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대통령은 말에 능하고, 말하는 데도 거침이 없다. 크고 작은 현안의 핵심을 빠르게 파악해 자신의 생각을 막힘없이 풀어낸다. 생중계되는 국무회의나 정책토론회를 보다 보면 "어떻게 저런 세밀한 부분까지…"라는 생각이 들 때도 많다. '디테일 리더십' '만기친람 리더십'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그런 이 대통령이 유독 말을 아끼는 순간이 있다. 자신의 정치적·사법적 이해관계가 걸린 문제 앞에서다. 일반 현안에 대해서는 세부 사항까지 설명하고, 맞든 그르든 나름의 해법이나 결론까지 제시한다. 그러면서도 정작 자신의 임기와 재판, 사법부 인선이 걸린 문제에서는 침묵하거나 핵심을 비켜 간다.
요 몇 달 사이 국정 지지율이 뚝 떨어진 원인을 놓고 부동산 세제 논란과 정책 혼선 등 여러 진단이 나온다. 필자는 그보다 더 본질적인 원인이 있다고 본다. 흔히 말하는 진정성, 곧 '말의 신뢰'다. 아무리 공(公)을 말해도 그 뒤에 사(私)가 어른거린다고 느끼는 국민이 많아지면 국정에 대한 신뢰를 쌓기 어렵다.
한동안 뜨거웠다가 시들해진 개헌 문제부터 보자. 이 대통령은 4년 중임제 또는 연임제를 거론하며 개헌을 위해 필요하다면 자신의 임기 단축도 수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얼핏 전향적인 제안처럼 들렸다. 그런데 정작 자신이 중임·연임의 대상에 포함되는지에 대해서는 입장을 분명히 하지 않는다. "나는 대상이 아니다"라고 명확히 밝히면 될 터인데 그러지 않는다. 선택적 침묵이다.
더욱이 "이원집정부제나 내각제는 바람직하지 않다"며 미리 선을 그은 것도 정치적 복선을 깐 것처럼 비친다. 자신의 임기 단축을 언급하면서 개헌의 범위를 대통령 중임·연임제로 좁힌다면 40년 만의 개헌을 '거래와 손익'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살 수밖에 없다.
대법관 인선 논란도 마찬가지다. 대법원장의 제청권과 대통령의 임명권이 충돌했다느니, 서면 제청이 관행을 깼다느니,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를 새로 구성해야 한다느니 하는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런 절차와 형식이 갈등의 본질이 아니라는 점을 국민도 어렵지 않게 꿰뚫어 보고 있다. 대법원 구성의 다양성을 위해 여성 대법관이 필요하다는 것이 청와대의 입장이었다면, 애초 여성 후보 2명 가운데 한 명을 놓고 조율할 여지가 충분했다는 게 법조계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문제가 꼬인 것은 청와대가 대통령이 지명한 현직 헌법재판관의 배우자를 사실상 특정해 제청을 요구하면서부터다. 법원의 확정판결에 대한 재판소원제가 도입된 상황이라면 이해충돌 논란이 제기될 소지가 충분하다. 이른바 '상피제(相避制)'를 떠올리는 것도 상식의 차원이다. 국민이 궁금해하는 것은 제청의 형식이나 권한 갈등이 아니라 청와대가 특정 후보를 고집하는 '진짜 이유'다. 그런데도 왜 그 후보여야 하는지, 이해충돌 우려를 어떻게 해소할 것인지 아무 설명이 없다.
공소 취소 문제에 이르면 의구심은 더욱 짙어진다. 이 대통령은 자신의 공소 취소에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온 판사 출신 재선 의원을 법무부 장관으로 발탁했다. 검찰이든 특검이든 어떤 수단을 동원해 현 정권 내에서 '법적으로' 정리해도 다음 정권에서 다시 불거지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무엇보다 국정 지지율 하락과 맞물려 공소 취소 문제에 대해서는 여권 내부에서도 부정적 기류가 강하다.
그런데도 이런 흐름에는 눈을 감은 채 공소 취소 모임의 대표를 지낸 의원을 아예 법무부 장관으로 기용하려 한다. 이런 비상식적 결정까지 끌어낸 '심리적 동인(動因)'이 무엇인지 궁금할 정도다. "검찰개혁 완성"을 전가의 보도처럼 내세우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국민이 얼마나 될까. 정작 대통령 자신은 뻔히 예상됐던 이런 논란에 대해서도 분명하게 말하지 않는다.
모든 권력은 자신의 프레임으로 세상을 본다. 자신의 선택에 합법과 정당성의 외피를 씌우려는 속성도 있다. 그러나 절차가 합법적이라고 해서 선택의 동기와 결과까지 저절로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대통령의 실책과 오판 가능성을 걸러내는 집권당의 역할이 그래서 중요하다. 하지만 대통령의 의중이 강하게 반영됐다는 평가를 받는 새 지도체제가 견제와 견인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당정일체'는 국정 운영의 미덕이 아니라 권력의 오판을 키울 수 있는 위험한 도그마다.
국정 난조(亂調)는 대통령 개인의 문제를 넘어선다. 지지율 반등의 모멘텀을 찾기 위해 다양한 방안을 강구하고 있겠지만, 지금은 무엇이 문제였는지 근본부터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그 출발은 공과 사를 구분하는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닐까. 긴급 기자회견이든 언론 인터뷰든 형식은 중요하지 않다. 개헌과 공소 취소, 대법관 인선에 사적 이해를 개입시키지 않겠다고 분명히 밝히고 국민의 의문에 답해야 한다. 역대 정권의 흥망이 보여주듯 최고 권력자가 입을 닫고 참모들도 말하지 못하는 '금기의 영역'이 있다면 이는 훗날 더 큰 화근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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