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완성차업체가 잇따라 전기차용 배터리 개발과 생산을 예고하면서 관련 업계가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사진은 폭스바겐 드레스덴 공장에서 전기차 ID3를 조립하는 장면. /사진=로이터
글로벌 완성차업체가 잇따라 전기차용 배터리 개발과 생산을 예고하면서 관련 업계가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그동안 완성차업체는 전기자동차의 핵심부품인 배터리를 전문 제조사로부터 수급해 왔지만 앞으로는 이 같은 구도가 깨질 수 있어서다.

점차 엄격해지는 환경규제에 대응하기 위해 자동차의 전기동력화는 필수로 꼽힌다. 내연기관은 기름을 태워 폭발력을 얻지만 이 과정에서 배출가스가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만큼 배출가스 양을 줄이거나 아예 없애려면 전기모터의 힘을 활용할 수밖에 없다.
이런 이유로 앞으로 자동차는 전기모터를 구동하기 위한 에너지인 ‘전기’를 저장하는 배터리와 수소전기차의 ‘스택’처럼 전기를 만들어내는 장치가 핵심기술 중 하나로 꼽힌다. 완성차업체가 배터리 등 핵심부품 제조에 관심을 기울이는 배경이다.

전기차시장 더 커진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자동차 시장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인해 조업중단과 각국의 봉쇄조치 등으로 전년 대비 13.7% 감소한 약 8091만대로 집계됐다.

이 기간 전기동력차 시장은 엄격해진 환경규제와 함께 각국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정책 등에 힘입어 전년 대비 44.6%가 증가한 약 300만대 규모의 판매량을 기록했다
지난해 순수전기차(BEV)는 전년 대비 34.7% 증가한 202만대 판매를 기록했다. /자료=한국자동차산업협회, 그래픽=김민준 기자
. 특히 이 중 순수전기차(BEV)는 전년 대비 34.7% 증가한 202만대를 기록하며 200만대 판매를 돌파했다. 전기차 모델 수도 크게 늘었다. 2019년 BEV는 85개 제조사에서 189개 모델이 판매됐지만 지난해는 98개 제조사가 271개 모델을 내놨다.

자동차업계에서는 유럽과 중국의 전기차시장 패권경쟁에 미국이 뛰어든 점을 주목한다. 유럽연합(EU)은 2030년까지 1990년과 비교해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절반으로 줄이도록 하는 강력한 규제를 내건 상태다. 이에 유럽 각국은 강력한 정부 지원책에 힘입어 전기차 판매량을 끌어올리고 있다.

이처럼 주요 지역에서 전기차 대량 생산이 예고되면서 전기차 배터리 시장도 폭발적 성장이 예상된다. 시장조사업체 IHS마킷에 따르면 올해 배터리 생산량은 지난해 대비 80% 증가한 236GWh로 예상된다. 이는 전기차 300만대 이상에 탑재될 수 있는 양이다.

업계 관계자는 “유럽연합은 2050년까지 완전한 탈 탄소 목표를 제시하며 강력한 전기차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며 “미국 바이든 행정부는 현재 유럽과 중국에 뒤처진 상황을 인지하고 유럽과 같은 목표를 내거는 등 빠른 추격 의지를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이런 움직임에는 글로벌 완성차업체의 배터리 확보 경쟁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생각을 바꾼 완성차업계

현대자동차의 초급속충전소 E-PIT /사진제공=현대차
글로벌 완성차업계는 지난 100년 동안 엔진과 변속기 기술로 높은 진입 장벽을 구축해왔다. 엔진은 자동차를 움직이는 힘을 만들어내고 변속기는 그 힘을 효율적으로 바퀴에 전달하는 역할을 맡는다. 자동차의 핵심인 이 두 부분을 얼마나 잘 만드느냐가 기술력의 바로미터였다.

자동차회사들은 서로의 특허를 피해 저마다의 방법으로 관련 기술개발을 이어왔다. 엔진은 연료의 분사방식과 함께 공기 흡입 방법을 다양화했고 변속기는 기어의 단 수를 늘리면서도 오히려 무게를 줄이는 기술을 만들어내 주목받았다.

하지만 전기차는 업체마다 기술적으로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핵심부품 공급사가 자동차 제조사의 계열사가 아니어서다. 게다가 시장은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완성차업체가 배터리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수입차 업계 관계자는 “과거엔 다른 회사로부터 엔진과 변속기를 공급받는 일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자존심이 매우 상할 만한 상황으로 여겼다”며 “하지만 현재는 전기모터와 배터리를 만드는 전문 업체로부터 부품을 사 오면 되기에 전기차 제조 진입 장벽이 매우 낮아진 셈”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최근 완성차회사는 급격한 전동화 시대를 마주하면서 고민이 컸던 것으로 전해진다. 국산차업계 관계자는 “수많은 협력사는 핵심기술 개발과 함께 제품 최종 조립을 담당해온 완성차업체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며 “하지만 최근 전동화 시대가 열리며 차의 핵심인 구동 계통의 주도권이 오히려 배터리 회사 등 새로운 협력사로 넘어간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완성차회사들은 결국 배터리 내재화를 추구하기 위해 노력할 수밖에 없고 이는 여러 의미가 있다”고 덧붙였다.

자동차업계에서는 완성차회사들이 배터리 직접 설계와 생산에 관심을 보이게 된 계기로 전기차 보급 경쟁과 반도체 생산 부족 사태를 꼽는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완성차업체가 최근 전기차를 앞세워 경쟁을 벌이면서 가격을 낮추는 게 관건이 됐고 결국 차 가격의 40%를 차지하는 배터리에 관심을 보이는 것”이라며 “최근 반도체 부족 사태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배터리 공급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중요한 만큼 완성차업체들이 배터리 내재화에 관심을 보이는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