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기석 동행미디어 시대 고문


우주는 엔트로피의 증가, 즉 무질서를 향해 흐른다고 흔히 말한다. 모든 물질과 물체는 화학과 물리학이 지금까지 밝혀낸 법칙에 따라 생성되고 변화되고 움직이고 멈춘다. 그런데 약 30억 년 전, 이 거대한 흐름을 거스르는 사건이 지구에서 일어났다. 혼돈 속에서 빛과 영양분을 찾아 헤엄치고 위험을 피해 몸을 돌리는 존재, 곧 생명체가 등장한 것이다.

미국의 보스턴대학교 출신 신경과학자 오기 오거스와 사이 개덤이 함께 쓴 『의식의 탄생』은 30억 년 전 지구의 가장 작은 생명체에서 시작해 오늘날의 AI에 이르기까지 '마음의 여정'을 추적하는 책이다. 저자들은 '마음'을 신비한 존재 혹은 신체와는 다른 특정한 구성 요소로 구분하지 않는다. 마음은 쉽게 말하자면 농구 선수나 게임 룰이나 농구 코트나 농구공이 모두 조합되어 이루어지는 스포츠인 농구 그 자체가 마음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마음을 좁은 의미의 뇌와 몸과 환경이 함께 만들어내는 시스템으로 정의한다. 이 책의 원제가 '마음의 여정(Journey Of The Mind)'인데 그 여정은 혼돈으로부터 의식이 생기기까지의 과정이다. 마치 고대 그리스 서사시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의 주인공 오디세우스처럼 원시 생명체까지도 의인화해서 마음의 진화 과정을 4단계로 나눠 흥미롭게 그려내고 있다.



1단계는 미생물의 마음을 다루는데 '분자적 사고의 시대'로 규정한다. 시각 시스템 없이 빛을 향해 움직이는 고세균, 의사결정 시스템 없이 의사결정을 내리는 살모넬라균, 기억 시스템 없이 기억하는 대장균과 중앙 통제 없이도 의사소통을 통해 조직화를 보여준 아메바 등이 주인공들이다. 이것들은 뇌나 신경세포가 전혀 존재하지 않지만, 분자 단위의 물리·화학적 동역학으로 작동하는 가장 기초적인 형태의 마음이다. 고세균이나 세균들의 편모, 아메바의 위족처럼 감각 수용체 단백질이 주변 환경의 빛이나 화학물질을 감지하고, 이를 직접적인 행동으로 전환한다. 여기서 저자들은 마음을 '추상적 개념'이 아닌 '감각을 행동으로 바꾸는 물리적 시스템'으로 정의한다. 혼돈 속에서 생존 목적을 향해 움직이는 최초의 물리적 역학이 바로 마음의 출발점이라는 것이다.

2단계는 뉴런적 마음을 다루는데 '세포 단위 사고의 시대'로 규정한다. 최초의 뉴런 히드라, 중앙집중식 사고를 처음으로 한 선충, 처음으로 뇌를 가진 초파리 등이 주인공들이다. 뉴런(신경세포)의 등장으로 전기적 신호 전달이 가능해지면서 정보 처리의 속도와 유연성이 대폭 향상되었다는 것이다. 이것들은 단순한 분자 반응을 넘어 여러 감각 신호를 동시에 수집하며, 신경망 내의 공명(Resonance)과 승자독식(Winner-Take-All) 역학을 통해 어떤 행동을 취할지 결정한다. 이 단계에서는 단순 반사를 넘어 시공간적 패턴을 인식하고, 환경 변화에 대응하는 기초적인 학습 및 기억 능력이 형성된다.

3단계는 모듈적 마음을 다루는데 물고기, 개구리, 쥐, 원숭이, 침팬지 등 척추동물들이 주인공들이다. 뇌 구조가 특정 기능을 전담하는 전문 모듈들로 분화되고, 이 모듈들이 상호작용하며 고차원 신호를 처리한다는 것이다. 시각, 청각, 기억, 감정 모듈이 통합되면서 생물은 감각질(Qualia)과 주관적 느낌을 갖게 된다. 지각과 행동 사이에 '가치 평가' 단계가 추가되어 "좋음과 나쁨" 또는 "이득과 손해"를 판단하는 주관적이고 목적 지향적 의식이 본격적으로 출현한다.



