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석훈 성신여대 경제학과 교수


단언컨대 현대 민주주의 국가, 아니 모든 체제를 통틀어서 정치와 정책이 완벽하게 분리된 경우는 없다. 현실의 거의 모든 문제에 대한 해법은 정책 논리와 정치 논리가 함께 동원될 수밖에 없다. 두 논리가 충돌할 때 최종 결정권자는 대개 정치인이며, 정치인은 정책 논리보다 정치 논리를 우선 고려한다. 국가와 미래 세대를 우선하는 정치가에게는 정치 논리가 '국가와 국민'일 것이고, 본인과 가족의 미래를 최우선시하는 정치꾼에게는 정치 논리가 곧 '자신과 가족의 생계'일 것이다.

정책 논리와 정치 논리는 문제에 대한 접근 방법에서 차이가 난다. 이상적인 정책 논리는 이론적 정합성과 합리성을 바탕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정책에 대한 전문 지식과 경험이 많은 정책 전문가는 어떤 문제라는 나무를 볼 때, 전체 숲의 관점에서 그 나무를 보는 일반균형 분석에 익숙하다. 이에 반해 정책 결정에 참여하는 정치인들은 정무적 판단은 뛰어날 수 있지만, 정책에 대한 전문성이나 경험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이들은 어떤 문제를 풀려고 할 때, 그 나무만 주목하고 숲을 등한시하는 부분균형 정책에 집착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 해법이 부분적으로는 맞는 것처럼 보이지만, 전체적으로 부작용 투성이 정책으로 귀결된다.



당면문제를 해결하는 이상적인 진행 구조는 먼저 어떤 문제에 대하여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치인들이 정책목표를 정하고 이론과 경험으로 무장된 정책 전문가들이 최적의 수단과 경로를 설계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최근 우리 정부의 각종 정책은 정치 논리에서 시작하여 정치 논리로 결정나고, 정책 논리는 그저 정치의 논리를 뒷받침하는 도구로 전락한 듯하다.

최근의 부동산 정책을 보면 어떤 정책 논리가 있었는지 확인하기 어려운 경우가 적지 않다. 비거주 1주택 소유가구에 대한 증세는 어떤 경제적 논리와 정합성을 가지고 있는지 알기 어렵다. 부부 공동명의인 경우 1가구 1주택에서 제외한다고 하는데, 왜 한 채의 주택이 갑자기 두 채로 취급되는지도 의문이다. 시가 상위 0.4%로 알려진 고가 주택 거주자에게 징벌적 세금을 부과해도 되는 근거가 무엇인지, 1가구 장기 거주자의 주택가격 상승분 중 물가 상승분을 소득에서 제외하지 않고 과세하는 논리가 무엇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필자가 기억하는 재정경제부는 대한민국 최고 엘리트들의 집합이고, 특히 세제실 공무원들은 대한민국 경제의 마지막 보루라는 우직한 자부심으로 박봉을 견뎌온 직원들이다. 오랜 경험과 전문성을 가진 세제 당국이 어떤 분석과 원칙에 따라 이러한 제도를 설계했는지 의아하다. 정치적 목표가 먼저 정해지고 정책 당국이 사후적으로 세제를 맞춘 것은 아닌지 의문이 남는다.



정치 논리가 정책 논리를 압도한 것으로 보이는 정책은 부동산 정책만이 아니다. 지역균형발전을 명분으로 한 반도체 투자 확대는 정치 논리가 가장 빛났던 정책으로 꼽을 만하다. 이 결정 과정 어디에서도 균형발전을 제외하고는 명확한 정책 논리를 찾기 쉽지 않다. 국가 산업정책을 다뤄온 산업통상자원부가 수백조 원 규모의 투자를 충분한 검토 없이 뒷받침하는 모습은 이례적이다. 국가 에너지 정책을 담당해 온 부처가 불과 몇 년 안에 반도체 공정에 필요한 대규모 전력과 용수를 마련할 수 있다고 하는 것도 선뜻 받아들이기 어렵다. 대외관계를 책임지는 외교부와 대외통상을 책임지는 산업통상자원부가 이러한 국내 대형 반도체 투자가 대미 투자·통상 관계에 미칠 파장을 몰랐을 리 없다.

물론 정책 논리가 항상 최선이거나 최적인 것은 아니다. 과거 소득세제를 소득공제에서 세액공제로 전환하면서 국민 수용성을 도외시해 많은 혼란을 초래한 사례도 있다. 그러나 지금처럼 정치 논리가 정책 논리를 지배하면 결국 정책의 효과는 떨어지고 정치와 정책에 대한 국민 불신은 더욱 깊어진다. 더욱이 무능한 정치 논리가 무력한 정책 당국자라는 현실과 결합할 때, 국민의 일상은 더욱 무기력해진다.

정치가 정책의 목표를 결정할 수는 있지만, 사실과 분석의 결론까지 결정해서는 안 된다. 마침 경제팀이 새로 출범했다. 새 경제팀이 실종된 정책시대를 찾아오길 기대해 본다. 물론 이것도 정치의 도움 없이는 어림없는 일이다.

강석훈 성신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미국 위스콘신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대통령 경제수석비서관과 한국산업은행 회장 등을 지낸 경제학자다. 19대 국회의원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