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세 부담으로 인한 경영권 매각 추진이 알려진 청호나이스에서 핵심 기술 유출과 제조 인프라 약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사진은 청호나이스 제조본부 내부. /사진=청호나이스

청호나이스 경영권 매각 추진 소식에 내부 구조조정과 연구개발 투자 축소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사모펀드 칼라일과의 인수 협상이 알려지면서 업계에서는 직원들의 고용 불안과 함께 매각이 기업 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일 가전업계에 따르면 청호나이스는 미국계 사모펀드 칼라일과 기업 인수를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매각 협의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전국가전통신서비스노조 청호나이스지부는 지난 1일 오전 10시 서울 서초구 청호나이스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밀실 매각을 규탄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김주태 청호나이스 지부장은 "노조와 합의되지 않은 사측의 매각 추진 소식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며 "어떤 상황에서도 전 직원의 고용 승계와 생존권 보장이 최우선으로 다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사모펀드는 통상적으로 기업 가치를 높여 지분을 재매각하는 엑시트를 목표로 한다. 이 과정에서 단기 재무제표 개선과 영업이익률 상승을 위해 고정비 감축과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하기도 한다.

국내에서도 사모펀드 인수 직후 희망퇴직과 조직 축소가 이어진 사례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2015년 MBK파트너스가 홈플러스를 인수한 뒤 점포 매각과 희망퇴직을 단행했다. 2018년 한앤컴퍼니가 대한항공 기내식·면세사업을 인수했을 때도 희망퇴직 프로그램이 시행됐다. 락앤락·한샘 등도 사모펀드 인수 직후 희망퇴직과 조직 축소가 이어지며 노조 반발을 샀다.


청호나이스 임직원들 역시 매각설에 동요하고 있다. 한 내부 직원은 "갑작스러운 매각설에 회사 내부가 몹시 술렁이고 있다"고 전하면서 "청호나이스는 창립 초기부터 헌신해 온 장기 근속자와 고령 직원이 많은 편인데 사모펀드 체제가 되면 이들이 구조조정 1순위가 될 것이라는 소문이 돈다"며 불안해 했다.

다른 직원은 "창업주 별세 이후 오너 일가가 회사 경영에 몰두하기보다는 천문학적인 상속세 재원 마련과 대내외적인 압박을 못이겨 엑시트를 택했다는 이야기가 있다"며 "이러한 상황 속에 회사에서는 아무런 공지나 공식 입장이 없어 불안함이 더 가중되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R&D 투자 위축·기술력 상실 우려

고용 문제와 함께 연구개발 투자 위축 가능성도 제기된다. 청호나이스는 얼음정수기를 출시하는 등 기술 개발을 통해 시장을 확보해 온 제조 기업이다. 하지만 장기적인 투자가 필요한 연구 조직보다 당장 수익성이 높은 기존 렌탈 계정 관리 중심으로 경영이 재편될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한 업계 관계자는 "사모펀드의 경영 효율화가 본격화되면 얼음정수기 등 기술을 기반으로 한 청호나이스의 미래 성장 동력이 약화될 수 있다"며 "상속세 문제로 인한 기업 매각이 실업 문제와 산업 현장의 위기감을 조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업계 관계자는 "핵심 기술을 가진 토종 기업이 세금 문제로 외국계 자본에 넘어가는 것은 국가 경제 차원의 손실"이라며 "재무적 투자자는 단기 차익 실현에 목적이 있어 결국 연구개발 축소와 구조조정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관측했다.

누리꾼들도 토종 기업 매각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한국 사람이 열심히 키운 기업을 세금 때문에 외국에 파는 게 맞는 건가" "현행 상속세가 기업과 일자리를 위협한다" "상속세가 아니라 나라 망치는 세라고 불러야" "과거 유럽 국가들이 같은 문제로 상속세를 폐지했는데 우리나라는 거꾸로 간다" "국가가 세금 걷으려다 외국에 로열티 내게 생겼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전문가들은 상속세 제도의 근본적인 개편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한국조세정책학회장을 맡고 있는 오문성 한양여대 세무회계학과 교수는 "상속세 문제는 기업 승계뿐만 아니라 일반 국민의 문제이기도 하다"라며 이재명 대통령이 민주당 대표 시절 상속세 토론에서 했던 약속을 언급했다. 당시 이 대통령은 다수 국민이 세금 때문에 집을 팔고 떠나지 않도록 "가족의 정이 서린 그 집에 머물러 살 수 있게 상속세를 개편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오 교수는 "하지만 지금까지 실질적인 후속 조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주가누르기 방지법 같은 규제보다 상속세와 증여세를 합리적으로 개편해 기업들이 승계 과정에서 겪는 장애물을 없애주는 것이 국가 경제를 위해 훨씬 더 중요한 과제"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