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호르무즈 해협에 해상초계기와 군수지원함 등 군 전력을 파견하는 방안을 구체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4일 "한반도 대비 태세에 큰 손상이 없는 범위 내에서는 운신할 수도 있다"며 "군사적 기여엔 전투·비전투·수색 등 다양한 옵션이 있다"고 말했다. 다만 아직 검토 단계일 뿐 정해진 방향은 없고, 국회와의 협의 단계에도 이르지 않았다고 밝혔다. 벌써부터 민주당 일부와 조국혁신당에서 반대 목소리가 나오는 등 정치권의 공감을 얻기까지 넘어야 할 산도 적지 않다. 에너지 안보와 한미동맹, 한반도 문제의 주도권이 함께 걸린 사안인 만큼 국익을 우선에 둔 열린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호르무즈 해협은 우리 경제의 생명선이다. 자유 항행을 지키려는 국제사회의 노력에 일정한 책임을 나누는 일은 인도주의적 명분을 넘어 국가 차원의 책무다. 동맹이라는 현실 역시 외면할 수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우리는 대한민국을 지키고 있는데 쉬운 (이란 관련) 군사작전을 도와주지 않겠다는 것이냐"며 "기억해 두겠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달 중순 이후에만 비슷한 취지의 발언을 다섯 차례 내놓으며 압박 수위를 높였다. 특히 지금은 북·미 대화 재개 가능성까지 거론되는 시기다. 미국이 북한과 직접 대화하는 과정에서 한국의 이해관계가 충분히 반영되지 않는다면, 그 대가는 호르무즈 파병의 부담보다 훨씬 클 수 있다.
미국의 압박은 안보에만 그치지 않는다. 트럼프 행정부는 반도체 관세 확대를 검토하면서 미국 내 생산시설에 투자하는 기업에는 혜택을, 그렇지 않은 기업에는 부담을 지우겠다는 방침을 내비쳤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대미 투자 확대를 압박하는 신호다. 미국은 이처럼 안보 기여와 통상·투자 요구를 동일선상에 놓고 있다.
그러나 이런 복합적 압박이 파병 판단의 기준까지 흐려서는 안 된다. 장병의 생명과 국가의 군사적 책임을 통상 협상의 카드로 삼을 수는 없다. 파병의 목적이 미국의 압박을 피하거나 관세 협상에서 양보를 얻어내는 데 있어서도 안 된다. 우리 선박 보호와 에너지 안보, 국제 항행의 안전, 동맹에 대한 합리적 기여라는 독자적 국익에 뿌리를 둬야 한다. 그래야 파병은 굴종이 아니라 주권국가의 능동적 선택이 된다.
군 파견이 이뤄진다면 원칙은 엄격해야 한다. 군수지원과 해상 감시 등 방어적·비전투적 임무를 우선으로 하고 작전구역과 지휘체계, 교전규칙, 피격 시 대응 및 철수 기준을 명확히 해야 한다. 비전투 자산도 실전 위험에서 자유롭지 않은 만큼 기간과 규모를 제한하고 정세 변화에 따른 재검토 장치도 마련해야 한다. 헌법이 해외 파병에 국회 동의를 요구한 것은 파병을 무조건 막으라는 뜻이 아니라, 불가피한 선택일수록 국민 앞에 근거와 책임을 분명히 하라는 요구다. 국회는 정쟁이 아니라 냉정한 심사로 답해야 한다. 호르무즈 파병은 동맹을 지키되 국익을 잃지 않는, 제한적이고 책임 있는 기여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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