제품으로 도배한 사진들이 올라왔다. 호화 생활을 누리고 있다는 증거였다. 이는 러시아 청년들의 상대적 박탈감을 자극했다.
나발니의 콘텐츠가 반푸틴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러시아 국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문제도 잘 짚어냈다. 또다른 영상에서는 러시아 내 빈부 격차 문제를 날카롭게 고발했다. 공개 직후부터 큰 파장을 일으킨 이 영상은 조회수가 1억6000만회를 넘었다.
그렇게 반정부 시위는 영하 50도 맹추위 속에서도 러시아 60개 도시를 뜨겁게 달궜다. 도화선은 나발니의 구금이었으나 이미 러시아인들의 불만은 장작처럼 쌓이고 있었다. 지갑 사정 때문이다. 러시아 통계청은 지난해 자국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3.1%로 잠정 집계됐다고 밝혔다. 세계 금융위기 여파가 있던 2009년 이후 11년만에 가장 큰 후퇴다.
러시아인들은 이를 피부로도 느끼고 있다. 지난해 러시아 국민들의 실질 소득은 전년대비 3.5% 감소했다. 실업률은 5.9%로, 2011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시위대는 살을 에는 한파 속에서도 "푸틴은 도둑놈이다"라는 구호를 외쳤다.
반정부 활동을 이어가던 지난 8월, 나발니는 시베리아 톰스크 공항에서 차를 마신 뒤 기내에서 갑자기 쓰러졌다. 독일로 이송된 후 극적으로 목숨을 건졌다. 독일 의료진은 그가 독극물에 노출됐다고 결론지었다.
독일 연방군 연구소와 프랑스, 스웨덴 연구관은 그가 신경안정제 노비촉을 접한 것으로 추정했다. 노비촉은 전직 러시아 스파이 세르게이 스크리팔의 독극물 피습 사건에도 사용된 물질이었다. 사건의 배후로 러시아가 지목된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나발니는 의식이 끊겨있는 동안 국제사회에서 체급을 키웠다.
이 사건은 서방이 대러시아 제재를 강화할 명분을 제공했다. 유럽연합(EU)은 인권 제재를 위해 새로 도입한 법을 러시아에 처음으로 적용한다. EU 외무장관들은 나발니의 구속 수감을 주도한 러시아 고위 관리 4명을 제재하기로 합의했다. 이 법은 인권 침해에 개입된 개인이나 단체에 제재를 가할 수 있도록 하는 미국의 '마그니츠키 인권책임법'과 유사하다. 마그니츠키 또한 나발니처럼 러시아 권력층의 부패를 폭로했던 인물로, 2009년 옥중에서 곤봉으로 폭행을 당해 사망했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인권 문제를 중시하는 조 바이든 행정부 또한 나발니의 독살 시도 등을 사유로 러시아에 제재를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렇게 나발니는 자유롭지 않은 몸으로도 푸틴 대통령을 수세로 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