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윤효정 기자 = 지난 18일 처음 방송된 JTBC 드라마 '설강화'(극본 유현미/연출 조현탁)는 많은 이슈를 낳았다. 민주화 운동 폄훼, 안기부 미화 등 역사왜곡 논란이 불거지고, 이 논란을 바탕으로 방영중단과 폐지를 주장하는 국민청원 글에 30만명 이상이 동의하고, 협찬 및 광고사에 대한 불매 움직임도 거셌다. 제작진은 이같은 주장이 오해이며 사실과 다르다고 거듭 입장을 밝히고, 드라마가 진행되면 이같은 오해를 풀 수 있을 것이라며 편성을 변경해 주3회 방영까지 결정했으나 논란은 사그러들지 않고 있다.
'설강화'는 1987년 서울을 배경으로 어느 날 갑자기 여자대학교 기숙사에 피투성이로 뛰어든 명문대생 수호(정해인 분)와 서슬 퍼런 감시와 위기 속에서도 그를 감추고 치료해준 여대생 영로(지수 분)의 시대를 거스른 사랑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 지난 3월 시놉시스 일부가 알려지며 역사 왜곡 논란이 불거졌고, 당시에도 제작진의 해명으로 일단락되는 듯 했다. 그러나 첫방송 후 남자주인공이 운동권 학생으로 오해를 받는 남파공작원으로 설정된 것, 다른 주요 캐릭터가 '대쪽같은' 안기부 팀장으로 묘사된 점이 문제가 되어 재차 논란이 불거졌다.
드라마의 메시지와 표현방법에 대한 누리꾼들의 강도 높은 비판이 계속 되는 가운데 정치계와 문화계 인사들도 이 사태에 대한 의견을 밝히면서 '설강화' 사태는 사회적 이슈로 확대되고 있다.
◇ 계속 되는 '설강화' 논란…사회 각계각층에서 이슈 확대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는 21일 '설강화' 논란을 지켜보며 "전두환 재평가에 이어 엄혹한 전두환의 시대까지 재평가하려는 시도에 비애를 느낀다"며 "운동권에 잠입한 간첩 정의로운 안기부 시대적 고민없는 대학생 마피아 대부처럼 묘사되는 유사 전두환이 등장하는 드라마에 문제의식을 못 느낀다면 오히려 문제다"라며 "전두환의 국가전복기의 간첩조작, 고문의 상처는 한 세기를 넘어 이어지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라고 했다.
물론 제작진의 주장은 '운동권에 잠입한 간첩' 설정이 아니라는 주장이지만, 심상정 의원의 글은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에서 인용되며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었다.
반면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같은 날 "한쪽은 민주화운동을 폄훼했다고 하고, 한 쪽은 간첩을 미화했다고 국보법으로 고발을 하고"라며 "드라마는 드라마로 봐라,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 사회의 초석이다. 도대체 무슨 권리로 다른 시청자들의 권리를 침해해도 된다고 믿는 건지"라며 상반된 의견을 남겼다.
영화 '신과 함께' 시리즈와 '광해, 왕이 된 남자' 등의 제작자인 원동연 리얼라이즈픽쳐스 대표는 21일 페이스북에 "내가 지향하는 생각과 다르다고 해도 그리고 역사적인 사건을 자유롭게 비틀고 상상했다고 해도 우리 사회가 그런 영화나 드라마로 인해 무너지고 상처받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라며 "창작자들의 상상력을 제한하고 문제를 제기해서 콘텐츠가 사라진다면 그로 인해 얻게 되는 사회적 이익이 모든 창작자들이 자신의 상상력을 검열해서 위축되는 것보다 더 국가를 위해 도움이 되는 걸까"라는 글을 올렸다.
원대표는 "영화는 영화이고 드라마는 드라마이고 평가는 관객이, 시청자가 내리게 하면 안 되는 건가. 그런 영화는 극장에서 참패를 하고 드라마는 시청률이 1%도 못 미쳐 그런 기획이 매력 없어져야지 방송자체를 상영자체를 못하게 하는 게 더 올바른 일인가"라며 방영 중단 주장에 대한 생각을 밝혔다.
영화감독 정윤철도 페이스북에 "문제의 드라마 '설강화'는 이제 2부까지 방영됐는데 영화로 치면 시작 15분 정도인데, 절반이라도 보고 평가하든가 소 재가 기분나쁘면 보지 않으면 될 것을 무조건 상영금지까지 간다면 앞으로 80년대 운동권 소재 영화 및 북한 간첩, 안기부 직원이 등장하는 영화는 기획자체가 힘들어진다"라고 했다.
그는 "예술과 창작은 불가능한 상상을 가능하도록 해줘야만 한다, 도를 넘어선다면 대중의 돌팔매를 맞고 능지처참당할 각오를 해야 한다"면서도 "그러나 전체를 보지도 않고 발상조차 아예 막고 그런 분위기를 대대적으로 조장한다면 그것은 지금껏 창작자들이 온몸으로 싸워온 독재정권 및 꼰대주의 참담한 검열과 다를 바 없다"라고 했다.
◇ "민감한 내용 다루기에 조금 더 세심한 배려 했다면"
사회 각계각층에서 '설강화'에 대한 저마다의 의견을 내고 있는 가운데 대중문화 콘텐츠를 기획하고 제작하는 콘텐츠 업계의 분위기는 어떨까. 최근의 '설강화' 사태는 이들에도 많은 고민을 안겼다. 관계자들은 '설강화'의 배경과 일부 설정이 민감할 수 밖에 없는 내용이라면서 제작진의 해명처럼 '설강화'의 논란이 오해라면, 시청자들이 오해할 수 밖에 없는 점도 있다는 의견도 밝혔다.
