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대 대법원장이 28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으로 출근하고 있다. /사진=뉴스1


이재명 대통령의 대법관 후보자 재제청 요구와 조희대 대법원장의 거부를 둘러싼 양측의 갈등이 돌파구를 찾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다. 조희대 대법원장은 28일 청와대가 대법관 후보 재제청을 요구하면서 사유와 근거를 밝히지 않았다고 재차 지적하며 "국정감사를 통해 입장을 전달하겠다"고 밝혔다. 다음 달 6일 대법원 국감을 앞두고 이 사태가 평행선을 달릴 것이란 예고였다. 이에 더불어민주당은 "조 대법원장이 재제청을 수용해야 한다는 법원행정처 의견에 격노하며 묵살했다는 의혹이 제기된다"며 국감 일반 증인 채택 추진과 함께 탄핵 가능성까지 언급하며 압박 수위를 끌어올리고 있다.

헌법학계에서는 이번 사태의 원인과 법률적 정당성을 두고 시각차가 뚜렷하다. 정태호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대통령의 재제청 요구가 헌법적 틀 안에서 정당하다고 설명했다. 정 교수는 "헌법상 명문 조항은 없지만, 실질적 임명권은 대통령에게 있다"며 "대법원장이 재제청을 거부하고 특정 후보를 고집하는 것은 대법원의 실질적 구성권을 독점하겠다는 의미와 같다"고 조 대법원장을 비판했다.



반면 차진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대통령의 재제청 요구가 헌법 정신을 훼손하는 권한 남용이라고 지적했다. 차 교수는 "대법원장에게 제청권을 준 취지는 삼권분립에 따른 사법 독립과 법원 수장의 전문성을 존중하기 위함이다"라며 "정당한 사유 없이 단지 '사전 협의 관행을 깼다'는 이유만으로 제청된 후보를 거부하는 것은 제청권을 형해화하는 행태"라고 이 대통령을 비판했다.

이처럼 대통령의 재제청 요구와 대법원장의 거부를 보는 시각이 정치권은 물론 법조계, 학계에서도 극단으로 갈리면서 정치적 타협 가능성은 점점 희박해지고 있다. 그러나 대법관 공석 사태가 길어질수록 재판 지연에 따른 국민 피해가 커지는 만큼 양쪽 모두 헌법적 정당성 공방을 벌이기보다 향후 사태 해결에 초점을 맞추고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법조계나 학계에선 조 대법원장이 제청한 대법관 후보(손봉기 부장판사)에 대해 이 대통령이 거부한 만큼 조 대법원장은 재제청 요구를 받아들이되, 그 방식은 조 대법원장이 실질적 제청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넘겨야 한다는 절충안이 거론된다. 청와대가 현재 원하는 대로 기존 후보군 내에서 재제청을 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 대법관추천위원회를 꾸려 재제청을 하는 방식으로 양쪽이 한발씩 물러나야 한다는 것이다. 법조계의 한 인사는 "사법부의 독립과 대통령의 임명권이 모두 훼손되지 않는 방식으로 절충점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충돌을 계기로 대법관 인사 시스템을 개혁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한인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이번 사태를 기관 간 힘겨루기로 볼 것이 아니라 수평적 상호 견제가 가능하도록 제도 전반을 재설계해야 한다"고 짚었다. 한 명예교수는 "대통령과 대법원장이 대법관 추천에 관해 비공개로 사전 협의하는 관행부터 없애야 한다"며 "그 대신 대법원장은 제청 사유를 공개하고, 대통령 역시 수용하지 않을 경우 그 사유를 설명하는 방식으로 국민의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한 명예교수는 "대법관 수가 26명으로 늘어나게 되면 지금처럼 제한된 추천 절차를 유지하기가 더 어려울 것"이라며 "결국 중요한 것은 누가 이기느냐가 아니라 국민주권 원리에 맞게 대법관과 대법원장을 뽑는 절차 자체를 새롭게 설계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