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청년과 취약계층, 지방을 중심으로 한 포용금융 체계를 전면 개편한다. 기존 정량심사 중심의 획일적 서민금융에서 벗어나 개인 상황과 지역 여건을 반영한 '현장 맞춤형 금융'으로 구조를 전환하겠다는 구상이다.
금융위원회는 23일 서울 노원 서민금융통합지원센터에서 '제3차 포용적 금융 대전환 회의'를 열고 '청년·취약계층·지방의 자립과 상생을 위한 현장 맞춤형 금융지원 방안'을 발표했다.
이번 회의에는 금융위원장과 서민금융진흥원, 금융협회, 금융지주, 민간 전문가 등이 참석해 청년과 금융취약계층 지원의 실효성을 높이는 방안을 논의했다.
"금융은 혈맥"…정량심사 중심 구조 한계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모두발언에서 "금융은 경제의 혈맥이며, 혈맥은 가장 약한 곳까지 막힘없이 흘러야 한다"며 "청년의 첫걸음 앞에서, 취약계층의 절박한 순간 앞에서 지방의 작은 가게와 골목경제 앞에서 금융이 제 역할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금융위는 기존 정책서민금융 체계가 일정 부분 성과를 냈지만 구조적 한계가 뚜렷했다고 진단했다. 햇살론 등 정책상품은 연소득·신용평점 등 정량지표 중심으로 설계돼 금융이력이 부족한 청년층이나 다양한 상황의 취약계층을 충분히 반영하기 어려운 구조였다.
실제로 소득 증빙이 어려운 사회진입 준비 청년은 햇살론 이용이 제한되는 사례가 발생했고 거래 이력이 부족한 경우 신용평점 부족으로 탈락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지역 간 격차도 문제로 지적됐다. 정책서민금융 공급은 경기 27%, 서울 17%로 수도권에 집중되며 지방은 상대적으로 소외되는 구조가 이어졌다.
미소금융 2배 확대…청년 공급 10배 늘린다
이번 대책의 핵심은 미소금융의 대폭 확대다. 금융위는 향후 3년 내 미소금융 연간 공급 규모를 3000억원에서 6000억원으로 확대하고, 청년층 비중을 약 10%에서 50%까지 끌어올리기로 했다. 이에 따라 청년 대상 공급 규모는 기존 연간 300억원 수준에서 3000억원까지 약 10배 확대된다.이는 그동안 위축된 미소금융 공급 흐름을 반전시키겠다는 의미도 담겼다. 미소금융 공급 규모는 코로나 이후 수요 증가에도 불구하고 2016~2020년 연평균 3472억원에서 2021~2025년 2932억원으로 감소하는 등 정체 흐름을 보여왔다.
금융위는 재단별로 중장기·연간·분기별 공급 목표를 설정하고 실적을 정기적으로 공시하는 한편 재원 현황과 상품별 공급 실적을 매월 점검하는 관리체계를 도입한다.
또 공급 실적이 우수한 기관에는 평가 가점 등 인센티브를 부여해 민간 재원의 적극적인 활용과 참여를 유도할 방침이다.
청년·취약계층 '대출 4종 세트' 도입
맞춤형 금융상품도 대폭 강화된다. 금융위는 금융이력 부족 청년과 취약계층을 위한 '대출상품 4종 세트'를 새롭게 도입한다.먼저 '청년 미래이음 대출'은 미취업 또는 취업 초기 청년에게 연 4.5% 금리로 최대 500만원을 지원한다. 거치기간은 최대 6년으로 설정해 상환 부담을 낮췄고 상환능력보다 자금용도와 상환의지를 중심으로 심사하는 것이 특징이다. 기존 햇살론 유스에서 탈락한 청년도 이용할 수 있다.
청년 자영업자를 위한 미소금융 운영자금 대출은 한도를 기존 2000만원에서 최대 3000만원으로 확대하고 거치기간도 6개월에서 2년으로 연장해 자금 부담을 완화했다.
지방 거주 청년 자영업자에 대해서는 기존 지자체 이자지원(2~3%포인트)에 더해 추가 이자지원(약 1%포인트)을 제공해 수도권 대비 열악한 경영 환경을 보완한다.
또 정책서민금융을 성실히 상환했음에도 제도권 금융 이용이 어려운 차주를 위해 연 4.5% 금리로 최대 500만원의 생계자금 대출도 신설된다.
금융위는 이를 통해 불법사금융(약 12.5%) → 정책서민금융(4.5%) → 은행권(9% 이내)으로 이어지는 단계적 신용 개선, 이른바 '크레딧 빌드업' 구조를 구축하겠다는 계획이다.
재단 자율성 확대…'서민금융 테스트베드' 전환
운영 방식도 변화한다. 금융위는 미소금융 재단별 재원 운용 자율성을 확대해 창의적인 지원 방식이 경쟁적으로 개발·확산되도록 유도한다.재단별로 보유 재원의 일정 비율(예: 20%)을 자활지원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우수 아이디어는 시범사업을 통해 제도화하는 구조를 만든다.
경연대회와 워크숍 등을 통해 현장 중심 아이디어를 발굴하고 확산하는 채널도 정례화한다. 금융위는 이를 통해 미소금융을 단순 대출 창구에서 벗어나 정책서민금융 전반의 개선을 이끄는 '테스트베드'로 발전시키겠다는 방침이다.
민간 금융권의 포용금융 확대도 병행된다. 우리금융지주는 서민금융 공급 목표를 기존 6조5000억원에서 7조2000억원으로 확대하고 긴급생활비 대출과 갈아타기 대출 등을 통해 총 3000억원 규모의 추가 유동성을 공급할 계획이다.
특히 '우리WON Dream 생활비대출'을 통해 저소득 취약계층에 최대 7% 금리로 1000억원 규모를 지원하고, 2금융권 이용자를 은행권으로 유도하는 갈아타기 대출도 도입할 예정이다.
또 신용대출 금리 7% 상한제를 시행해 약 3만명이 금융비용 절감 혜택을 받고 있으며 우리미소금융재단에 1000억원을 추가 출연해 지방 중심 지점 확대와 현장 밀착 지원을 강화한다.
이와 함께 징검다리론 금리 우대, 채무조정 비대면 채널 확대, 청년 사업자 지원 프로그램 등도 추진된다.
"단순 대출 넘어"…포용금융 개념 재정의
전문가들은 이번 방안이 금융 사각지대를 줄이고 제도권 금융 안착을 지원하는 방향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평가했다.유경원 상명대학교 교수는 "이번 금융지원 방안은 청년과 금융취약계층의 자금 단절을 막고 제도권 금융 안착을 지원하는 방향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밝혔다.
이어 "앞으로는 디지털 대안평가 고도화와 민간 금융사 협업을 통해 단순 자금지원을 넘어 자산 형성과 민간 금융시장 안착까지 뒷받침하는 종합 지원체계로 발전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박향희 신나는조합 상임이사는 "청년 등 금융 취약계층을 위한 신규 상품 도입과 기존 대출 한도 확대는 사회안전망 강화 측면에서 유의미하다"며 "플랫폼 노동자 등 새로운 취약계층을 위한 금융·비금융 결합 지원도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금융위 역시 포용금융의 성격을 '자금 공급'에서 '사회적 안전망'으로 확장했다. 이 위원장은 "정책서민금융은 단순히 돈을 빌려주는 제도가 아니라 한 사람의 삶을 지키고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돕는 사회적 연대의 장치"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