한 콘텐츠 제작사 관계자 A씨는 "작품이 다룬 소재와 극중 시기는 현재도 사회적으로 다양한 의견이 나오고 있다는 점에서 배려가 부족하다는 의견이 나올 수 있다"며 "결과론적이기는 하지만 사전에 충분한 제작기간이 있었는데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는 지점에 대해서 조금 더 세심하게 다룰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라고 말했다.
다른 콘텐츠 제작사 관계자 B씨는 "지금까지 공개된 내용으로 봤을 때 폄훼, 미화하는 내용으로 보이지는 않는다"라면서도 "극이 1987년이라는 특정한 시기를 배경으로 하면 제작진은 아니라고 해도 받아들이는 입장에서 그렇게 해석할 수 있다는 걸 예상하지 못한 게 아닌가 싶다"라고 했다.
이어 "아마 이번 주에 공개하는 5회 이후부터는 보다 더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될 것 같고 그 점이 이 드라마의 키일 것 같다. (제작진은) 스포일러라고 생각해서 노출하지 않은 것 같은데, 사전에 이런 지적이 있었다면 더 적극적으로 (미리) 해명을 했으면 어땠을까 싶다"라고 덧붙였다.
'설강화'는 시놉시스 수정 전의 인물 이름이나 1987년이라는 특정한 시기가 배경이기에 실제 인물, 사건을 연상하게 한다는 지적을 받았다. 제작진이 '가상의 창작물'임을 강조하더라도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이에 대해 B씨는 "그런 방법은 양날의 검이다, 잘못 쓰면 그 검이 (작품에) 향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설강화'의 경우는 굳이 그렇게 설정하지 않았어도 되지 않았을까 생각은 든다"라고 했다.
'설강화'를 비롯해 일부 콘텐츠들이 '가상 설정'을 일명 '방패'처럼 여긴다는 의견에 대해 또 다른 콘텐츠 회사 관계자 C씨는 "그건 (의도보다) 창작의 수준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누가 봐도 실제를 연상하게 구성했다면 그걸 두고 뻔하고 세련되지 않은 방식이라는 비판이 나올 수 있다"라면서 "비판이 나오면 그 비판을 바탕으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고 또 다른 좋은 작품이 나오게끔 이어지는 과정이 지금까지도 계속 있었다"라고 말했다.
◇ "콘텐츠 바탕은 다양성…방영중단은 지나쳐"
콘텐츠 업계 종사자 다수는 대중문화 콘텐츠를 두고 비판적인 의견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고 이를 통해 더 다양한 논의가 나올 수 있다면서도, 모든 내용이 공개되지 않은 초반만 보고 방영 중단을 요구하는 점에 대해서는 우려를 표했다.
B씨는 "대중문화 콘텐츠인 드라마가 사회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콘텐츠여야 한다는 것에도 동의하지만 창작 콘텐츠인 드라마는 드라마로 봐주시길 바란다"라면서 "문제를 지적하는 의견도 있어야 하고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것은 건전한 과정인데 방영중단으로 확대될 일인지는 모르겠다, 방영 중단은 보는 사람들의 권리를 박탈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라고 했다.
C씨는 "대중은 이미 작품을 충분히 각자의 생각과 비판적인 자세로 바라보고, 자신의 기준으로 볼 때 안 좋은 작품이라면 거르고 안 본다"라며 "그렇게 자정작용이 일어나고 비판과 의견을 바탕으로 (이후) 작품 수준과 시장이 좋은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는 것인데 일방적으로 콘텐츠를 중단해야 한다는 의견은 아쉽다"라고 했다.
이어 "다양성이 기반이 되어야지 질적인 발전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안 좋은 작품이라면 그에 대한 비판과 함께 이후에 더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있고, 더 건강한 논의도 이뤄질 수 있는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다른 콘텐츠 제작사 관계자 D씨는 "비판이 나올 수 있고, 비판도 받아들여야 하지만 다 공개되지도 않은 콘텐츠를 두고 문제를 예측해서 그렇게(방영중단 요구) 하는 것은 지나치다고 본다. 비판할 콘텐츠라면 비판하고, 소비하지 않으면 된다, 그럼 그 콘텐츠는 실패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콘텐츠에 대한 방영 중단 요구와 청원까지 이르는 사태와 관련해 콘텐츠 제작사 관계자 E씨는 "최근들어 콘텐츠를 바라보는 기준과 시선이 매우 엄격해진 게 아닌가 싶다"라며 "최근 콘텐츠업계는 민감한 소재와 캐릭터가 등장하는 기획안은 메시지나 내용이 어떻든 (논란을 우려해) 아예 기획 단계에서 배제하는 분위기가 되고 있다, 그럼 흐름이 획일화 될 수 밖에 없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
관계자들은 앞으로 콘텐츠에 대한 강도 높은 비판이 나오는 사례가 더욱 많아질 것이라고 예상하면서 방영 중단 움직임 등이 콘텐츠업계의 다양성 위축으로 이어질 것을 우려했다. 더불어 앞으로 상대적으로 창작과 표현의 자유를 더 많이 보장하고, '전편 공개'라는 제공 방식을 가진 OTT 플랫폼에 대한 크리에이터들의 선호도가 더욱 높아질 것이라는 의견도 다수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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