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방산이 대규모 수주에 연달아 성공하고 있지만, 새로운 계약 방식과 현장의 목소리에 부합하는 지원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사진=뉴스1, 그래픽=신재민 편집위원


HD현대중공업이 2024년 4월 페루 국영 시마(SIMA)조선소와 맺은 6406억원 규모 계약은 함정 4척을 파는 사업이 아니다. 호위함과 원해경비함 각 1척, 상륙함 2척 모두 페루 현지에서 건조된다. 한국 기업은 설계와 기자재, 기술을 넘긴다. 배를 파는 것이 아니라 배 만드는 법을 가르치는 계약이다.

무기 수출의 성격이 이렇게 달라졌다. 구매국은 자국 공장에서 만들고, 자국에서 고치고, 자국 기술자가 다룰 수 있기를 원한다. 사우디아라비아는 무기·탄약 분야 자국 생산 비중을 대폭 끌어올리겠다고 공언했고, 유럽은 나토 재편 국면에서 역내 조달과 산업 참여를 조건으로 내걸었다. 완제품을 실어 보내고 대금을 받는 거래는 성립하지 않는다.



지난해 말 기준 국내 방산 4사의 수주잔고는 226조원이 넘는다. 사상 최대다. 그러나 계약서에 적힌 조건을 지킬 사람과 조직, 돈은 따로 준비돼 있지 않다.

법 조문은 있지만 권한이 없다

필리핀에서는 2022년 수출한 호위함 2척의 정비를 현지에서 수행하는 체제를 처음 만들었다. 현지 건조와 정비는 이제 계약 조건이다. 이런 조건을 지키려면 정부의 협조가 필요하다. 무기를 사는 쪽이 상대국 정부인 데다, 기술을 어디까지 넘길지와 상대국이 요구하는 반대급부를 어떻게 맞출지는 우리 정부가 허가해야 정해지기 때문이다. 방위산업발전법도 정부가 수출한 무기의 정비를 돕고 상대국 군인을 교육하며, 필요하면 공무원을 현지에 파견할 수 있도록 정해두고 있다.

담당자가 없는 것도 아니다. 같은 법은 방위사업청장을 그 일의 책임자로 지목해뒀다. 문제는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다. 무언가를 하려면 먼저 국방부장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그러고 나서 다른 부처에 할 수 있는 것은 "조치를 해달라"고 요청하는 일뿐이다. 구매국에 돈을 빌려주는 일은 재정경제부와 수출입은행, 산업 협력은 산업통상자원부 소관이라 방위사업청이 정할 수 있는 범위 밖에 있다. 법이 담당자를 정해놓고 정작 결정권은 주지 않은 셈이다. 결국 기업은 사안마다 부처를 따로 상대하게 된다. 금융은 수출입은행, 산업 협력은 산업통상자원부, 기술이전은 방사청이다. 한 번에 풀어달라고 방사청을 찾아도 방사청이 할 수 있는 일은 다시 관계 부처에 요청하는 것뿐이다.
방위산업발전법은 방위사업청장을 수출 지원의 담당자로 정해뒀다. 다만 조치를 하려면 국방부장관의 승인을 먼저 받아야 하고, 금융과 산업 협력, 군 지원을 맡은 기관에는 "조치를 해달라"고 요청할 수 있을 뿐이다. 실제 결정권은 각 기관에 흩어져 있다. /그래픽=신재민 편집위원


그러다 보니 페루에 나갈 기술자도, 필리핀 정비를 맡을 인력도 기업이 국내에서 쓰던 사람을 빼서 보낸다. 정부가 판을 짜야 할 일을 기업이 알아서 메우고 있는 것이다.



주무 기관인 방위사업청(방사청)의 일 처리도 도마에 올랐다. 지난 4월 9일 국회 국방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서 방사청은 수출허가를 면제받은 거래의 사후 보고 기한을 7일에서 30일로 늘려달라고 요청했다. 서류를 갖추는 데 20일 넘게 걸린 사례가 있다는 이유였다. 위원들은 팩스 한 번이면 몇 초 만에 오갈 서류를 왜 일주일 안에 받지 못하느냐고 파고들었고, 기한은 21일로 조정됐다.

