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양은하 기자 = 조선인보다 조선을 사랑했다는 일본의 미학자 야나기 무네요시(1889~1961). 그는 조선의 친구인가, 적인가.
지난 14일 서울 성북구의 여행자극장에서 개막한 연극 '환상회향'은 논쟁적인 미학자 야나기 무네요시를 중심으로 문화재를 둘러싼 수집가들의 대결과 갈등을 다룬 작품이다. 올해 서울문화재단의 '예술창작활동지원사업'에 선정돼 극단 코너스톤이 처음 무대에 올렸다.
야나기는 조선 문화에 매료돼 평생 조선의 공예품과 고미술품을 수집했다. 일제강점기에 광화문을 없애려 한 일본에 저항한 일로 '조선인보다 조선을 사랑한 일본인'으로 기억됐다. 하지만 훗날 그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연극 '환상회향'은 1920년대를 배경으로 야나기가 도쿄에 민예 박물관을 건립하려고 계획하면서 시작한다. 야나기는 조선 민예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려는 목적이라며 조선의 민예품을 일본으로 가져가려 한다. 그러자 그의 조선 사랑을 존중했던 조선인 수집가들은 물론 가까이지냈던 조선인 친구들마저 그의 의도를 의심한다. 관계는 믿음에서 의심을 넘어 배신감으로 이어지며 파국으로 치닫는다.
다소 무거운 이야기인 데다 어두침침한 지하 소극장 좁은 공간에 둥글게 둘러 앉아본다는 점에서 편한 연극은 아니다. 하지만 빠른 전개와 한껏 과장된 배우들의 연기는 그런 생각을 잊게 만들고, 오히려 일제강점기 시대 이야기는 심각할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깬다.
관객들 사이사이에 앉은 배우들은 마치 술래잡기라도 하듯 무대로 나와 넘어지고, 춤추고, 쓰러지고, 뺨을 때리고, 절규하고 또 언제 그랬냐는 듯 일어나 재빨리 자리로 돌아간다. 절도 있는 동작들이 리드미컬하게 이어지면서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누는 비극적인 장면마저 우스꽝스러워진다.
연극은 야나기의 공과 과를 논하기보다 그가 쫓는 꿈으로 인해 그간 쌓아온 관계가 하나둘씩 파탄나는 데 집중한다. 이는 실제 야나기가 약속했던 반출 민예품을 돌려주지 않았고, 그의 미학적 관점에 대한 비판도 있다는 점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이철희 연출은 "조선 민족의 정서를 세계 민중과 나누는 것이 야나기가 이루려고 한 예술세계인데 결국 그걸로 모든 관계가 깨졌다"라며 "'환상회향'(자신의 공덕으로 다른 사람까지 불도로 향하게 함)이 진정 있을 수 있나. 나한테 '따뜻한 남쪽 나라'지만 타인에게는 '차디찬 북쪽'일 수 있다는 것을 얘기하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총에 맞아 쓰러진 친구들을 뒤로하고 퇴장하는 야나기는 잃어버린 관계에 대해 쓸쓸하게 되뇌지만 그의 손에는 끝까지 놓지 못한 문화재가 들려있다.
광복절을 앞두고 일제강점기 저항의 역사를 다룬 작품이 많이 나오는 이 시점에 한 번쯤 곱씹을 만한 작품이다. 그 시대에 평생 조선의 민예에 관심을 쏟은 일본인 미학자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일본이 나라를 빼앗는 것을 보면서도 일본인과 친구로 지내는 조선인들의 심정도 복잡했을 테다. 하지만 예술에 대한 사랑으로 엮인 이들의 우정 또한 그 시대에 존재한 감정이다.
연극배우 김승환이 야나기를 연기하고, 곽성은(염상), 이정주(오상), 정지은(영미), 박상윤(다쿠미), 심원석(야마나카 사다지로), 이동혁(순보, 사이토 마코토), 최나라(야나기 가네코), 김문식(스승), 김학준(청년)이 출연한다. 공연은 25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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