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록색 'TLJ' 로고가 벽면을 장식한 매장에 들어서자 미국보다 한국이 먼저 떠올랐다. 꽈배기와 고로케 등 익숙한 빵들이 진열대를 채웠고, 쇼케이스에는 과일과 생크림으로 장식한 케이크가 줄지어 있었다. 메뉴판에 적힌 영어와 달러 표시의 가격표가 아니었다면 서울 도심에 있는 베이커리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은 풍경이었다.
지난 13일(현지시각) 방문한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인근에 자리한 뚜레쥬르 라하브라점은 한국에서 쌓아온 브랜드의 색깔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었다. 지난해 7월 문을 연 이곳은 약 320㎡(97평) 규모의 직영점으로 북미 지역에서 처음으로 신규 BI(브랜드 아이덴티티)가 적용됐다. 신제품 출시 전 현지 소비자의 반응을 살피는 테스트베드이자 가맹점주에게 운영 방식을 보여주는 표준 매장 역할을 맡고 있다.
CJ푸드빌은 뚜레쥬르를 미국 소비자에게 익숙한 맛으로 바꾸는 대신 현지 원재료를 쓰면서 한국과 동일한 맛을 구현하는 쪽을 선택했다. 다채로운 맛과 제품 구성, 섬세한 디자인 등 이른바 '한국다움'을 경쟁력으로 내세우면서 서비스와 매장 운영은 현지 시장에 맞추는 전략이다.
안승준 CJ푸드빌 글로벌사업본부장 겸 미국법인장은 "K베이커리의 섬세함과 다양한 맛, 창의적인 부분이 현지에서의 차별화 요소"라며 "한국적인 특색(K-ness)을 계속 강조해 나가는 것이 고객들에게 어필하는 중요한 전략"이라고 강조했다.

현지에서 인기를 끄는 제품 중에는 한국에서 익숙한 메뉴가 많다. 미국 매장에서는 진한우유크림빵, 단팥빵, 김치고로케, 꽈배기 도넛 등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미국 시장에서 익숙한 제품군으로 대체하기보다 한국에서 선호도가 높은 맛과 제품 구성을 그대로 가져간 것이 특징이다.
생크림을 활용한 '클라우드 케이크'가 현지에서 가장 인기가 높다. 미국에서 흔히 판매되는 버터케이크와 달리 부드러운 생크림과 상대적으로 절제된 단맛을 앞세웠다. 코스트코 등 현지 유통채널에서 판매하는 케이크보다 가격이 높지만 현지 소비자들이 프리미엄을 지불하고 있다는 게 CJ푸드빌 측 설명이다.
안 법인장은 "버터케이크와 생크림 케이크는 맛의 특징이 많이 다르다"며 "현지 고객들이 '클라우디하다'고 표현하는 등 제품을 프리미엄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에서 흥행한 신제품을 미국에 선보이는 속도도 빨라지고 있다. 이날부터 라하브라점에서는 과일 모양의 '아그작 케이크'를 판매한다. 지난 3월 국내 출시 후 SNS에서 입소문을 타며 조기 품절이 이어진 제품으로 현지에서는 복숭아·망고·피스타치오 등 3종을 선보였다.
매장 운영 방식은 미국 시장에 맞게 다듬었다. 현지 F&B(식음료) 시장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전문 인력을 경영진으로 영입해 고객 서비스와 프랜차이즈 운영 체계를 고도화하고 있다. 다만 고객이 매장을 둘러보며 원하는 빵을 직접 골라 담는 한국식 베이커리의 구매 방식은 그대로 유지했다.
안 법인장은 "현지화의 가장 큰 부분은 매장 운영"이라며 "미국 환경에 맞게 환대와 서비스 요소를 강화하고 프랜차이즈 사업에 필요한 표준화 작업에도 현지 노하우를 적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고객이 직접 쇼핑하듯 제품을 하나씩 골라가는 방식은 현지에서 신선하게 받아들여졌다"고 덧붙였다.

한국식 제품과 구매 방식은 교민이나 아시아계 소비자에 머물지 않고 현지 주류시장으로 소비층을 넓히고 있다. 히스패닉과 백인이 주류를 이루는 지역에 위치해 있으며, 매장을 방문하는 고객층 역시 지역 인구 구성과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안 법인장은 "라하브라점 고객의 약 60%가 라틴계이고 백인이 25~30%, 아시아계는 10% 미만"이라며 "지역 인구 구성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전했다. 오펠리아 쿰프 CJ푸드빌 미국법인 COO는 "라하브라점은 특정 고객층의 비중도 높지만 주류 시장(General market)의 비중 역시 매우 높다"며 "현지에서 매우 좋은 반응을 얻고 있으며 고객들이 제품에 호기심을 갖고 매장을 찾아 계속해서 재방문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전략의 성과는 실적을 통해서 확인된다. CJ푸드빌 미국법인의 매출은 2021년 510억원에서 지난해 1946억원으로 4년 새 약 3.8배 늘었다. 국내 주요 프랜차이즈 기업들이 미국 시장에서 장기간 손실을 기록 중인 것과 달리 2018년부터 8년 연속 흑자를 유지하고 있다. 매장은 지난달 205개까지 확대됐으며 이 중 90% 이상이 가맹점이다.
CJ푸드빌은 미국 시장에서 한국적인 정체성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성장세를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동부와 중부, 서부뿐 아니라 하와이까지 출점을 확대하면서 K베이커리의 맛과 제품을 현지 소비자에게 알린다는 구상이다.
쿰프 COO는 "한국과 프랑스 감성이 결합한 베이커리라는 핵심 가치가 강점이자 차별화 요소"라며 "이러한 강점을 계속 유지하면서 한국적인 특색(K-ness)과 대표 제품을 적극적으로 알리는 것이 우리의 성장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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