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비아반도를 가로지르는 사우디아라비아 동서 송유관의 모습이 담긴 미국 위성업체 밴터의 위성사진. 9월11일 발생한 공격으로 송유관이 타격을 받은 이후인 9월13일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촬영됐다. / 사진=로이터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장기화하는 가운데 사우디아라비아의 주요 원유 수송로인 동서 송유관마저 피격으로 가동을 멈추면서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에 다시 비상이 걸렸다. 정부와 정유업계는 10월까지 도입할 원유를 상당 부분 확보한 만큼 단기적인 수급 충격은 제한적이라는 입장이지만 사태가 길어질 경우 부담은 커질 전망이다.

산업통상부는 14일 문신학 차관 주재로 정유·해운업계와 원유 수급상황 긴급 점검회의를 열고 국내 원유 도입과 유조선 통항 상황을 점검했다. 정유업계에 따르면 7~8월 도입 원유는 전년 동기 대비 100% 이상 확보됐으며 9~10월 물량도 전년 대비 90% 이상 확보한 상태다. 당장 국내 정유공장 가동에 필요한 원유가 부족한 상황은 아닌 것이다.



국내 원유 도입량도 회복세다. 중동 전쟁 초기인 지난 4월 원유 도입량은 약 6450만배럴로 2010년 이후 최저 수준까지 떨어졌지만, 정부와 정유업계의 물량 확보 노력으로 빠르게 정상화됐다. 대한석유협회에 따르면 한국석유공사 석유수급통계 기준 7월 원유 도입량은 9318만배럴로 전년 동월보다 9.8% 증가했다.

업계가 충격을 견딜 수 있는 것은 원유 도입처를 다변화한 덕분이다. 중동산 원유 공급 차질 가능성에 대비해 미국, 아프리카 등 비중동 지역에서 대체 물량을 확보하고 정부의 비축유 스와프도 활용하고 있다.

사우디 송유관 가동 중단이 장기화하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동서 송유관은 사우디 동부 유전지대에서 홍해 연안까지 원유를 운송하는 시설로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지 않고 원유를 수출할 수 있는 대표적인 우회 수송로다. 이마저 막히면서 글로벌 원유 공급 불안이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국내 정유업계가 주목하는 것은 물량보다 가격이다. 중동산 원유를 대체하기 위해 미국 등 장거리 지역에서 원유를 들여오면 운송 기간과 해상운임이 늘어난다. 여기에 중동 항로의 위험이 커질수록 선박 보험료와 운송비까지 상승할 수 있다. 원유 조달 비용이 높아지면 정유사의 수익성에도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국제유가 상승이 정제마진 확대로 이어질지는 또 다른 변수다. 휘발유·경유·항공유 등 석유제품 가격이 원유 가격 상승분을 따라가고 정제마진이 개선되면 정유사 실적에 긍정적일 수 있다. 제품 가격 반영이 늦어지면 원가 상승분을 정유사가 떠안게 된다.

올해 3월 도입된 석유제품 최고가격제가 지속되는 점도 업계에는 부담이다. 정유업계는 싱가포르 현물시장 가격(MOPS)과 국내 최고가격 간 격차를 기준으로 산정한 누적 손실이 6월 이미 5조원대에 달한 것으로 추산한다. 정부가 중동 정세의 불확실성에 대응해 최고가격제를 유지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손실 규모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정부는 비축유 스와프 등 가용한 정책 수단을 총동원해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지난달 24일 재시행한 비축유 스와프를 활용하고 수에즈운하 등 우회항로 전환을 지원하는 한편 대체 원유 확보를 위한 운임 차액 지원도 확대할 계획이다.

문신학 산업부 차관은 "업계와 긴밀히 소통해 수급 동향을 철저히 모니터링할 것"이라며 "국내 업계가 대체물량을 원활히 확보해 나갈 수 있도록 다변화 운임차액 지원도 확대하고 현재의 원유 도입 다변화 수준도 지속적으로 유지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업계도 수급 안정에 총력전을 펼친다. 대한석유협회 관계자는 "정유업계는 향후 글로벌 원유 수급 차질이 해소될 때까지 국내 가격 및 수급 안정에 최선을 다하고 글로벌 석유제품 공급 안정화에도 기여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