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등학생 대상으로 AI 시대의 창의성을 주제로 강연을 했다. 강연을 마치고, 강연과 상관없어 보여도 괜찮으니 궁금한 건 뭐든 물어보라고 얘기했다. 어른 청중과 달리 아이들은 그 말을 곧이곧대로 듣는다. 한 아이가 손을 들었다. "윤슬은 볼 때마다 예쁘고, 보다 보면 멍 때리게 되는데 이유가 뭔가요?" 강연장이 순간 조용해졌다. 창의성 이야기를 한 시간 가까이 했는데, 갑자기 물결 위 반짝이는 햇빛을 물었으니 말이다.
인지과학자로서 답할 거리는 있었다. 잔잔한 호수는 거울의 역할을 하는데, 위에서 태양이 비추고 있다. 바람이 불어 수면이 흔들리면 잔물결 각각이 작은 거울이 되어 저마다 다른 각도로 빛을 보내고, 내가 어느 자리에 서든 내 눈으로 들어오는 빛점이 생기며, 물결이 움직이니 그 빛점들은 켜졌다 꺼지기를 반복한다. 우리 눈과 뇌는 밝기가 갑자기 바뀌는 지점에 유난히 예민하다. 풀숲에서 움직이는 것을 놓치면 목숨이 위태롭던 시절의 유산일 것이다. 반짝임 자체에 끌리는 본능도 있다. 미국의 심리학자 리처드 코스는 아기들이 광택 있는 접시를 무광 접시보다 더 오래 입에 대고 핥는다는 것을 관찰했고, 인류가 오랫동안 반짝이는 표면을 물이 있다는 신호로 읽어 왔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여기에 심리학자 카플란 부부의 설명을 보탤 수 있다. 물결·구름·모닥불처럼 반쯤만 예측되는 움직임은 힘들이지 않고도 주의를 끈다. 그들은 이것을 쉽게 피로해지지 않는 주의, 부드러운 매혹이라 불렀다. 대략 이런 것들이 윤슬 앞에서 우리가 멍하게 집중하면서 아름다움을 느끼는 과학적 이유다.
이런 과학적 설명이 내 머릿속에 스쳤으나, 아이 얼굴을 보는 순간 이 답을 접었다. 망막과 진화와 주의 체계를 늘어놓는 동안 아이의 눈에서 반짝임이 꺼질 것 같았다. 그래서 다르게 답하기로 맘먹었다. 윤슬이 예쁜 건 난반사 때문이라고 얘기해줬다. 난반사는 하나의 빛을 받아 여러 방향으로 돌려보내는 반사다. 매끈한 수면은 태양을 한쪽으로 비추지만, 잔물결은 태양 하나를 수천 개로 쪼개서 사방으로 보낸다. 그래서 반짝인다. 여러분의 생각도 그런 난반사로 빛나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흑이냐 백이냐, 왼쪽이냐 오른쪽이냐, 이렇게 둘로 가르는 생각은 매끈한 수면이다. 친구의 말을 한 방향으로만 받지 말고 여러 방향으로 돌려서 읽어보고, 그렇게 생긴 여러 방향을 버리지 말고 다 안아 보라고, 오늘 이야기한 창의성이 바로 거기서 자란다고 얘기했다.
나름 아이가 이해하기 쉽게, 그리고 그날의 강연 주제와 붙여서 즉흥적으로 꺼낸 비유였는데, 돌아오는 길에 곱씹어 보니 인지과학이 창의성을 다뤄 온 방식과 닿아 있었다. 창의성 검사 중에 벽돌 하나를 주고 쓰임새를 가능한 한 많이 말해 보라는 방법이 있다. 문진, 받침대, 연필꽂이, 길이를 재는 자 등을 답하는 식이다. 정답을 하나로 모아 가는 사고를 수렴적 사고, 하나의 자극을 여러 갈래로 펼치는 사고를 발산적 사고라 부르는데, 창의성 연구는 주로 후자를 잰다. 빛을 한 방향으로만 돌려보내는 거울과 여러 방향으로 흩뿌리는 잔물결. 아이에게 한 말이 틀리지는 않았다.
그 질문 자체도 그랬다. 창의성 강연에 윤슬이 왜 나왔을까? 아이는 내가 쏜 빛을 엉뚱한 각도로 돌려보낸 것이다. 그 질문이 없었다면 그날은 준비한 슬라이드 그대로, 매끈한 수면처럼 끝났을 것 같다.
어른들의 세상을 돌아본다. 흑과 백, 좌와 우로 갈라 상대의 말을 한 방향으로만 읽고 다투는 이들을 날마다 본다. 한 문장을 받아 한 방향으로만 튕겨내는 대화는 강하게 느껴지지만 반짝이지는 않는다. 그날 아이들에게 했던 말을 어른들에게도 하고 싶다. 여러분 머릿속에 윤슬의 반짝임이 있기를. 하나의 빛을 받아 여러 갈래로 돌려보내는 마음, 그리고 그런 마음들을 품어주는 윤슬 같은 아량이 우리 사회에 가득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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