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본시장에는 백 년 가까이 다듬어져 온 제도적 지혜가 있다. 증권을 발행하거나 상품을 설계하는 자와 그 증권이 거래되는 시장을 운영하는 자는 같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정보 비대칭과 자기거래의 위험이 커져서 시장의 신뢰를 잃기 쉽기 때문이다. 이 문제의 역사적 배경으로 자주 언급되는 것이 미국의 사례이다.
1920년대 미국에서는 은행이 증권의 인수와 판매를 한 손에 쥐고, 자신이 떠안은 물량을 자기 예금 고객에게 위험 고지 없이 넘겼고, 그 결과 시스템 붕괴인 대공황의 주요한 원인이 되었다. 이후 미국은 1933년 글래스-스티걸법으로 두 기능을 갈라놓았다. 이 법 자체는 1999년 금융서비스현대화법(Gramm-Leach-Bliley Act)으로 완화되었지만, 이해상충이 있는 기능은 구조로 분리한다는 원칙은 유지되었다. 펀드의 운용·판매·수탁이 나뉘고, 우리 당국이 조각투자 시장을 설계하며 발행과 유통의 겸영을 금지한 것이 모두 그 후예다. 그리고 지금, 이 원칙이 우리 비상장 주식 시장에서 시험대에 올라 있다.
우리 금융당국도 이 원칙을 모르지 않는 듯하다. 조각투자 시장에서 금융위원회는 발행과 유통의 겸영을 예외 없이 금지했다. 참여 사업자는 발행이든 유통이든 하나만 택해야 한다. 옳은 설계다. 그런데 같은 시기에 만들어진 비상장 주식 장외거래중개업 규정에는 이해상충 방지 기준을 갖추면 본인과 특수관계인의 주식도 중개할 수 있다는 예외가 들어 있다.
여기서 문제 가능성이 존재한다. 발행자는 자기 증권의 결함을 가장 잘 아는 자이고, 유통시장 운영자는 그 결함이 투자자에게 알려지는 통로를 쥔 자다. 두 지위가 한 몸이 되면 나쁜 정보는 시장에 도달하기 전에 사라진다. 주가가 급변해도 발행기업에 해명을 요구하는 조회공시는 작동하지 않는다. 요구할 자와 답할 자가 같기 때문이다. 실시되지 않은 공시, 보이지 않는 나쁜 뉴스는 외부에서 관찰조차 되지 않는다. 감독을 강화하면 되지 않느냐고 묻겠지만, 관찰되지 않는 것은 감독되지 않는다.
역사가 증인이다. 1999년 대우채 사태는 발행-유통 그 자체는 아니었으되 같은 구조였다. 펀드를 만드는 자와 파는 자가 한 몸인 상태에서 부실 채권이 아무 통제 없이 국민의 펀드로 쓸려 들어갔고, 이후 우리 시장은 운용·판매·보관을 갈라놓는 방향으로 제도를 다시 세웠다. 2022년 FTX 파산의 최종 방아쇠는 고객 자산 유용이라는 범죄였지만, 그 범죄를 가능하게 하고 오래 숨겨준 토양은 자기가 발행한 토큰을 자기 거래소에서 유통시키고 계열사가 그것을 담보로 쌓아 올린 일체형 구조였다. 스페인과 이탈리아의 은행들은 자기 증권을 자기 창구에서 고객에게 팔았다가 국유화와 청산으로 끝났고, 수십만 명의 일반투자자가 대가를 치렀다.
기준으로 관리하면 된다는 것이 당국의 설명이다. 그러나 기준은 그것을 집행할 사람이 있어야 작동한다. 이 구조에서 기준의 집행자는 누구인가. 플랫폼에 고용된 심사 담당 직원이다. 자기 회사나 지배주주가 발행한 주식에서 위험을 발견하면, 그 직원은 자기 대표이사를 — 자기 인사권자를 — 불러 해명을 요구하고 거래를 중단시켜야 한다. 월급을 주는 사람을 조사하라고 설계된 제도를 실효적이라 부를 수는 없다. 기준이 지켜졌는지 확인할 정보마저 전부 그 플랫폼 안에서 생산된다. 아무리 정교한 기준을 고시해도, 이 구조 안에서 기준은 형식만 남고 기능은 사라진다. 그것이 형해화다. 비상장 주식이 조각투자보다 정보 비대칭이 덜해서 예외를 두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오히려 그 반대다.
이것이 단순한 기우가 아님은 우리 시장이 이미 보여줬다. 한 대형 비상장 주식 플랫폼은 오랫동안 모기업의 주식을 자기 플랫폼에서 스스로 심사해 유통해 왔다. 그 주식은 다른 플랫폼에서는 거래할 수 없었고, 투자자는 발행기업과 이해관계로 묶인 단일한 시장 안에서만 그 주식을 사고팔았다. 주가가 급변해도 해명을 요구할 감시자는 그 플랫폼 자신뿐이었다. 문제는 이런 구조를 제도가 원칙으로 막은 것이 아니라, 예외로 합법화할 길을 열어두었다는 데 있다. 플랫폼의 주인이 바뀌어도 그 길은 그대로 남는다. 앞으로 어느 지배주주의 계열사든 투자처든, 그 주식이 예외를 통과하는 순간 같은 구조가 제도의 이름으로 반복된다.
해외를 보아도 답은 같다. 국가 정규거래소가 자기 주식을 상장하는 예가 있지 않으냐고 하겠지만, 그것은 감독당국의 직접 심사라는 전혀 다른 장치 위에 서 있는 예외다. 우리 비상장 주식 플랫폼에 해당하는 다자간거래시설(MTF) 가운데 자기 시장을 자기 주식의 주된 유통시장으로 삼은 예는 찾기 어렵다. 자기 산하에 주식시장을 보유한 영국의 거래소 운영사조차 자기 주식의 상장과 주된 유통은 외부 시장에 맡겼다. 자기가 자기를 감독할 수 없다는, 금융의 가장 오래된 상식 때문이다.
지금 비상장 주식 중개업의 인가 심사가 진행되고 있다. 이대로 예외 규정이 살아 있는 채로 제도가 확정되면, 자기 주식을 자기 시장에서 유통하는 구조는 제도의 이름을 얻어 고착화될 것이다. 대형 사업자의 참여가 시장을 키운다는 반론이 있을 수도, 예외 규정의 엄격한 적용을 통해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시장의 활력은 신뢰에서 나오는 것이고, 신뢰는 원칙에 기반하는 것이다. 금융당국에 요구되는 것은 새로운 결단이 아니라 일관성이다. 조각투자에서 스스로 실행한 원칙을 비상장 주식 시장에 똑같이 적용하는 것. 발행과 유통의 분리는 업계의 밥그릇 문제가 아니라 백 년의 수업료로 얻은 투자자 보호의 기본 문법이며, 원칙에 예외를 허락하는 순간 다음 실패 사례의 무대는 우리 시장이 될 것이다. 이는 시간의 문제일 뿐이다.

![[뉴스언팩] 회사의 이익, 누구의 몫일까? 'N% 성과급' 논쟁](https://i.ytimg.com/vi/yu7khZeLqo8/hqdefault.jpg?width=1920&quality=7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