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교통부 산하 최대 공공기관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2015년 이전한 경남 진주혁신도시 /사진=클립아트코리아


얼마 전 지인 가족이 지방 광역시에서 서울로 이사했다. 나름 성공한 병원장과 공무원 부부, 두 자녀가 있는 가정이다. 큰아이는 해당 도시에 소재한 국내 유수의 명문 대학에 재학하고 둘째는 곧 수험생이 된다고 했다. 직업과 학업 기반이 둘 다 있는 주거지를 포기하고 큰 대출까지 받으면서 이들이 상경을 결심하게 된 것은 "미래를 위해 더 늦기 전 서울에서 살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이었다.

2000년대 전후에만 해도 대전·부산 등 지방 대도시에 사는 것이 '마이너 리그'라는 인식은 없었다. 소득 격차와 기회의 차별은 이전에도 있었다. 지금의 한국 사회에서 서울-비서울의 차이는 '계층 갈등'으로 확장됐다. 지방에 살면 돈을 아무리 많이 벌어도, 명예로운 직업을 가졌어도 박탈감을 지울 수 없다는 게 요즘 세대들의 말이다.



역대 정부가 여야를 막론하고 추진해온 국토균형발전의 취지 자체를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2000년대 1차 공공기관 이전 과정에서 혁신도시 정책은 실패를 경험했다. 여러 전문가들은 교육·의료·문화 인프라를 구축한 후에 공공기관과 민간기업, 주거지를 이전해야 한다고 줄곧 주장했다. 제주영어교육도시와 송도국제학교 등으로 서울 강남·목동의 맹모들이 대거 이주하며 부동산가격을 올린 사례만 봐도 균형발전의 해법이 생각보다 멀리 있는 것은 아니다.

평일 낮 용산역에 가면 호남선을 타고 상경한 노인들이 인파를 이룬다. 이들 대다수가 건강검진 등 진료를 위해 상급병원을 찾는다고 한다. 지방의 의료 인프라를 구축하고 지역 간 의료 격차를 해소하려면 수도권에 집중된 상급병원을 지방으로 이전하는 게 옳다는 점을 방증하는 모습이다.

방탄소년탄(BTS) 광화문 콘서트나 서울세계불꽃축제가 세종·광주에서 열리면 지역 주민들의 자긍심이 될 것이다. 2024년 필리핀아레나에 취재 갔을 때 수도 마닐라에서 차로 한 시간을 가야 하는 거리와 황량한 주변에 놀랐지만 블랙핑크 콘서트가 열린 날 이곳은 10만명이 몰렸다고 했다.



민간기업의 성장을 지원하는 세제 인센티브도 요구된다. 대덕연구단지와 같은 기술도시의 성공과 판교 테크노밸리, 송도 바이오클러스터 등은 비서울 도시들의 모델이 될 수 있다. 아울러 지방으로 이전하는 공공기관 임직원과 가족에게 아파트 특별공급, 생활 지원금 등 혜택을 주는 것은 좋은 유인이 될 수 있다.

과거 세종특별자치시에 이주한 중앙부처 공무원들에게 아파트를 공공분양 한 것에 대해 특혜 논란이 있었다. 특혜가 없으면 직장을 포기하지 서울을 포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수년 전 인터뷰한 국토교통부 산하 공기업의 한 팀장은 "가족들과 떨어져 원룸 크기의 집에 살면서 가장 힘든 순간은 외로움이 아니라, 주말이면 서울로 가는 전세버스의 긴 대기 줄을 보는 것이었다"고 했다.

최근 SNS(소셜미디어)에서 발견한 AI(인공지능) 영상은 '지방 소멸이 곧 국가 위기'라는 경고를 매우 와닿게 했다. 100년 후 사람이 보이지 않는 폐역사로 변한 가상의 부산역이었다. 국가데이터처 조사에 따르면 수도권의 청년(19~39세) 인구 비중은 2000년대 48%에서 2020년대 55%로 상승했다. 정부와 기업의 노력에도 지방 도시는 후퇴했고 서울은 넘을 수 없는 벽이 됐다.

가족의 분열과 개개인의 희생만을 요구하는 거대 담론은 공감을 얻기 힘들다. 균형발전이 미래 세대를 위해 반드시 이뤄야 하는 시대의 숙제라면 개인이 존중받는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권리를 보호하는 정책의 디테일에 더욱 진정성 있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가장 먼저 미완성 상태인 혁신도시의 발전을 고민했으면 한다. 2차 공공기관 이전 계획에서 이같은 문제의식이 일부 반영된 것은 다행이다. 법안 개정이 필요한 부분은 국회가 논의를 이어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