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벌적 상속세로 중소기업들의 경영권 포기 사태가 늘어가는 가운데 33년간 흑자를 기록한 중견기업 청호나이스도 매각설에 휩싸였다. 기업의 경영 악화나 후계자 부재가 아닌 상속세 납부 재원 확보를 위한 매각 추진이라는 점에서 업계의 이목이 쏠린다.
1일 투자은행(IB) 및 가전업계에 따르면 청호나이스 오너 일가는 글로벌 3대 사모펀드(PEF) 중 하나인 미국 칼라일과 경영권 매각 협상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매각 대상은 고 정휘동 창업주가 보유했던 청호나이스 지분 75.1%와 정수기 필터 제조 계열사인 마이크로필터 지분 전량으로 전체 매각 규모는 약 8000억원에 달한다. 이번 매각은 재무구조와 제조 기술력을 갖춘 기업이 사실상 상속세 부담 때문에 가업 승계를 포기하는 사례로, 시장에서는 중견기업 생태계 위축과 제조 기반 상실에 대한 우려가 확산하고 있다.
청호나이스는 1993년 설립 이후 세계 최초 얼음정수기를 출시하는 등 업계를 선도해온 토종 혁신 기업이다. 33년간 흑자 경영을 유지했으며 최근에도 5년 연속 매출 성장 및 2년 연속 영업이익 최대치를 기록했다. 2024년 연결기준 매출은 4782억원, 영업이익은 650억원이다.
지난해 6월 정 창업주 별세 후 대규모 상속세가 발생하면서 회사의 운명이 갈림길에 섰다. 정 창업주의 지분 75.1%의 법정 상속 비율은 배우자 이경은 회장이 1.5, 장남 정상훈씨가 1이다. 현행 상속세 및 증여세법상 과세표준 30억원을 초과할 경우 최고 세율 50%가 적용되며, 최대주주 보유 주식 상속 시에는 경영권 프리미엄을 반영해 평가액에 20%가 할증된다. 이에 따른 최고 실효세율은 60%에 달한다. 시장에서 추산하는 오너 일가의 상속세 규모는 2000억~3000억원 사이다.
청호나이스는 2016년 이후 무배당 정책으로 3670억원 규모의 이익잉여금을 쌓았다. 오너의 지분이 75.1%인 상황에서 사실상 배당을 자진 반납한 셈이다. 하지만 이는 법인 자산으로 분류돼 상속세 재원으로 활용할 수 없다.
현금 마련을 위해 대규모 배당을 실시할 경우 최고 세율의 배당소득세가 추가로 발생해 실제 수령하는 현금은 크게 줄어든다. 연부연납 제도를 활용해 최장 10년간 분할 납부하더라도 매년 수백억원의 현금이 필요하다. 이에 따라 오너 일가는 상속세를 납부하기 위해 보유 지분을 사모펀드에 매각해 현금화하는 방안을 택한 것으로 분석된다.
"상속 시점 아니라 현금화 이득 시점에 세금 부과해야"
한국의 상속세 최고 실효세율 60%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고 수준이다. 주요국인 ▲일본 55% ▲프랑스 45% ▲미국 40%보다 높다. 앞서 국내 밀폐용기 업체 락앤락과 가구 업체 한샘 등도 창업주의 고령화와 상속세 부담 등을 이유로 경영권을 사모펀드에 매각한 바 있다.전문가들은 이 같은 현상이 한국의 과도한 상속세 체계가 낳은 구조적 문제라고 지적한다. 한국조세정책학회장인 오문성 한양여대 세무회계학과 교수는 "한국의 상속세율을 단순히 OECD 평균과 비교하더라도 2배정도 높고 절대적인 세율만 보더라도 최대주주할증과세까지 포함하면 전세계에서 제일 높은수준"이라며 "대주주가 사망했다고 해서 기업 경영이 흔들리고 멀쩡한 회사가 상속세 때문에 사모펀드에 넘어가는 현실은 정상적이지 않다"고 비판했다.
현행 상속세 제도가 정부의 핵심 경제 정책과 정면으로 충돌한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오 교수는 "이재명 대통령이 코스피와 코스닥 등 주가 부양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현행 상속세 체계에서는 오너가 고령이 될수록 상속세를 적게 내기 위해 주가를 찍어누르는 경향이 강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상속세를 사망 시점에 부과할 것이 아니라 스웨덴, 노르웨이, 호주처럼 매각 등을 통해 처분시점에 부과하는 자본이득세로 개편해야만 박스피 탈출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재계 관계자는 "경영난에 빠진 부실기업을 인수해 체질을 개선하는 사모펀드의 본래 역할과 달리 현금창출력이 뛰어난 흑자 기업들마저 상속세 재원 마련을 위해 매물로 나오고 있다"며 "과도한 상속세 부담이 우량 중견기업의 가업 승계를 가로막고 장기적인 제조 생태계 성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청호나이스 관계자는 매각과 관련해 "매각 진행 여부 및 상속세 규모 등에 대해 현재로서는 확인된 바 없다"며 "다만 법정 기한 내에 상속 신고를 적법하게 완료했으며 세금 체납 등의 문제는 없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