ODA(공적개발원조)로 상대국 인력을 함께 길러주자는 제안이 업계에서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현지 건조의 품질을 담보하면서 후속 수주로 이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지원 예산 3911억원, 인력양성은 25억원

방사청의 국방 중소·벤처기업 지원 예산은 올해 3911억원으로 지난해보다 53.8% 늘었다. 그런데 이 가운데 전문인력 양성 몫은 25억원, 전체의 0.6%에 불과하다. 클러스터를 짓고 펀드를 만드는 돈은 수백억원씩 늘었지만 그 시설과 자금을 다룰 사람을 기르는 데는 인색하다. 지난해 병역특례로 대체 복무한 1만7027명 가운데 방위산업 배정도 135명, 0.79%였다. 병역이든 예산이든 방위산업이 사람에 쓰는 몫은 1%를 넘지 않는다.

뽑을 사람도 줄고 있다.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에 따르면 조선산업 인력은 2022년 7월 9만2394명으로, 정점이던 2014년 20만3441명 대비 54.5% 줄었다. 민수 조선은 모자란 인력을 외국인으로 채워왔지만 방위산업에서는 그마저 쉽지 않다. 오는 9월 11일 시행되는 개정 방위사업법은 방산업체가 외국인이나 복수국적자를 방위산업기술 취급 인력으로 채용하려면 방사청장의 사전 승인을 받도록 했다. 기술 유출을 막기 위한 장치이지만, 모자란 인력을 채워야 하는 기업에는 또 다른 장애물이 될 전망이다.
방위사업청의 국방 중소·벤처기업 지원 예산은 올해 3911억원으로 지난해보다 53.8% 늘었지만, 전문인력 양성 몫은 25억원에 그쳤다. 병역특례에서도 방위산업 배정은 1만7027명 중 135명뿐이다. /그래픽=신재민 편집위원


지원법은 고쳤지만, 기금 논의는 지지부진

구매국이 요구하는 것은 물건과 사람만이 아니다. 무기 계약은 액수가 커서 구매국이 대금을 한꺼번에 치르기 어렵다. 수출국이 장기 저리로 자금을 빌려주겠다고 함께 제안하는 것이 관행이 된 이유이고, 성능이 앞서도 이 조건에서 밀리면 계약을 놓친다.

그 길이 최근 열렸다. 지난 7월 7일 공포된 개정 방위산업발전법이 제12조 제목을 '자금융자'에서 '금융지원'으로 바꾸고 구매국에 자금을 빌려주는 근거를 새로 넣었다. 오는 10월 8일 시행된다.

다만 그 돈을 집행할 전용 기금 법안은 재정경제기획위원회에 걸려 있고, 지난 4월 29일 소위원회에서 결론이 나지 않았다. 쟁점은 연 450억원 안팎으로 추산되는 기여금을 누가 부담하느냐다. 정부 재정으로 감당하자는 주장과 수익자 부담 원칙에 따라 기업도 내야 한다는 주장이 맞섰다.

유지훈 한국국방연구원(KIDA) 연구위원은 [시대]에 "구매국이 원하는 것은 장비의 소유 자체가 아니라 실제 운용 가능한 전력의 확보"라며, 그래야 단순한 판매자와 구매자의 관계를 넘어 장기적인 안보 파트너십으로 이어진다고 했다.

정비 인력을 어디로 보낼지, 상대국 기술자를 누구 예산으로 가르칠지, 구매국에 빌려줄 돈을 어디서 댈지는 기업이 혼자 정할 수 없다. 정부의 전략적 역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준곤 건국대 방위사업학과 교수는 K-방산의 다음 화두로 '거버넌스'를 꼽으며 "정부가 단순한 지원자에 머물지 말고 생태계와 전략을 아우르는 설계자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 '시대포럼: 새로운 전쟁의 시대, K방산의 현재와 미래' 2차 숙의 토론회가 19일 오전 9시30분 국회의원회관 제1소회의실에서 열린다. 국회 국방위원회 여당 간사인 김병주 의원과 동행미디어 시대가 공동 주최하는 이 토론회에서 이준곤 건국대 방위사업학과 교수가 '초일류 방산국 도약대 「패키지 설계」'를 발제한다. 이어 최태복 HD현대중공업 특수선사업부 상무, 유지훈 한국국방연구원(KIDA) 연구위원, 이경훈 방위사업청 방산중소기업지원과장이 토론자로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