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 노사가 양측의 의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21일 서울 서초구 현대자동차 본사 앞에서 열린 시위 현장. /사진=뉴스1


성과급 산식을 둘러싼 신경전이 반도체를 넘어 자동차·철강 등 제조업 전반으로 번지는 가운데 기업별 희비는 처한 경영 환경에 따라 엇갈렸다. 삼성전자와 현대제철, 카카오는 임단협을 타결했고 현대자동차는 잠정합의안을 도출했다. SK하이닉스는 잠정합의안이 조합원 투표에서 부결돼 재협상에 들어 가게 됐고 포스코에선 파업 전운이 감돈다. 타결에 이른 기업과 그렇지 못한 기업을 가른 것은 결국 업황에 따른 지급 여력과 산업 전환기 부담의 차이다.

삼성전자는 반도체(DS) 부문에 특별경영성과급을 신설하며 임단협을 마무리했다. HBM 수요 확대에 따른 실적 개선이 지급 여력을 뒷받침했기에 가능했다. SK하이닉스 역시 유사한 반도체 호황을 타고 있지만 성과급의 자사주 지급 비중을 놓고 조합원 반발에 부딪혀 잠정합의안이 부결됐다. 현금 지급 비중을 낮추는 동시에 주가 변동에 따라 보상 가치가 달라지는 지급 방식에 대한 불만이 컸던 것으로 관측된다.



카카오는 창사 이래 첫 파업이라는 진통을 겪은 뒤에야 노사가 접점을 찾았다. 노조가 요구한 영업이익 13~14% 배분 대신 연봉 재원 6.3% 인상과 특별격려금 300만원을 지급하는 선에서 타결했다. 노조가 요구해온 영업이익 연동 성과급 체계 도입 여부는 결론을 내지 못한 채 오는 10월 이후 다시 논의하기로 했다.

현대차 노사는 정년 연장을 둘러싼 이견 속에 접점을 찾았다. 노조는 정년을 2년 연장하는 데 필요한 추가 비용이 연간 최대 1800억원 수준이라고 주장하며 숙련자 재고용 제도 대신 온전한 정년 연장을 요구했다. 현대차는 미래 모빌리티 전환기에 고정비 증가로 이어지는 요구를 수용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했고 상여금 인상은 2027년 단체교섭, 정년 연장은 법 개정 시 도입하는 조건으로 미뤘다. 노조는 오는 31일 조합원 찬반투표를 진행한다.

철강업계는 중국산 저가 제품 유입과 보호무역 확산으로 업황 자체가 부진하지만 포스코와 현대제철의 노사 협의 결과는 갈렸다. 포스코는 지난 18일 중앙노동위원회 조정이 결렬되며 창사 58년 만에 처음으로 합법적인 쟁의권을 확보했다. 물적분할 이후 쌓인 현장의 불만과 사내하청 직고용을 둘러싼 갈등까지 겹치며 임금 교섭 자체보다 노사 신뢰의 문제로 번지는 양상이다. 현대제철은 현대차그룹 계열사 가운데 가장 먼저 임단협을 타결했다. 노사가 어려운 경영환경에 대한 공감대를 바탕으로 15차례 교섭 끝에 기본급 8만원 인상과 성과급 300%, 정년까지 고용을 보장하는데 합의했다.



전문가들은 업황에 따른 지급 여력과 미래 투자 재원의 차이가 노사 합의에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한다. HBM 수요 확대로 호실적을 기록 중인 반도체업계는 일회성 성과급이나 자사주를 지급할 여력이 있지만 자동차와 철강은 관세 등 대내외 악재로 장기 전망이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처럼 글로벌 경쟁에서 높은 실적을 거둔 기업은 핵심 인재를 확보하고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성과에 대한 보상을 일정 부분 수용할 필요가 있다"고 했고 "현대차나 포스코처럼 임금뿐 아니라 정년, 근로조건, 고용 안정, 미래 산업 전환 등 여러 현안이 동시에 얽혀 있는 경우에는 성과급 문제만으로 해결하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타결에 이른 기업들도 후속 과제가 남아 있다. 삼성전자는 DS 부문 특별성과급 신설 이후 사업부 간 보상 격차와 공정대표의무 논란이 제기됐고 SK하이닉스도 자사주 지급 방식을 놓고 재협상에 나서야 한다. 카카오 노사도 임금 인상률에는 합의했지만 성과급 체계 자체는 결론을 내지 못했다.

김용진 교수는 "종업원들의 임금과 상여는 이미 판관비에 포함돼 있고 남은 이익은 배당으로 투자자에게 가거나 미래 투자를 위해 잉여금으로 비축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노동자들도 추가 이익에 대한 기여를 주장하며 권리를 요구하고 있다"며 "성과급은 일정한 룰에 의해 주는 것인 만큼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는 법적 지위를 갖추면서도 주주와 노동자, 협력업체, 국가 간 기여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김대종 교수도 "성과가 좋을 때는 직원들에게 확실하게 보상하되 실적이 악화할 경우엔 성과급도 함께 조정되고 미래 투자 여력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구조가 바람직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