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노사가 임금교섭 잠정안을 마련했지만 후폭풍이 예상된다. 사진은 최근 금속노조 자동차업종 조합원들의 집회 현장 /사진=뉴스1


"노사 합의 없이는 단 1대의 로봇도 생산 현장에 들어올 수 없다."

전국금속노동조합 현대차지부는 지난 1월 소식지를 통해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의 생산 현장 투입에 반대 입장을 냈다. 현대자동차그룹이 아틀라스를 앞세워 로봇 사업을 미래 성장동력으로 육성하며 미국 공장을 시작으로 투입을 추진한 데 대한 반응이었다.



이후 현대차 노조는 생산라인과 인력 재배치 과정에서 고용 관련 내용을 핵심 협상 의제로 내세웠다. 현대차 단체협약에는 고용에 영향을 미치는 사항을 노사가 심의·의결하도록 한 조항이 있는데 이를 문제 삼은 것이다. 산업계는 기술 도입을 기업 생존이 걸린 경영 판단의 영역으로 본다. 노동계는 기술 도입 결정 과정에서 노동자가 배제되는 것은 문제로 지적한다.

올해 현대차 노사 임금협상 잠정합의안에도 이런 긴장이 그대로 반영됐다. 노조는 정년 연장과 신규 채용, AI 관련 고용 및 노동조건 보장 등을 요구했다. 신기술 도입 시 노조와 협의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 달라는 요구도 함께 냈다.

노사는 피지컬 AI·로보틱스 등 미래 기술 도입에 공동 대응하기로 했고 회사는 공장 재편에 따른 대규모 배치전환이 예정된 상황에서도 기술직 500명을 2027년 하반기 200명, 2028년 300명으로 나눠 채용하기로 합의했다. 정년 연장도 잠정합의안에 담겼다. 법정 정년이 연장되면 이를 즉시 적용하되 현행 임금피크제는 확대하지 않기로 했다.
보스턴다이내믹스의 아틀라스(사진은 개발형)가 부품을 정리하는 모습 /사진=현대차


글로벌 자동차 산업이 전동화와 피지컬 AI·로보틱스를 중심으로 생산체계를 재편하는 가운데 국내 기업은 노사관계에 막혀 '골든 타임'을 놓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로봇을 만드는 능력보다는 그 로봇을 생산 현장에 얼마나 빠르게 적용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최근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종사자 500인 이상 제조기업 100곳을 조사한 결과 84.0%가 피지컬 AI를 이미 도입했거나 향후 도입할 계획이라고 답했다. 61.9%는 도입 확대로 전체 일자리가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고, 도입 과정의 주요 애로사항으로는 노조·근로자의 반대(27.4%)를 꼽았다.

글로벌 완성차 업계는 이미 AI·로봇 전환에 나섰다. BMW는 차체 조립 공정에, 메르세데스-벤츠는 부품 운반 등 물류 공정에 휴머노이드 로봇을 투입해 실증에 나섰다. 테슬라는 직접 만든 로봇, BYD는 중국 업체의 로봇을 생산 현장에 시범 도입하며 공정 유연성을 극대화하고 있다.

GM은 공장 폐쇄와 매각 등 구조조정 과정에서 노조와 갈등을 겪은 뒤 생산 거점을 재편했다. 폭스바겐은 2030년까지 3만5000명을 줄이기로 한 데 이어 감원 규모를 최대 10만명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지만 노조와 2대 주주인 니더작센주의 반발 탓에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산업 전환에 맞춰 인력의 직무와 생산방식을 얼마나 빠르게 바꿀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고 본다. 직무전환과 재교육, 선별 채용을 묶은 '새로운 전환 규칙'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전기차와 AI, 스마트팩토리 확산으로 동일한 생산량을 더 적은 인력으로 생산할 수 있는 구조가 되는 만큼 정년퇴직에 따른 자연감소를 활용하되 핵심 기술 인력은 선별적으로 충원하는 선택과 집중형 고용정책이 바람직하다"며 "AI·로봇·자동화를 통한 생산성 향상, 기존 인력의 직무전환과 재교육, 생산량 변화에 맞춘 제도적 유연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보상 방식을 놓고는 사전 보장보다 사후 보전이 현실적이라는 견해도 나온다. 양준석 가톨릭대 경제학과 교수는 "AI 도입으로 예상되는 모든 피해를 기업이 사전 보장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며 "AI 전환 과정에서 고용이나 근로조건 등에 실질적인 불이익을 받은 구성원에게 노사 모두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의 사후 보전을 약속하는 방식이 합리적"이라고 조언했다.

완성차 제조사인 현대차가 고용은 유지하고 미래 AI·로봇 투자를 동시에 추진하면서 발생하는 '비용 청구서'가 영세 협력업체로 넘어가는 현실도 넘어야 할 산이다. 전국금속노동조합은 현대차그룹이 지난 4월 1차 협력사 364곳에 2027년까지 최대 20% 수준의 원가절감 방안 제출을 요구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권용주 국민대 자동차·운송디자인 겸임교수는 "완성차가 비용 부담을 느끼면 자연스럽게 하위 협력사를 향한 원가 절감 요구가 거세질 수밖에 없다"며 "보스턴다이내믹스의 아틀라스 같은 휴머노이드 로봇이 현장에 투입된다면 완성차 공장보다 부품업체에 먼저 도입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