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그기를 몰고 귀순해 '반공 아이돌'로 불렸던 고(故) 이웅평의 생애가 재조명되고 있다. 사진은 남한에 도착한 고 이웅평(오른쪽)의 모습. /사진=채널A 영상 캡처


미그기를 몰고 귀순해 '반공 아이돌'로 불렸던 고(故) 이웅평이 당시 받은 보상금이 최근 화제를 모으고 있다.

지난 3일 방송된 SBS TV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에는 고 이웅평의 생애가 조명됐다. 1983년 미그-19기를 몰고 귀순한 이웅평은 당시 고급 아파트 78채에 달하는 보상금 15억6000만원을 받았다. 이후 그는 연 900회가 넘는 강연 일정을 소화하는 등 체제 선전 상징이 됐다.



당시 전두환 대통령 한 해 공식 일정이 약 600회였던 것과 비교해 "대통령보다 이웅평이 더 바쁘다"는 말까지 나왔다. 서울 여의도에서 진행된 한 행사에는 150만명이 이웅평을 보기 위해 몰릴 정도였다.

이웅평은 귀순 계기에 대해 북한 해변에서 우연히 발견한 남한 라면 봉지에 적힌 문구가 생각을 뒤흔든 계기 중 하나였다고 밝혔다. 그는 남한에서 흘러온 평범한 물건 하나가 그동안 교육받아온 남한 사회 모습과 현실 사이에 의문을 품게 했다고 설명했다.

이웅평은 귀순 이듬해인 1984년 박선영씨를 만나 결혼했다. 이들 부부는 북한 보복 가능성을 늘 염두에 뒀다. 안전을 위해 신혼집은 일반 주택이 아닌 공군 관사에 마련됐다. 결혼한 지 약 1년이 지났을 무렵에는 집 안에서 한국 정보기관이 설치한 도청 장치가 발견됐다. 북한의 암살 위협과 남한의 감시를 받으며 살아야 했다.



이웅평은 한국 정부로 받은 보상금을 한 푼도 쓰지 않았다. 언젠가 통일되면 자신의 귀순으로 인해 고통받았을 북한 가족들을 위해 쓰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이웅평은 북한에 있던 누나가 정치범수용소에서 힘든 생활을 했고 가족들이 숨졌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충격을 받았다. 간경화로 투병하던 이웅평은 수술받은 후에 한 때 회복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결국 2002년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