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2차 공공기관 지방 이전'이 본격화하고 있다. '5극 3특'(5개 광역메가시티+3개 특별자치도) 전략을 통해 수도권 일극 체제를 다극 체제로 전환해 국가 경쟁력을 회복하고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고육책이다. 하지만 이전 대상이 되는 기관들의 구성원에게 대의를 위한 희생만 강요하는 것으로 비쳐서는 곤란하다.

이 정책이 성공하려면 삶의 터전을 옮겨야 하는 이들과 그들이 정착할 지역 주민들 간의 동의와 화합이 필수다. 2차 이전 대상 규모는 노무현 정부 시절 추진된 1차(153곳) 때보다 훨씬 많은 최대 500여 곳, 대상 직원 수는 10만 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이는 경기도 과천시 전체 인구보다도 많다.


일각에서는 '철밥통'이라 불리는 공공기관 종사자로서 당연히 감수해야 할 의무라고 말하며 이들의 저항을 '집단 이기주의'로 몰아세운다. 삶의 기반을 송두리째 바꿔야 하는 당사자들은 이 같은 주장에 답답하다. 단순히 근무지만 옮기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자녀의 교육 환경, 배우자의 경력 단절, 생활 인프라의 차이, 극심한 자산 격차를 온전히 떠안아야 하는 '강요된 희생'이다. 이들에게 남겨진 선택지는 정부와 기관의 방침에 순응하거나 정든 조직을 떠나는 것뿐이다.

과거 1차 지방 이전 정책은 기대 이하의 성과를 거두는 데 그쳤다. 가족 동반 이주율이 50%를 밑도는 지역들은 주말이면 유령도시로 변하는 부작용을 겪고 있다. 기관 이전 후 5년 내 핵심 인력의 자발적 퇴사율은 이전보다 최대 2배 넘게 증가했었고 일부 기술 전문 기관 신입 사원의 30% 이상이 1년 안에 사표를 던졌다고 한다. 인재가 떠난 자리는 업무 공백과 공공 서비스의 질적 저하가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사람이 살지 않는 도시는 경제 활성화는커녕 불필요한 관리비만 축내는 애물단지가 될 뿐이다. 전문가들은 그동안 국가 정책에 따라 희생한 이들에게 미미한 이사비 정도와 한시적인 세금감면 혜택만 준 것이 이러한 결과를 초래했다고 지적한다. 금전적인 보상이 전부는 아니겠지만 본인과 가족의 희생을 통해 국가 균형 발전에 동참하는 이들에게 '정주(定住) 수당'을 지급하는 방안을 고민해 보면 어떨까.

정주 수당은 공공기관 종사자를 위한 특혜가 아니라 지방 소멸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방화벽'이 될 수 있다. 누군가는 '혈세 낭비'라고 비난할 수 있으나 이는 지방 이전이 실패했을 때 치러야 할 대가를 계산하지 못한 단견이다. 수만 명의 우수한 인력이 지역에 안착하지 못하고 수도권을 그리워하며 떠돌 때 발생하는 국력 낭비를 직시해야 한다.

정주 수당은 천문학적인 예산이 투입되는 국책 사업이 '건물만 남고 인재는 떠나는' 참사로 이어지는 것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유지비이자 사업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안이 될 수 있다. 지역 경제의 '활성화 펀드' 역할도 겸할 수 있다. 이주 직원들에게 지급된 수당이 지역 내 소비로 이어지면 지역민들이 '사람이 오니 돈이 돈다'는 것을 체감하게 될 것이다.

영국, 프랑스, 일본, 독일 등에서도 강제로 근무지를 옮기는 공공기관 종사자들에게 금전적으로 지원했지만 효과는 크지 않았다. '1차 공공기관 이전' 당시 처럼 희생에 못 미치는 소액 지원에 그쳤기 때문이다. 2만 개 이상의 공직 일자리를 런던 밖으로 옮기고 있는 영국 정부는 공무원 배우자의 재취업까지 직접 알선하고 있다. 맞벌이 부부를 보편적인 가구 형태로 보고 필요한 것을 지원하기로 한 것이다.

공공기관 지방 이전은 대한민국을 재설계하는 거대한 구조 개혁이다. 해당 기관 종사자들에게 주어지는 정착 비용은 미래를 위한 '사회적 투자'라고 할 수 있다. '5극 3특' 체제가 헛돌지 않게 하려면 정부의 세밀한 정착 지원안 마련이 필요하다. 이번 공공기관 이전이 진정한 국가 균형 발전을 여는 마지막 '골든타임'이다.

홍정표 부국장 겸 산업1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