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공개된 이한열 열사의 일기에서 학생으로서의 평범한 일상 외에 삶과 세상에 대한 진지함과 다짐을 확인할 수 있다. 그가 쓴 편지를 통해 어머니에 대한 애틋함도 엿볼 수 있다.
지난 1987년 당시 이 열사는 민주화 시위과정에서 전경이 쏜 최루탄을 맞고 사망했다. 이를 계기로 6월 항쟁은 전국적으로 확산했다.
이번에 복원된 기록은 이한열기념사업회에서 소장하고 있는 이 열사의 유품이다. 고교생 시절의 기록과 압수·수색 영장, 부검결과 등 6월 항쟁과 관련된 기록들이다.
지난 1982년 12월31일에는 "17세의 이 나이에 나는 과연 무엇을 남겼는가?…오늘은 한해를 보내는 기분이 다른 때와는 전혀 다른 생각이 든다. 지금까지 나는 한해 한해 나이 먹기를 원했으며 빨리 컸으면 하는 생각이었다… 올해는 무엇보다도 정신적 바램이 컸던 해라고 본다. 나의 생각 나의 사상은 점점 어떤 확고한 가치관을 통해서 한발 한발 나아가는 듯한 기분이 든다"라고 썼다.
이듬해 1월3일에는 "오후에는 '도산사상'이란 책을 읽었다. 우리 민족의 선각자인 안창호 선생의 사상을 잠시나마 엿볼 수 있었다. '성실'이란 두글자가 내 마음을 몹시 흥분하게 했다. '성은 하늘의 도리요, 성(誠)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인간의 도리라' 그렇다. 인간은 모든 일에 완전할 수 없다. 인간의 참 모습은 최선을 다하는 것 그리고 또 한층 노력하는 것, 바로 그것이 우리들"이라고 기술했다.
이 열사의 신문에 실린 새마을 수련회 참가기와 당시 부모님께 쓴 편지에서 그가 수련을 통해 얻은 깨달음과 국민과 국가에 대한 성숙한 인식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열사 어머니의 애끓는 심정을 알 수 있는 기록도 공개됐다. '1987년 6월9일 5시5분쯤'으로 시작하는 글에서는 "우리는 떨리는 걸음으로 중환자실 문으로 들어갔다. 우리 한열이가 왜 그래요? 정말 눈으로 볼 수 없을 정도로 의식이 없고 코, 입, 산소 호흡기를 온몸에 착용해서 이름도 모르는 기계에 의해 호흡하고 있었으니… 27일 동안을 말 한마디 못해 보고… 한열이는 7월5일 2시5분에 우리 곁을 떠나고 말았다"라고 적어 학교로부터 위독한 상황을 전달받은 순간부터 중환자실에서 임종을 맞이하기까지 겪었던 상황과 심정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6월 항쟁과 관련한 기록에는 사망 이후의 '압수수색 검증영장'과 '부검결과 이물질 규명 중간보고'가 있다. 이 중간보고는 당시 이한열 열사의 주치의가 부검 과정을 수기로 남긴 한 장의 기록으로 이 열사의 머릿 속에서 발견된 이물질의 분석 내용과 직접적인 사인이 '최루탄 피격'임을 나타내고 있다.
이번에 복원된 기록물 원문은 국가기록원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향후 이한열기념사업회와 e-뮤지엄에도 공개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