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 2019.7.23/뉴스1 © News1 구윤성 기자

(서울=뉴스1) 이장호 기자 =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에 연루돼 재판에 넘겨진 전직 법관들에게 23일 처음으로 유죄가 선고됐다.
이번 유죄 판결로 재판 개입을 직권남용죄로 처벌할 수 있는지를 놓고 법원이 엇갈린 해석을 내놓으면서 법원 안팎에서는 "유죄 판결한 재판부가 직권남용죄의 구성요건을 지나치게 확대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사법행정권자, 판사에 대한 지적권 있어" vs "재판 관여 권한 없어"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2부(부장판사 윤종섭)는 23일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기소된 이 전 상임위원에게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이민걸 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에게는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먼저 사법행정권자인 대법원과 법원행정처의 재판 사무 핵심 영역에 대해 지적할 수 있는 권한(지적 권한)을 갖고 있다고 봤다.

재판부는 "법원조직법과 예규 등을 살펴봐도 행정처가 담당판사에게 잘못을 지적할 수 있다는 명문 규정은 없다"면서도 "판사가 나태하거나 숙련이 안 돼 장기미제사건 처리를 지연한 경우 대법원장이 판사 상대로 어떤 지적도 할 수 없다고 보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따라서 판사에 대한 인사 사무가 인정되는 한 명문 규정이 없더라도 그에 수반해 재판 사무 핵심 영역에 대한 지적권한은 대법원장과 행정처의 사무에 해당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사법행정권자는 재판 개입 권한 자체가 없기 때문에 직권남용죄가 성립할 수 없다는 기존 법원 판결과는 다른 해석이다.

지난해 2월 가토 다쓰야 전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의 박근혜 전 대통령 명예훼손 재판 등에 개입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임성근 전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 사건의 경우 1심 재판부는 임 부장판사의 행위가 위헌적 행위라고 하면서도 무죄를 선고했다.

직권남용죄는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해' 다른 사람에게 의무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권리행사를 방해한 때에 성립한다. 즉, 남용할 직권이 존재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 같은 논리를 토대로 당시 재판부는 임 전 수석부장판사에게 재판에 관여할 일반적 직무권한이 없기 때문에 임 부장판사의 행위가 부적절하더라도 직권남용죄로 처벌할 수 없다고 봤다.

정리하면 임 전 부장판사 재판부는 사법행정권자가 법령상 명시된 직무감독권 등의 권한만 갖고 있을 뿐 재판에 개입할 권한 자체가 없어 직권남용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본 것이고, 이 전 위원 등 재판부는 사법행정권자가 재판 관련해 지적권한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 지적권한을 넘어서 특정방향으로 권고를 할 경우에는 직권을 남용한 것이라고 본 것이다.

◇ "직권남용 유죄, 2심서 깨질 가능성 높아"

법원 안팎에서는 유죄 판결의 근거가 된 사법행정권자의 재판사무 지적권한에 대해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이들의 행위가 부적절하긴 하지만, 사법행정권자의 지적권한이라는 법령상에 없는 권한을 만들어 적용해 유죄를 선고한 것은 지나친 확장해석이라는 취지다.

A 부장판사는 "형사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엄격한 해석"이라며 "죄형법정주의에 따라 미리 규정해놓은 요건에 명백하게 해당했을 경우만 처벌하는 게 우리 형사법의 대원칙"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법령상 명시적 권한이 없는데도 헌법과 예규 등을 종합적으로 해석해 구성요건을 확대해 적용한 것은 형사법의 해석 원리랑은 맞지 않는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부장판사 출신의 B 변호사도 "심급제도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재판청구권과 재판독립이 충돌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사법행정권자가 판사에 대해 지적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는 해석 자체가 잘못된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재판을 잘못 했으면 상급심에서 파기를 하는 거지, 행정권자가 이를 지적을 할 수 있는 권한은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부장판사 출신의 대형로펌 C 변호사도 "상급심에 가면 깨질 수도 있다"며 "부당한 재판개입에 대해 유죄를 선고하기 위한 궁여지책"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지금까지 법원행정처에서 부당하게 압력을 행사했고, 판사들도 법에 그런 권한이 없는 걸 알지만 '어떻게 안 따르겠냐'고 하면서 양심을 버리지 않는 한도 내에서 줄타기를 해왔다"며 "윤 부장판사가 이런 부분이 처벌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이런 논리를 들고 나온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러나 판결문에도 나온 '지적권한'은 사법행정에 관한 것이다. 사법행정에 관한 지적을 넘은 것이라면 아예 권한 자체가 없는 것"이라며 "일반 국민의 입장에서는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현재 직권남용죄 법리로 보면 임 부장판사 사건 재판부의 논리가 더 맞다"고 설명했다.

전현직 법관들은 이번 판결이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에서 있어온 대법원과 법원행정처의 재판부 간섭을 일정부분 합법화 한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냈다.

A 부장판사는 "이번 판결이 사법행정권자의 재판부에 대한 개입 여지를 넓게 해석했다는 측면이 있다"며 "앞으로 이 정도 선에서는 개입이 가능하고, 어느 정도 선을 넘으면 형사처벌 받을 수 있다는 건데 그 기준이 무엇인지에 대해 또 논란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B 변호사도 "재판을 이상하게 하면 사법행정권자가 지적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는 건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를 일으켰던 사람들의 논리"라며 "사법행정권자들이 재판에 대해 어떤 식으로도 간섭을 해서는 안된다는 게 사법권남용 사태를 겪은 보통 판사들 주장인데, 이번 판결은 그 같은 흐름과는 역으로 가는 해석을 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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