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이비슬 기자 = 키예프를 떠나 피난길에 오른 지 3일째. 김재원씨(39)는 지금도 운전대 앞이다. 폴란드와 국경을 맞댄 메디카 국경 검문소까지는 아직 14㎞가 남았다.
김씨는 "러시아에서 통신을 장악해서 연락이 끊기거나 정보가 두절될까봐 가장 걱정"이라며 "제가 국경을 통과하기 전에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사임하거나 반정부 시위가 일어나면 러시아가 반러 정치인을 색출하기 위해 국경을 봉쇄할까 봐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26일(현지시간) 김씨는 우크라이나 탈출상황을 <뉴스1>에 실시간으로 전했다. 비자 문제로 대피가 늦은 김씨는 폴란드 국경을 코앞에 두고도 3일째 도로 위에 발이 묶여있다.
김씨는 "비자 문제를 해결하느라 (키예프에) 늦게까지 체류했다"며 "다른 교민보다 대피가 늦었지만 피난 준비는 일찍부터 하고 있었고 바로 키예프를 떠났다"고 말했다.
김씨는 24일 오전 6시 5년간 살던 키예프를 뒤로하고 피란길에 올랐다. 이후 자동차로 12시간을 꼬박 달려 우크라이나 서부 리비우 지역에 도착해 잠시 숙소에 머무른 뒤 지금까지 쉬지 않고 운전 중이다. 그가 떠나온 키예프에선 현재 격렬한 교전 소식이 전해지고 있다.
김씨는 피난 출발 당시 상황을 '패닉이었다'고 표현했다. 그는 "24일 오전 7시쯤 사람들이 전부 기름을 넣겠다고 주유소에 몰려와 자동차 50~60대가 줄을 서 있었다"며 "은행에도 돈을 찾으려는 사람들이 몰려왔지만 돈은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고 떠올렸다.
김씨도 급히 차를 몰고 주유소부터 들렀다. 주유소마다 20리터까지만 주유가 가능하다는 말에 물통까지 비우고 여분의 기름을 채워야 했다. 김씨는 "주유소 총 두 곳을 들러 20리터씩 40리터를 주유했고 나머지 한 곳에서 물통에다 기름 20리터를 주유했다"며 "물과 음식도 모두 준비를 해둬 국경 통과까지는 괜찮을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과 우크라이나 속보는 휴대전화로 확인하고 있다. 배터리는 차에서 틈틈이 충전 중이다. 그는 "인터넷이 생각보다는 무리 없이 잘 되고 있어 유튜브나 뉴스를 접하기는 어렵지 않다"며 "오히려 한국 속보들이 여기 현지보다 빠른 게 많아 도움을 많이 받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김씨와 통화 도중 전화가 여러 번 끊기거나 지연이 생겼지만, 대화는 가능했다. 그러나 통화 직후인 전날 자정 직전 7시간 동안은 휴대전화 인터넷이 불통이 돼 차 안에서 공포의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김씨는 "인터넷이 안 되는 곳을 지나는 동안 매우 고통스러웠다"고 전했다.
김씨가 보낸 사진 속에는 기름이 다 떨어진 차를 갓길에 대고 도보로 이동하는 사람들의 모습도 확인할 수 있었다. 김씨는 "오늘 키예프 폭격이 극에 달하면서 지금은 대기행렬이 30㎞가 넘는다는 얘기도 있다"며 "도보로 이동하는 사람들은 5시간씩 걸어서 간다"고 말했다.
대사관과는 계속해서 연락이 이어지고 있다. 김씨는 "대사관에서 지속해서 연락을 주고 있고 도움을 주고자 하고 있다"며 "상황이 급박해서 다 포기하고 바로 (폴란드) 국경으로 달려와 대사관에서 주는 비상키트 배낭은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2014년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강제 병합하면서 안보 위협이 고조된 당시와 현재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고 강조했다. 그는 "하루, 이틀도 아니고 8년 동안 (전쟁 소식이) 뉴스에 나오니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대비를 많이 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며 "이 상황이 되니까 패닉에 빠졌다. 그때와는 분위기가 완전히 다르다"고 말했다.
이어 "러시아에서 (이번 침공 직전) '침공할 생각이 없다'는 말을 많이 흘렸기 때문에 믿지 않았고 동부 우크라이나에 사는 친구들도 '미국 뉴스만 보지 말라', '안전하다'고 했었다"라고도 떠올렸다.
출발 당시 예상대로라면 김씨는 한국 시각으로 이미 오늘 새벽 6시쯤 폴란드 국경 검문소에 도착해야 했다. 지난 17시간 동안 이동한 거리는 9㎞이다. 국경 검문소까지는 앞으로 14㎞를 더 달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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