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를 만드는 DS 부문 메모리사업부는 1인당 6억원대 성과급을 받고, 스마트폰과 가전을 만드는 DX 부문은 600만원어치 자사주를 받는다. 100배 차이다. 노사갈등은 그렇게 타결됐고, 삼성전자는 '감사 페스티벌'을 열었다. 구매금액의 20%를 온누리 상품권으로 주는 행사다. 때마침 가전을 새로 장만하려던 터. 쾌재를 부르며 오프라인 가전 양판점으로 향했다. '기왕이면 성과급 잔치에서 소외된 DX 도와주자'는 다짐은 매장을 반바퀴 정도 도는 시점에 온데간데없어졌다.

반값의 중국 브랜드들은 성능도 디자인도 훌륭했다. 할부와 페이백 등 각종 혜택도 붙었다. 매장 직원의 끈질긴 권유도 계속됐다. "로고만 가리면 삼성이랑 진배없어요." 프리미엄 라인에서는 라이벌 LG가 유혹하고, 소형가전에서는 쿠쿠나 코웨이에 더 눈길이 갔다. 결국 그날 구매한 6개 중 냉장고와 로봇청소기, 2개만 삼성 제품이었다.



두 달을 써보니, 온누리 상품권의 달콤한 유혹에 넘어간 게 후회된다. 로봇청소기는 자꾸 문턱에 걸린다. 설치기사가 원래 주문한 모델이 문턱 넘기 어려울 거라 해서, 한참 돈을 더 주고 바꾼 최신 모델이다. 냉장고는 그럭저럭인데, 그렇다면 이 가격은 잘못됐다. 둘 다 모바일 앱으로 제어가 가능하다는데, 이 앱이 와이파이를 못 잡아 여전히 불통 상태다. 상품권의 유혹을 뚫고 간택된 제품들은 매일 기특하게 DX(Device eXperience)를 설파한다. '당신이 지금까지 쓰던 가전은 잘못됐다, 첨단 과학 기술이란 좋은 것이다'.

'심리적 본전 치기'를 위해 온누리 상품권 신청을 서둘렀다. 일단 삼성닷컴에 가입했다. 여기서만 신청이 가능하다. 가입은 정부24보다도 어렵고 구석에 숨겨놓은 '감사 페스티벌' 메뉴 찾기도 험난했지만, 진짜 문제는 다음부터였다.
삼성전자 감사 페스티벌 혜택 신청 화면. 제품 한 대마다 입력 항목 일곱 개와 첨부 세 개를 요구한다./사진=삼성닷컴 캡쳐


카테고리, 구매처, 모델코드, 시리얼 번호, 구매일자, 주문번호, 구매금액을 직접 입력하란다. 구매내역서와 영수증, 명판 사진도 올려야 한다. 제품 한 대에 열 개다. 명판을 찍으려고 냉장고 문을 다 열었고, 로봇청소기는 뒤집어 바닥을 살폈다. 처음 보는 항목이 있어 설명 버튼을 눌렀더니 화면을 덮는 팝업창이 뜬다. 닫기 버튼은 안 보인다. 뒤로 가기를 누르니 적어놓은 항목이 다 사라져 있다. 처음부터 다시 적어 겨우 하나의 '온누리 과업'을 마쳤다. 상품권은 신청일로부터 18일이 지난 후에야 지급된다고 한다.
'감사페스티벌'에 응모하려면 제품 명판 사진이 필요하다. 로봇청소기는 뒤집어야 찍힌다. /사진=이무영 제도혁신연구소 부소장


다음 제품 몫을 신청할 차례다. 한 번 해봤으니 수월할 거라는 기대는 헛됐다. 입력이 안 된다. 공란이어야 할 입력창엔 아까 입력한 내용들이 굳건하다. 챗봇은 '감사 페스티벌'이 금시초문이라는 듯 딴소리만 한다. 결국 콜센터를 찾았다. 5분 이상 대기가 있다는 안내. 그 다음 말이 기막히다. "이 안내 전화는 대기가 5분 30초를 경과하면 자동으로 끊어질 수도 있습니다". 과연 5분 30초가 경과하자 뚜뚜뚜 소리만 들린다. 1초의 말미를 주지 않는 디지털의 정확함, 이것이야말로 수백만원을 지불하고도 느끼지 못했던 '삼성전자의 DX(Digital eXperience)'였다.

1995년 이건희 선대 회장은 불량 휴대전화와 팩시밀리 등 15만대, 500억원어치를 임직원 2000여명 앞에서 태우게 했다. 이른바 '애니콜 화형식'이다. '품질은 나의 인격이요, 자존심!' 현수막이 걸린 구미사업장 운동장, '정성품질 고객만족' 어깨띠를 멘 직원이 제품 더미에 불을 붙였다. 같은 시기 '가전의 일본'은 잘나갔지만, 큰 내수 시장과 브랜드력을 믿고 안일했다.
1995년 3월 9일 삼성전자 구미사업장 운동장에서 열린 '애니콜 화형식'. 임직원 2000여명이 지켜보는 앞에서 불량품 15만대가 불탔다. /사진=KBS 유튜브 영상 갈무리


그로부터 30여년이 지난 올해 8월, 아키하바라 요도바시 카메라와 이케부쿠로 빅카메라를 방문했다. 어느 층에서나 가장 좋은 자리를 차지한 것은 중국 브랜드였다. 1층 입구에는 일본 국민 배우 기무라 타쿠야를 내세운 화웨이 광고가 큼지막하게 걸려 있었다. 한산한 일본 브랜드 매대에는 '일산'이라는 푯말이 붙어 있었다.



남의 일도, 먼 미래의 일도 아닌 것 같다. DX 부문 올 상반기 영업이익은 2조원, 지난해 같은 기간의 4분의 1 수준이다. 2분기엔 8000억원 적자를 냈다. 부문이 생긴 이래 첫 분기 적자다.

같은 기간 DS 부문은 89조원을 벌었다. 지난 8월 19일 노태문 DX부문장은 임직원 설명회에서 추가 보상은 어렵다며 "우리가 성과를 만들어 특별보상을 받도록 같이 노력하자"고 했다.

몇 해 뒤 DX 직원들은 이렇게 회상할지 모른다. 그때는 600만원이라도 받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