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씨가 23일 오전 8시55분 사망했다. 사진은 2019년 3월11일 5·18 민주화운동 관련 피고인으로 광주지방법원에 들어서고 있는 모습. /사진=뉴스1
전두환씨가 23일 오전8시55분 9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전씨는 1931년 경남 합천군 율곡명 내천리에서 태어났다. 1950년 대구공고 기계과를 졸업해 육군사관학교 11기로 입교해 생도로서 한국 전쟁에 참전했다. 1955년 사관학교를 졸업한 후 육군 소위로 임관해 육군보병학교·육군공수특전단·육군본부 등에서 일했다.

1961년 전씨 인생의 변화가 생겼다. 서울대 학사장교(ROTC) 교관으로 근무하던 전씨는 당시 박정희 육군 소장이 5·16군사반란(쿠데타)을 일으키자 육사 생도를 조직해 이에 참여했다.


1979년 박 전 대통령 암살로 혼란스러워진 정국을 틈타 12·12 군사반란을 일으켰다. 이후 스스로 중장으로 진급, 다섯달 후에는 대장으로 진급했다.

1980년 5월17일 헌정을 중단시키고 반대 세력을 탄압했으며 바로 다음날부터 일어난 5·18 민주화운동을 유혈진압 했다. 1980년 8월 전역과 동시에 대한민국 제11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대통령 취임 후 7년 단임 대통령제를 골자로 하는 새 헌법을 통과시킨 후 1981년 2월 민주정의당 소속으로 대선에 출마해 12대 대통령이 됐다. 전씨는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등 재임 기간 동안 벌어진 사건으로 국민의 분노를 샀다.


당시 집권 여당의 대통령 후보였던 고 노태우씨가 1987년 6월29일 직선제 개헌을 선언하면서 상황은 일단락됐다. 전씨는 1988년 2월 임기를 모두 마치고 대통령에서 물러났다.

퇴임 후 책임 요구 이어져

전두환씨는 생전 5·18광주민주화운동을 폭력적으로 진압한 것에 대해 사과하지 않았다. 사진은 '5·18 헬기사격'을 증언한 고 조비오 신부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에 출석한 전씨. /사진=뉴스1
전씨는 퇴임 후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요구받았다. 김영삼 정부 시절인 1995년 반란수괴죄와 살인·뇌물수수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 돼 무기징역과 추징금 2205억원을 선고받았다. 노씨에 이어 헌정 사상 두 번째로 구속된 전직 대통령이다. 다만 2년 후인 1997년 12월22일 ‘국민 대화합’을 내세운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의 결단으로 특별사면됐다.

전씨는 추징금 약 2629억원을 완납한 노씨와 달리 추징금을 완납하지 않았다. 전씨가 납부하지 않은 추징금은 약 1000억원이다.
전씨는 '5·18 헬기사격'을 증언한 고 조비오 신부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은 것에 불복해 항소했다. 항소심이 진행 중이었으나 전씨의 사망으로 재판은 종결될 것으로 보인다.

전씨는 끝내 5·18광주민주화운동을 비롯한 자신의 과거 행적에 대해 사과하지 않았다. 12·12 군사반란을 공모했던 노씨는 사망 당시 국가장으로 장례를 치렀지만 전씨에 대해서는 국가장이 치러지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