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민담에서 유래한 동화 ‘백설공주’를 디즈니가 만들어낸 허구의 이야기로 착각하는 이들이 많다. 심지어 쿵푸팬더를 본 한 아이가 팬더의 서식지를 중국이 아닌 드림웍스(?)로 착각했다는 웃지 못할 얘기도 있다. 콘텐츠의 강력한 영향력을 보여주는 일화다.

최근 국내에서도 한국 고유 콘텐츠가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의 창작물로 오인받는 상황이 발생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됐다. 학계에선 IP(지식재산권)를 대가로 제작비 전액을 지원하는 넷플릭스의 계약 방식이 중·장기적으로 한국 콘텐츠 성장에 해가 될 수 있다며 경계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성동규 중앙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한국판으로 제작되고 있는 스페인 넷플릭스 오리지널 ‘종이의집’을 예로 들면서 “종이의 집은 스페인 드라마지만 작품에 대한 권리는 넷플릭스에 귀속돼 있다. 그 덕에 넷플릭스는 ‘종이의집’ 포맷을 가져다가 다양한 작품들을 자유롭게 생산해 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오징어게임도 마찬가지”라며 “원소스 멀티유즈(One-source, Multi-Use)를 통해 오징어게임은 멕시코의 전통적인 게임들로 구성된 새로운 넷플릭스 작품으로 만들어질 수 있다. 한국의 작가·감독·배우가 투입됐어도 오징어게임이 ‘한국 드라마’가 아닌 ‘넷플릭스 드라마’라고 봐야 하는 이유”라고 덧붙였다.

넷플릭스가 다수의 IP를 독점하게 된다면 현재 콘텐츠 제작 거점으로서 한국이 가지는 중요성도 점차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이에 국회 입법조사처는 지난 6일 발간한 ‘넷플릭스 등 글로벌 OTT에 대한 입법 및 정책적 개선과제’ 보고서에서 넷플릭스 등 글로벌 OTT는 국내 콘텐츠 제작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콘텐츠 저작권을 독점하고 있어 글로벌 사업자에 국내 시장이 종속될 우려가 있다며 이에 따른 규제를 예고했다. 흥행에 따른 국내 제작사들의 추가 이익 보장을 강제하는 방식 등이다.

다만 IP 독점 방식의 계약을 규제하는 데 앞서 창작자가 이 같은 계약을 체결하게 된 배경에 대한 이해가 선행돼야 한다. 사실상 제작사 입장에선 넷플릭스와의 계약이 강제되지 않는다. 빚을 내서라도 콘텐츠 저작권을 확보할지, 몇백억원을 받고 IP를 투자자에 넘길지는 오롯이 창작자의 선택이다. 업계에선 오히려 창작자의 선택권을 넷플릭스로 제한하는 국내 미디어 환경이 먼저 개선돼야 한다고 말한다.

한 드라마 제작사 관계자는 “국내 작은 제작사들은 수백억의 제작비를 당장 조달할 만한 역량이 안 된다. 이에 많은 창작자들이 터무니없는 가격에 계약을 맺기도 하는 실정”이라고 귀띔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대본만 보고 거액의 투자를 단행하는 넷플릭스와 계약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의견이다. 익명을 요구한 웹드라마 PD는 “레거시 미디어는 안전 노선 만을 추구해왔다”라며 “이를테면 인기를 끈 여자 주인공의 성격을 자가복제해 또 다른 작품을 생산해 내는 등 흥행을 위해 보수적인 판단을 일삼았다. 국내 드라마와 영화가 늘 비슷하다고 느껴지는 이유”고 지적하기도 했다. 

국내 제작사가 넷플릭스가 아닌 다른 선택지를 가질 수 있도록 정부가 나서 미디어 환경 개선 방안을 마련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