4단계는 슈퍼 마인드를 다루는데 '언어와 자아의 시대'로 규정한다. 호모 사피엔스, 즉 인간이 주인공인데 언어, 문명, 네트워크, AI를 만들어냈다. 상징적 언어의 탄생을 통해 개별 개체의 마음들이 상호 연결되어 형성된 거대한 집단 의식 체계가 출현한 것이다. 여기서 자아(Self)의 형성이 중요한데 자아는 고정된 물질이 아니라 '언어로 이루어진 지속적인 동역학적 활동'이라는 것이다. 언어를 매개로 개별 마음이 생각과 신념을 공유하면서 도시, 국가, 소셜 미디어, AI 등으로 연결된 거대한 슈퍼 마인드를 구축하게 된다. 결국 인간의 의식은 단일 뇌의 산물이 아니라 사회적·언어적 연결의 결과물이며, 현대의 인공지능과 소셜 네트워크 역시 이 슈퍼 마인드가 재배열되는 진화의 연장선으로 해석된다. 저자들은 이러한 마음의 진화 과정을 통해 마음이란 물질과 신호들이 만들어내는 '특별한 배열(Arrangement)'의 산물임을 강조한다.

저자들의 주장을 관통하는 핵심적인 뼈대는 바로 그들의 스승인 스티븐 그로스버그의 이론이다. 그로스버그는 인지과학, 신경 컴퓨팅, 수학적 뇌 모델링 분야의 선구자이자 세계적인 석학으로 평가된다, 저자들이 책에서 전개한 마음의 작동 원리와 진화 과정은 그의 '적응 공명 이론(ART: Adaptive Resonance Theory)'에 전적으로 빚지고 있다. 『의식의 탄생』은 사실상 그로스버그의 난해한 수학적 뇌과학 이론을 대중의 눈높이에 맞춰 마음의 진화사라는 서사로 풀어낸 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책에 쏟아진 학계의 찬사와 비판도 모두 그로스버그의 이론에서 기인한다. 생명의 기원부터 AI까지 이어지는 방대한 진화의 역사를 '공명과 신경 역학'이라는 단 하나의 통일된 언어로 아름답게 꿰어냈다는 찬사를 받은 반면, 현대 뇌과학에는 글로벌 작업 공간 이론(GWT)이나 통합 정보 이론(IIT) 등 의식을 설명하는 다른 유력한 가설들이 많다는 비판을 동시에 받은 것이다.

아무튼 저자들의 주장대로 마음이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 배열의 문제라면 "AI는 마음을 가졌는가?"라는 질문을 피할 수 없다. 저자들은 AI가 인간처럼 '느끼는가'가 아니라 AI가 정보를 어떻게 배열하고 있는지가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문제는 AI가 인터넷, 소셜미디어와 결합해 인류의 슈퍼 마인드 자체를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재배열하고 있다는 점이다. 어떤 정보가 눈에 띄고, 어떤 서사가 힘을 얻으며, 어떤 목소리가 확산되고 무엇이 침묵 속에 묻히는가, 이 배열의 규칙을 이제 인간이 아니라 알고리즘이 상당 부분 정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른바 '인지적 외주화'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저자들은 해결의 방향이 기술 자체가 아니라 인류의 선택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저자들은 결론으로 인도 북부의 신화 속에 나오는 여신인 시바가 춘다는 '탄다바'라는 춤을 소개하고 있다. 이 춤으로 우주는 생성과 소멸을 반복한다는데 파괴적인 물질의 여정과 창조적인 마음의 여정을 암시하려는 것 같다. 이 둘은 분리할 수는 없지만 물질의 동역학은 무질서로 파괴하는 힘으로 작용하고, 마음의 여정은 주체성에 대한 서사적 연대기로 목표가 있는 행동을 통해 혼돈에서 의식으로의 사다리로 올라왔다는 것이다. 엔트로피 증가의 역행이다. 이 30억년의 여정은 한마디로 "삶에는 우주적 목적이 있다"는 것이다. 신경과학자인 저자들이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지배와 억압이 아니라 사랑과 협력의 관계가 필연적이라고 강조하는 것이 새삼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