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통을 원형 그대로 지켜온 손이 있다. 장을 담그고 술을 내리고 김치를 삭히는 동안, 손끝의 기술이 다음 세대로 온전히 넘어가도록 지키는 일에 평생을 건 이들이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이런 이들을 '대한민국식품명인'으로 지정해왔다. 1994년 제도 도입 이후 현재 88명이 현업에서 활동 중이다. 근거 규정을 갖춘 정부 지정으로, 민간 타이틀과 구별되는 엄격한 검증을 거친다.
농식품부는 최근 전국 6개 권역 44인 명인의 체험 공간과 지역 관광지, 향토 음식을 잇는 'K미식여정' 3탄, '대한민국식품명인을 만나는 미식 여행' 코스를 공개했다. 명인의 제조 현장을 둘러본 뒤 인근 관광지와 향토음식으로 자연스럽게 발걸음이 이어지도록 코스를 짰다.
명인이 빚은 맛을 좇는 여정에 '외식'이라는 목적지를 하나 더 놓아본다. 활동 중인 명인 중 적지 않은 수가 공방이나 체험관을 넘어 직접 밥상을 차리는 식당 또는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평생 익힌 장맛과 다과, 차, 술맛을 그릇에 담아 손님상에 올리는 곳들이다.
솔리(서일농원)

대한민국식품명인 제62호(청국장) 서분례 명인이 1996년부터 경기 안성에 터를 잡고 운영해온 전통 발효식품 전문 농원이자 슬로푸드 명소다. 약 10만㎡ 부지에 조성됐으며 우리말 '솔'과 마을을 뜻하는 한자 '리'(里)를 따 식당 이름을 '솔리'라 지었다. 수천 개의 전통 옹기 항아리가 상징적인 풍경을 이룬다.
장맛을 내는 재료 하나하나에 정성이 깃든다. 메주는 100% 우리 땅에서 자란 콩으로 쑤고, 간수를 뺀 천일염, 농원 암반수에서 길어 올린 물을 더한다.
대표 메뉴인 '명인 청국장'은 특유의 쿰쿰한 냄새가 없어 남녀노소 편하게 즐길 수 있다. 메주콩이 알알이 살아있고 깊고 구수한 발효향과 간장으로 염도를 맞춘 반찬 등은 깊이가 다르다. 전통장과 과일로 숙성한 '화육불고기', 방풍 간장 베이스의 '수육' 등을 선보이며 식사 후 찻집 '자운'으로 연결되는 동선을 갖췄다.
이연순명인떡

대한민국식품명인 제52호 이연순 명인이 충북 제천에서 운영하는 전통음식 체험 공간이자 떡 카페다. 옛 조리서에 기록된 전통 떡을 현대적인 상차림으로 재현한다.
명인 지정 품목인 '승검초단자'는 찹쌀가루에 생당귀 잎을 넣어 반죽하고 소를 채워 빚은 뒤 잣가루를 묻혀낸 떡이다. 은은한 당귀향과 쫀득한 식감이 조화를 이룬다. 궁중 두텁떡, 흑임자 인절미, 인절미 라떼 등 전통과 오늘을 잇는 메뉴들도 선보인다. 매장 안에는 오방색으로 꾸며진 전통음식 전시가 마련돼 있다. 식사보다는 소규모 체험·교육 중심 프로그램으로 운영된다.
새송정떡갈비

대한민국식품명인 제92호 오명숙 명인이 광주 광산구 송정동 떡갈비거리에서 40년 동안 자리를 지켜온 원년 식당이다. 명인 지정 품목인 '가리구이'는 떡갈비의 원형이다.
1950년대 송정 오일장 근처에서 식당을 하던 한 할머니가 이가 약한 어르신들을 위해 갈빗살을 잘게 다져 구워내던 방식에서 유래했다. 소고기와 돼지고기를 정교한 비율로 섞어낸 대표 메뉴 '떡갈비'는 풍부한 육즙과 식감을 자랑한다. 상차림으로는 직접 담근 김치·장류와 함께 뼛국이 기본 제공된다.
쌍계명차

대한민국식품명인 제28호(우전차) 김동곤 명인이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에서 운영하는 차 문화 공간이다. 김 명인은 어린 시절부터 쌍계사 금송스님, 덕룡스님에게 제다법과 다도를 배웠다. 참나무로 불을 다스리고 무쇠솥 온도를 손끝으로 가늠하는 법을 반복하며 익혔다. 1975년 선친의 뜻을 이어 쌍계명차를 세운 뒤 고문헌에만 남아 있던 우전차 제조법을 연구해 되살려냈다.
자체 다원과 농장에서는 친환경 무농약으로 녹차와 150여종의 산야차를 재배한다. 시그니처인 우전·작설·천고향을 비롯해 발효녹차, 꽃차 등 다양한 전통차를 갖췄다. 경남 건축대상 금상을 받은 건물 1층은 티카페, 2층은 차 박물관으로 운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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