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6일 장호권 장준하기념사업회 회장이 서울 영등포구 사무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뉴스1 강수련 기자

(서울=뉴스1) 강수련 기자,김민수 기자 = "대학 면접에서 아버지에 관해 묻길래 '가족으로는 빵점'이라고 답했죠."
아들에게 '빵점'으로 기억된 아버지는 바로 독립운동가이자 언론인, 민주화운동가로 활동했던 장준하 선생(1918~1975)이다. 어렸던 아들은 가족보다 국가와 민족을 더 생각했던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1975년 8월17일, 유신독재 정권에 항거하던 장 선생이 경기 포천시 약사봉에서 갑자기 사망한 뒤 상황은 달라졌다. 당시 수사기관은 '실족사'라고 결론내렸지만, 가족들을 비롯해 각계 인사들은 장 선생의 죽음에 의문을 제기했다.


20대 중반에 아버지를 여읜 아들은 선친의 발자취를 쫓으면서 비로소 아버지를 이해했고, 지금까지 46년째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있다. 2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는 지난 7월 '장준하 의문사 사건'을 조사하기로 결정했다.

지난 6일 장 선생의 장남 장호권 장준하기념사업회 회장(72)을 서울 영등포구 사무실에서 만났다.

◇장 선생 사망 후 핍박…"고생했지만 뜻 이어받아"


"이제부터 대한민국과 결혼한다."

장 선생이 14살 때 사진관에 걸린 대한민국 지도 옆에서 사진을 찍으며 남긴말이다. 그 선언대로 장 선생은 일제강점기에는 중국에서 광복군으로 활동했고, 광복 후에는 정론지 '사상계' 발간, '유신헌법 개헌'을 위한 100만인 청원 서명을 진행하며 민주화 운동에 힘썼다.

그런 장 선생의 사망 이후 가족들은 국가기관에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당해야 했다. 아버지의 사인을 밝혀달라며 성명서를 작성했던 장 회장은 성명불상의 남성들에게 테러를 당해 턱뼈가 부러졌고, 남동생은 기자로 재직하다가 쫓겨났다.

결국 가족들은 국내·외로 뿔뿔이 흩어졌다. 말레이시아로 도망치듯 떠난 장 회장은 20여년간 해외생활을 하다 노무현 정부가 집권하던 2005년에야 완전히 한국에 정착했다. 그는 박정희 대통령 사망 후 잠시 돌아왔지만 전두환 정권에 고문당해 다시 도피해야 했다.

귀국 후 장 회장은 '선친의 복수를 해야겠다'는 감정과 '선친의 아들로서 잘못된 것을 고쳐야겠다'는 마음에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2013년 3월28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고 장준하 선생 추모식에서 장남 장호권 회장이 유가족을 대표해 인사를 하고 있다. 2013.3.28/뉴스1

2013년 장 선생 사인을 밝히기 위해 개묘, 이장을 한 뒤 시묘살이를 하면서 비로소 아버지의 삶과 뜻을 완전히 이해하게 됐다. 그 전까지는 일종의 '짐'처럼 느끼던 일들을 비로소 '자신의 일'로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장준하 선생의 아들로 태어나 엄청난 핍박을 받고 죽을 고비를 넘고. 왜 이런 고생을 해야 하나 싶었어요. 민족의 미래, 정의로운 사회에 대해 생각할 겨를이 없었죠. 매일 아침 밥을 지어 올리고 아버지께 많은 얘기를 하던 중에 갑자기 저를 통해 자신의 뜻을 이루시려고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생각하니 힘들지 않더라고요."

그는 선친의 뜻을 이어받아 앞으로도 젊은이들에게 역사 교육을 하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사상계 복간을 재추진할 계획이다.

◇2기 진실화해위 인력 부족…"과거사 해결, 정부 의지 절실"

장 선생의 죽음에 대해 이미 1·2기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와 1기 진실화해위가 조사했지만 진상규명에 실패했다. 사건에 개입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당시 중앙정보부(현 국정원)와 국군보안사(현 군사안보지원사령부)가 당시 상황을 밝힐 주요 자료를 제출하지 않으면서다.

2013년에 장 선생이 '머리 가격으로 즉사한 뒤 추락한 것으로 판단된다'는 유골 감식결과가 나오면서 '타살' 정황이 공개되기도 했지만, 여전히 국가로부터 공식인정받지 못했다.

장 회장은 2기 진실화해위에 기대하면서도 걱정이 앞선다. 조사해야 할 사건에 비해 인원은 너무 부족하기 때문이다.

2기 진실화해위에 따르면 9월 말 기준, 진실규명 신청 건수는 모두 1만229건인데, 조사인력은 106명에 불과하다. 사건을 검토하기 위해 1인당 96건을 담당하는 셈이다.

장 회장은 "인력을 100여 명만 투입하는 건 정부의 '실적 보여주기'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며 "인력 등 지원을 늘리고 과거진상규명위에도 참여했던 전문경험인들이 함께 하면 좋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장 회장은 과거사 진실규명과 관련, '정부의 의지'가 중요하다고 했다. 그는 2002년 1기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발족 당시에도 언론 인터뷰에서 김대중 대통령에게 "정치적 생명을 버릴 각오가 없다면 과거사 진상규명을 하지 않는 것이 낫다"고 말한 바 있다. 진상규명이 흐지부지 되면 희생자와 유족에게 두 번 상처주는 일이기 때문이다.

최근 국정원과 안보사가 2기 진실화해위의 조사에 협조하겠다는 입장도 밝혔지만 장 회장은 회의적이다. 현재 국가기록원에 있는 장준하 선생 관련 자료는 2074년까지 비공개로 지정됐고, 2기 진실화해위에 이를 강제로 확보할 수사권은 없다.

그는 "선친 사건과 관계된 공범들이 중요한 자료는 빼고 보여줄 것"이라며 "대통령이 진상 규명 의지를 강하게 보일 때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근식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장이 5월27일 서울 중구 진실화해위원회 대회의실에서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2021.5.27/뉴스1 © News1 김명섭 기자

◇'과거 트라우마' 미래로 넘기지 않기 위한 진상규명
장 회장은 2012년 각계 인사·시민들이 함께하는 '장준하 선생 의문사 범국민진상규명위원회'를 발족했으나 2년 만에 막을 내렸다. 장 회장은 "과거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건 결국 정부"라고 말했다.

현재까지 과거 국가 권력으로부터 핍박받은 트라우마가 떠오른다는 장 회장. 그는 "희생자, 희생자 유족, 공권력의 눈치를 봐야 했던 기업의 과거 트라우마가 다음 세대로 이어지지 않도록 과거사를 제대로 정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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