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6월 8일 청와대에서 열린 4부 요인 회동에서 조희대 대법원장과 인사하고 있다./사진=뉴스1


1937년 1월 20일, 재선에 성공한 프랭클린 루즈벨트가 취임 선서를 위해 오른손을 들었다. 선서를 주재한 찰스 에번스 휴스 대법원장은 "헌법을 보존하고 보호하고 수호한다"는 대목을 천천히, 힘주어 읽었다. 루즈벨트도 따라 읽었다. 두 사람은 함께 '헌법'을 입에 올렸다. 하지만 마음속에 그린 헌법은 달랐다.

루즈벨트는 훗날 당시 속으로 이런 말을 하고 싶었다는 취지로 회고했다고 한다. 내가 수호하려는 것은 '내가 이해하는 헌법'이라고 말이다. 민주주의가 맞닥뜨린 새로운 문제에 대응할 만큼 유연한 헌법이지, 법원이 진보와 민주주의 앞에 장벽처럼 세워놓은 헌법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불과 보름 뒤 루즈벨트는 승부수를 던졌다. 대법원장을 포함해 사실상 종신직인 9명의 대법관을 최대 15명까지 늘릴 수 있는 사법개편안이었다. 70세가 넘은 대법관이 은퇴하지 않을 경우 대통령이 한 명씩 추가 임명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었다. 명분은 고령 법관이 많은 연방 대법원의 재판 적체 해소였다.

그러나 정치적 의도는 분명했다. 대법원이 뉴딜 정책에 잇따라 제동을 걸자 대법관 수를 늘려 법원의 판도를 바꾸겠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코트 패킹(Court-packing)'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루즈벨트는 직접 라디오 노변정담을 통해 대법원이 의회 위에 군림하는 '제3의 의회', '초입법부'가 됐다고 몰아붙였다.

루즈벨트로서는 억울한 측면도 있었다. 대공황이라는 전대미문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국민의 압도적 지지를 받아 뉴딜 정책을 추진했지만 대법관들에 의해 번번이 좌절됐다. 1936년 대선에서 그는 48개 주 가운데 46개 주를 휩쓸며 역사적 압승을 거뒀다. 민주당은 의회도 압도했다. 선출 권력의 정당성만 놓고 보면 이보다 강력하기 어려웠다. 이 정도의 국민적 위임을 받았다면 사법부가 이를 가로막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 루즈벨트 생각이었다.



바로 여기에 이 사건의 본질이 있다. 선거에서 압도적으로 승리한 권력이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의 경계선은 어디까지인가. 뜻밖에도 루즈벨트 앞을 막아선 것은 야당인 공화당만이 아니었다. 민주당이 장악한 상원 법사위원회는 대통령의 계획을 "불필요하고, 무익하며, 지극히 위험한 헌법 원칙의 포기"라고 비판했다. 그것이 결국 가져올 것은 '법의 정부'가 아니라 '사람의 정부'라고 경고했다. 오늘 내가 만들고 휘두른 칼을 내일 상대가 쥐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어디 있느냐는 얘기였다.

다만 흥미로운 것은 그 뒤다. 대법원은 뉴딜 정책에 이전보다 우호적인 판결을 내리기 시작했고, 고령 대법관들의 퇴임으로 루즈벨트에게 잇따라 대법관 임명 기회도 찾아왔다. 이에 루즈벨트는 "전투에서는 졌지만 전쟁에서는 이겼다"고 자평했다고 하지만, 역사에는 제도 변경의 실패로 남았다.

정치학자들이 주목한 것도 이 대목이다. 루즈벨트는 미국 역사에서 가장 강력한 대통령 가운데 한 사람이었고 뉴딜은 미국 사회의 틀을 바꿨다. 하지만 그런 대통령에게조차 넘어서는 안 될 선이 있었다. 같은 뉴딜 정책을 적극 지지한 민주당 의원들까지 대통령에게 그 선을 지킬 것을 압박했다.

요즘 한국에서 벌어지는 대법관 제청 갈등을 1937년 미국 상황과 그대로 겹쳐 놓을 수는 없다. 갈등의 성격이 다르고 헌법이 다르며 대법관 임명 방식도 다르다. 미국에서는 대통령이 대법관 후보자를 지명하고 상원이 인준한다. 무엇보다 우리와 달리 대법원장에게 제청권이 없다.

그럼에도 90년 전 미국에서 벌어진 사건이 던지는 역사적 함의는 가볍지 않다. 선출된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통치 권한을 위임받는다. 그렇다면 그 위임의 경계는 어디까지인지에 대한 성속된 논의가 필요하다.이는 좀 더 근원적인 정치철학의 문제로 이어질 수도 있다. '국민의 뜻'이란 무엇인가. 대선이 치러지는 어느 하루, 투표함 속에서 하나의 의지로 완성되는 것인가. 오늘의 다수가 내일의 소수가 될 수도 있지 않은가.

청와대와 대법원 사이에서 벌어지는 작금의 대법관 교착 상태가 헤어날 수 없는 악순환의 고리에 빠진 것 같아 답답하다. 대법관 한 명의 인선 문제였다면 여기까지 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본질적으로는 대법관 증원, 현 대통령이 무려 22명의 대법관을 임명하는 구조를 만든 것과 맞닿아 있다.

해법은 있을까. 헌법의 진가는 권력이 순조롭게 돌아갈 때보다 권력과 권력이 충돌할 때 드러난다. 지금의 문제를 선출된 권력과 선출되지 않은 권력 가운데 누가 더 우위에 있느냐는 식으로만 봐서는 답을 찾기 어렵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누가 이기고 지느냐의 문제를 넘어서야 한다는 것이다.

루즈벨트의 코트 패킹 실패가 남긴 역사적 함의는 단순히 '사법부 독립'이라는 다섯 글자에 있지 않다. 뉴딜은 훗날 미국 사회를 바꾼 정책으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압도적인 선거 승리와 의회 다수까지 손에 쥔 루즈벨트도 끝내 넘지 못한 선(線)이 있었다는 점은 깊이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 당시 미국 대법원의 변화도 마찬가지다. '권력의 경계'. 90년 전 루즈벨트의 실패가 지금 우리에게 던지는 시사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정용관 동행미디어 시대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