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은행의 역할이 또다른 전환점에 서 있습니다. 확장적 재정정책과 함께 저금리와 비전통적 통화정책으로 쌓인 수요압력에다 팬데믹(세계적 대유행)과 전쟁으로 인한 공급병목 현상 등 여러 요인들로 인해 1970년대와같은 높은 인플레이션이 나타나면서 중앙은행의 역할을 다시 생각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습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2일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2022년 BOK 국제컨퍼런스' 개회 연설에서 이같이 토로했다.
이 총재는 중앙은행의 역할이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에 대해 두가지 질문을 던졌다. 하나는 지금의 경제상황이 중앙은행에게 있어 단순한 과거로의 회귀를 의미하느냐 하는 것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처럼 물가안정이라는 기본 역할에만 집중하면 되는지에 대한 것이라는 고민이다.
또다른 질문은 지금의 인플레이션이 진정됐을 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이전과 같은 저성장·저물가 기조가 다시 올 것인지, 온다면 지난 10여 년간 사용한 통화정책을 그대로 사용하면 되는지, 최근의 예상치 못한 높은 인플레이션을 반영해 이를 보완하거나 새로 개발해야 하는지에 대한 물음이다.
그는 첫번째 질문과 관련해 "최근 주요 논제로 떠오르는 디지털혁신이나 기후변화 대응의 관점에서 쉽게 답할 수 있을 것 같다"며 "현재 각국 중앙은행도 이러한 인식 하에 CBDC 도입을 추진 중이거나 연구를 본격화하고 있으며 녹색성장을 위해서도 정책수단의 개발과이행을 구체화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팬데믹의 충격과 그로부터의 회복이 계층별·부문별로 불균등하게 나타나는 양극화 현상은 높은 인플레이션으로더 심화될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며 "지난 10여 년간 중앙은행의 비전통적 통화정책 수단 활용과 이 과정에서 나타난 자산가격상승에 대한 부정적 인식 속에 중앙은행이 결자해지의 입장에서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이 나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사회적 책임을 수행하려해도 소득 양극화와 부문간 비대칭적 경제충격의 문제들을 과연 통화정책으로 해결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게 이 총재의 생각이다.
이 총재는 "이번 인플레이션이 진정됐을 때 장기 저성장의 흐름이 다시 나타날 것인지, 만약 그렇다면 이전에 활용했던 정책들을 그대로 사용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부분이 별로 없는 것 같다"며 "한국, 태국, 그리고 어쩌면 중국 등 인구고령화 문제에 직면해 있는 일부 신흥국에게 있어 저물가와 저성장 환경이 도래할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부연했다.
그는 "기축통화국이 아니라는 점도 신흥국 입장에서 재정이나 통화정책을 마냥 확장적으로 운용할 수 없었던 주요 제약요인이었다"며 "인플레이션 기대 안착에 있어서도 선진국에 비해 신뢰성의 제약이 더 클 수 밖에 없어 신흥국은 통화정책 운용에있어 보다 신중하고 보수적으로 행동해야만 했다"고 토로했다.
그는 "향후 개별 신흥국이 구조적 저성장 위험에 직면해 홀로 비전통적 통화정책을 사용할 경우에도 같은 결과가 나타날지는 의문스럽다"며 "자국의 저물가·저성장 국면에 대비한 신흥국만의 효과적인 비전통적 정책수단은 무엇인지 분명한 답을 찾기 쉽지 않으며 앞으로 풀어나가야 할 과제"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