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그래도 선선하고 하늘이 좀 더 높아 보이는, 정말 맑은 가을이었으면 좋겠어. 죽는 날을 내 마음대로 정할 수 있다면 말이지. 그래 생각해 보면 그리 짧은 시간만은 아니었어. 당신에게 기대어 살았던 그 많은 날들에게 감사해. 지금 이 순간 가슴 깊이 켜켜이 쌓아 둔 복잡다단했던 지난날이 그리워. (하략) '유언1 ? 아내에게' 일부
박찬호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지금이 바로 문득 당신이 그리운 때'가 나왔다. 천년의시작에서 시작시인선(0461번)으로 펴낸 이번 시집은 표제시를 비롯해 모두 64편을 담았다.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한 박 시인은 2020년 월간 '시' 추천시인상과 2020년 계간 '미래시학' 시 부문 신인문학상을 수상했다. 첫 시집으로 '꼭 온다고 했던 그날'이 있다.
이번 시집의 해설을 쓴 이승하 시인은 "박찬호 시편의 화자는 '누군가를 영결'하고 있다. '가족은 언젠가는 반드시 헤어진다'는 불변의 진리에 새삼 주목한다"며 "시의 화자는 유서를 세 통 쓰는데 한 통은 아내에게, 한 통은 딸에게, 한 통은 아들에게 남기며 살아 있는 순간 오히려 더욱 절실하게 먼 곳의 죽음을 호명한다"고 말했다.
언제나 아프게 하는 것은 '나'의 죽음이 아닌 '사랑하는 너'와의 작별이다. 그래서 죽음은 '사랑하는 이'를 필연적으로 떠올리게 만든다. 이때의 죽음은 역설적으로 가장 뜨겁게 빛나는 삶이다. 이번 시집에 수록된 시는 시인의 말처럼 기도 같고 고백 같고 기억 같고 구원 같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