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알몸 배추’ 영상이 국내에 퍼지면서 중국산 김치 불매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그래픽=김은옥 기자

# 땅을 파서 만든 구덩이에 비닐이 씌워져 있다. 비닐 안엔 누런 구정물에 절인 배추가 가득 담겨 있다. 윗옷을 벗은 남성은 이 물에 들어가 맨손으로 배추를 마구 휘젓는다. 절인 배추를 옮기는 덴 녹슨 굴착기가 동원된다.

이 모습을 담은 영상이 중국의 한 김치 공장에서 찍힌 것으로 알려지면서 국내에 ‘제2의 김치 파동’이 일고 있다. 해당 영상이 몇 년 전에 촬영됐으며 국내에는 영상 속 절임 배추가 수입되지 않는다는 정부의 해명에도 중국산 김치 불매 운동은 점차 확산되는 양상이다.
중국의 ‘김치 공정’도 불매 운동에 불이 붙는 계기가 됐다. 김치를 자국 문화로 편입하려는 중국의 시도가 계속되고 있어 이를 막기 위해서라도 중국산 김치 소비를 중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중국에 김치를 수출하는 국내 기업도 타격을 피하지 못할 전망이다.

“중국산이에요?”… 김치 원산지 따진다


이른바 ‘알몸 배추’ 영상이 국내에 퍼지면서 중국산 김치 불매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일본을 상대로 한 ‘노 재팬’ 운동처럼 조직적이진 않지만 저질 김치가 개인위생과 건강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만큼 적극적이고 자발적인 중국산 불매 운동이 벌어지는 모습이다.


회사원 이모씨(30)는 “식당에서 원산지를 일일이 확인할 만큼 까다로운 편이 아니었는데 중국 배추 영상을 본 뒤로는 원산지를 꼭 확인한다”며 “중국산일 경우 손도 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직장인 정모씨(51)도 “밖에선 김치를 아예 먹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경기도 평택에서 감자탕집을 운영하는 김모씨는 “중국산 김치 때문에 난리를 치르고 있다”고 토로했다. 그는 “오는 손님마다 원산지를 물어 입이 닳도록 ‘국산 김치를 쓰니 걱정 말고 드시라’고 얘기한다”며 “그런데도 김치 잔반이 예전보다 많다”고 설명했다.

경기도 평택에서 감자탕집을 운영하는 김모씨는 “중국산 김치 때문에 난리를 치르고 있다”고 토로했다. /사진=김경은 기자

“수입 김치 문제없어” vs “찜찜하다”


논란이 계속되자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문제의 영상 속 김치는 국내 수입 김치와 무관하다며 해명에 나섰다. 통관 단계에서 국내 기준·규격에 적합한 중국산 절임배추 및 김치만 수입을 허용하고 있다는 게 식약처의 설명이다.

식약처에 따르면 중국산 절임 배추 및 김치는 통관단계에서 제품의 성질·상태·맛·색깔을 확인하는 ‘관능검사’와 물리·화학·미생물학적 오염상태 등을 확인하는 ‘정밀검사’를 진행한다. 지난 12일부터는 검사 단계를 한층 강화했다.


영상 속 김치가 국내에 수입될 가능성도 낮다. 식약처는 “해당 영상은 2020년 6월 중국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것이며 중국 정부는 이런 절임 방식을 2019년부터 전면 금지하고 있다”며 “우리가 일반적으로 섭취하는 김치를 제조하는 데 사용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하지만 불안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과거부터 중국산 김치 관련 논란이 끊이지 않아서다. 2005년에도 중국산 김치에서 납이 검출된 데 이어 기생충 알까지 나오면서 ‘김치 파동’이 벌어진 바 있다. 당시 중국산 김치 16개 제품 중 9개에서 기생충이 발견돼 판매가 중단됐다. 같은 해 또 다른 조사를 통해서는 중국산 김치에서 중금속이 3배 이상 확인되기도 했다. 2013년에도 중국산 김치에서 병원성 대장균이 검출돼 식약처가 판매를 금지하고 회수 조치했다.

누런 구정물에 절인 배추가 가득 담겨 있다. 이 모습을 담은 영상이 중국의 한 김치 공장에서 찍힌 것으로 알려지면서 국내에 ‘제2의 김치 파동’이 일고 있다./사진=온라인 커뮤니티


이처럼 중국산 김치의 위생 문제가 반복됐지만 국내 소비는 이어졌다. 김치 파동이 본격화한 2005년 11월엔 중국산 김치 수입량은 4107톤으로 전년 동기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이듬해 11월에는 14만7261톤으로 54% 증가했다.
2009년에도 수입이 반짝 감소한 바 있다. 음식점의 김치 원산지 표기를 의무화하는 식품위생법 일부 개정안이 시행되면서다. 당시 중국산이 표기된 식당 김치에 대한 거부감이 커지면서 연간 수입량이 14만8100톤으로 전년(22만2300톤)에 비해 33.3% 감소했다.

하지만 중국산 김치 소비는 다시 살아났고 이후에도 매년 큰 폭으로 증가하면서 지난해 수입량이 28만1186톤을 기록했다. 이는 국내 연간 김치 소비량(약 200만톤)의 15% 규모다. 수입액으로 따지면 1억5242만달러로 전체 수입액의 99%를 중국산이 차지한다.

‘중국 수출’ 국산 김치도 불매… 왜?

중국산 김치 불매 운동으로 중국에 김치를 수출하는 국내 기업도 홍역을 앓고 있다. /사진=뉴스1

중국의 김치 공정도 불매를 부추기고 있다. 중국 유명 유튜버가 김치를 중국 음식으로 소개하는가 하면 중국 최대 포털사이트 바이두 백과사전에 ‘김치의 기원은 중국’이라는 내용이 표기되는 등 중국의 김치 왜곡이 날로 심해지는 상황.
국내에서는 김치 종주국 위상을 지키기 위해 중국산 김치 의존을 끊어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결과적으로 중국산 김치의 위생 문제와 국산 김치의 위상 문제가 결합해 불매를 이끌고 있는 셈이다.

불매 운동이 확산되면서 중국에 김치를 수출하는 국내 식품업체도 홍역을 치르고 있다. CJ제일제당·대상·풀무원 등이 중국에 김치 관련 제품을 수출하면서 김치 대신 ‘파오차이’(泡菜)로 표기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다.

중국 식품안전국가표준(GB)에 따르면 현지에 수출하는 김치는 파오차이로 표기해야 하며 이를 어기면 현지 사업에 제한이 따른다. 이에 현지에서 김치를 생산·수출하는 국내 기업은 ‘울며 겨자 먹기’로 파오차이라는 표기를 사용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식품업계 한 관계자는 “현지 표기법을 따를 수밖에 없는 노릇”이라며 “정부가 조만간 공청회를 열어 관련 애로사항을 듣는다고 하니 정부 대책 마련에 기대를 걸 뿐”이라고 말했다. 다만 농림축산식품부는 “‘김치’ ‘KIMCHI’ 등 외래어를 한자어 파오차이와 병기하는 방식으로 표시 가능하다”고 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