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노민호 기자 = 정의용 외교부 장관이 한 달 새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P5) 국가인 미국·영국·중국·러시아·프랑스 외교장관들을 모두 만나는 '광폭 행보'를 보여 주목된다.
단 일부에서는 그간 '북한 비핵화 협상 복귀 후 대북제재 검토'의 필요성을 줄곧 제기해온 정 장관의 일련의 행보를 두고 최근 중국과 러시아가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완화 움직임을 보이는 가운데 자칫 미국에게 잘못된 신호를 던져줄 수 있다는 관측을 내놓는다.
정 장관은 지난달 5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각료이사회를 계기로 한·프랑스 외교장관회담을 가지고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 구축을 위한 안보리 이사국인 프랑스의 지속적인 관심과 협조를 당부했다.
이를 시작으로 정 장관은 지난달 27일에는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과 한·러 외교장관회담을 하고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 정착을 위해 앞으로도 러시아가 건설적 역할 해줄 것을 요청했다.
정 장관은 같은 달 29일에는 문재인 대통령의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수행 차 이탈리아 로마를 방문,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대신 중국 대표로 참석한 왕이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과 한·중 외교장관회담을 가지고 종전선언 등에 대해 솔직하고 심도 있는 의견을 교환했다.
이틀 뒤 정 장관은 로마에서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과 한·미 외교장관회담 일정을 소화하고 종전선언 등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조기 재가동 방안에 대해 협의했다.
정 장관은 지난 1일 영국 글레스고에서 개최된 제26차 기후변화협약당사국총회(COP26)를 계기로 리즈 트러스 신임 영국 외교장관과도 만나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평화 구축을 위한 영국의 지지와 관심을 당부했다.
불과 한 달 새 정 장관은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5개국의 외교수장과 모두 대면협의를 가진 것이다.
우리 정부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재가동을 위해 외교 역량을 집중하고 있는 가운데 정 장관의 외교 행보는 종전선언 추진에 대한 국제사회의 지지 확보 차원이라는 평가다.
하지만 정 장관은 그간 '대북제재 완화를 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해 왔다는 점에서 정부가 공개하지 않았지만 대북제재 완화 관련 얘기가 오갔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일각의 관측이 제기된다.
정 장관은 지난달 20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북한이 더 이상 핵·미사일을 발전시키지 못하도록 어떠한 조치를 조속히 취해야 한다"며 "여러 가지 방법 중에 제재 완화가 있다"고 했다.
그는 대북제재 완화 검토 선결 조건으로 '북한의 대화 호응'을 내걸었지만 북한이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시험발사 등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를 위반하고 있는 가운데 섣부른 메시지가 아니냐는 일부 지적이 있었다.
아울러 공교롭게도 정 장관의 광폭 외교 행보가 마무리 됐을 때, 중국과 러시아가 유엔 안보리에 대북제재 완화를 위한 결의안 초안을 제출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다.
중·러가 지난 2019년 12월16일에 이어 2년 만에 또 다시 대북제재 완화를 공론화 하고 나선 것이다. 해산물과 섬유, 조형물 수출 금지 해제, 정제유 수입 할당량 해제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대북제재 완화 결의안이 유엔 안보리에서 채택되기 위해서는 미국·영국·프랑스·중국·러시아 등 상임이사국 중 어느 한 나라도 비토권(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아야 한다. 또한 10개 비상임이사국을 포함한 15개 나라 중 9개 나라의 찬성표가 필요하다. 사실상 이견이 없어야 하는 상황으로 결의안을 채택하기 위한 사전 의견 일치 작업이 필수적이라는 지적이다.
하지만 미국은 곧장 중·러의 대북제재 완화 분위기 띄우기에 거부감을 드러냈다. 지난 2일 자유아시아방송(RFA)에 따르면 미 국무부 대변인은 "우리는 중국과 러시아가 모든 유엔 안보리 회원국이 만장일치로 채택한 대북제재 결의에 따라 완전히 의무를 이행할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바이든 행정부는 '북한과의 조건 없는 대화' '대화 재개 시 모든 것을 논의할 수 있다'는 열린 자세를 취하고 있다. 그러면서 동시에 '대북제재 성실 이행'이라는 원칙론적 대응도 병행하고 있다. 이에 북미간 비핵화 협상이 재개되지 않은 상황에서 '선 대북제재 완화' 아이디어를 미국이 수용할 가능성은 사실상 제로에 가깝다는 게 외교가의 중론이다.
이에 정 장관의 유엔 안보리 이사국을 모두 만난 행보가 자칫 미국에게 잘못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제기된다. 또한 미국 조야에서는 중·러의 대북제재 완화 움직임이 한미동맹의 균열을 노리고 있다는 분석도 제시되고 있다.
3일 미국의소리(VOA) 방송에 따르면 마크 피츠패트릭 전 미 국무부 비확산 담당 부차관보는 중·러가 결의안이 안보리를 통과하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제출한 데는 다른 속셈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중·러가 제재 완화 결의안을 제출한 것은 미국과 한국 사이에 균열을 내고 두 나라에 창피를 주려는 의도"라며 "한국 일각에서 제재 완화를 지지할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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