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배터리셀 3사(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온)가 전기차 수요 정체(캐즘)에 따른 실적 부담에도 연구개발 투자를 늘리고 있다. 중국 배터리 업체들이 저가 물량 공세로 글로벌 시장에서 영향력을 넓히는 가운데 배터리 특허 포트폴리오 구축에 집중해 차별화를 꾀하겠다는 전략이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달 기준 등록 특허 5만9000건을 보유한 것으로 집계됐다. 출원 단계 특허까지 포함하면 전 세계 배터리 기업 가운데 최초로 전체 특허 규모 10만건을 넘어섰다. 2023년 처음으로 연간 연구개발비 1조원을 돌파한 뒤 지난해 역대 최대 규모인 1조3277억원을 투자하는 등 핵심 기술 확보에 집중한 결과다.
삼성SDI 역시 연구개발 투자를 늘리며 미래 배터리 기술 확보에 집중하고 있다. 삼성SDI의 지난해 연구개발비는 1조4209억원으로 전년(1조2976억원) 대비 9.5% 늘며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각형·전고체 배터리 등 차세대 기술 중심으로 특허 건수를 늘리며 지난해 기준 2만1887건의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SK온 역시 특허 보유 규모가 빠르게 늘고 있다. SK온은 지난해 기준 6526건의 특허를 확보했다. 2022년(2492건)과 비교하면 3년 사이 2.5배 이상 증가했다. 비교적 규모는 작지만 후발주자로서 특허 포트폴리오를 빠르게 확대하고 있다고 평가받는다.
업황 악화로 인한 실적 부진에도 국내 배터리셀 3사가 연구개발 투자를 확대하는 것은 중국 배터리셀사들과의 경쟁이 심화되고 있어서다. 중국 배터리 기업들은 비교적 저렴한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를 앞세워 글로벌 시장 내 영향력을 넓히고 있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1~4월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 CATL·BYD의 합산 점유율은 44.2%로 전년 동기(37.3%) 대비 6.9%포인트(p) 상승했다. 반면 국내 배터리셀 3사의 합산 점유율은 37.2%에서 28.7%로 하락했다. 중국 배터리셀사들은 전기차를 넘어 에너지저장장치(ESS)로도 사업 영역을 빠르게 넓히고 있다.
국내 배터리셀 3사는 저가 출혈 경쟁을 벌이기보다 고부가·차세대 기술을 중심으로 특허 장벽을 쌓는 전략을 택하고 있다. 배터리 산업은 소재 조성·셀 구조·제조공정·팩 설계·안전성 제어 기술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어 단일 제품에도 수많은 특허가 적용된다. 특허 포트폴리오가 촘촘할수록 경쟁사의 기술 추격과 모방을 견제하고 분쟁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 보유 특허를 바탕으로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하는 등 별도 수익 창출도 가능하다. 특히 전고체 배터리와 리튬망간리치(LMR) 등 차세대 배터리 분야 핵심 기술을 선제 개발하고 특허망을 구축할 경우 향후 시장 주도권을 확보하는 데도 유리하다.
기존 고객사와의 협력 확대나 신규 계약 과정에서도 특허 경쟁력은 중요한 평가 요소다. 공급사가 핵심 특허 분쟁에 휘말릴 경우 해당 배터리를 탑재한 완성차나 ESS 제품까지 판매 금지, 수입 제한, 공급 차질 등의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 최근 마무리된 LG에너지솔루션과 중국 신왕다의 특허 분쟁이 대표적인 사례다. LG에너지솔루션은 분쟁 과정에서 신왕다는 물론 해당 배터리를 탑재한 완성차 모델까지 법적 대응 범위에 포함시켰다. 양사가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하며 법적 조치는 철회됐지만, 이번 사례는 특허 리스크가 공급사를 넘어 고객사까지 위협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업계 관계자는 "전기차 캐즘으로 당장은 가격 경쟁력이 부각되고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기술 경쟁력이 승부를 가를 것"이라며 "차세대 배터리 기술은 상용화 초기 단계에서 핵심 특허 확보 여부가 향후 경쟁 구도를 좌우할 수 있는 만큼 관련 경쟁은 더 치열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