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 연쇄 정보유출 사고에서 AI 공격 가능성이 부상하며 금융당국과 전문가들은 금융권의 공동 대응과 AI 기반 방어체계를 서둘러야 한다고 촉구했다./사진=클립아트코리아


금융권을 상대로 발생한 인공지능(AI) 추정 해킹 사태에서 가장 약한 고리는 외부 접점이었다. 대출모집인 등이 사용하는 외부지원시스템은 아이디와 패스워드가 맞으면 통과될 수 있다고 금융보안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박근혜 정부 청와대 안보특별보좌관과 윤석열 정부 사이버특별보좌관을 지낸 임종인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석좌교수는 "AI 공격을 개별 금융회사의 힘만으로 막기는 어렵다. 국가 차원의 대응과 미국 공조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번 사이버 공격의 공통점은 인터넷·모바일뱅킹 같은 핵심 거래망이 아니라 대출모집인 서비스와 직원용 업무지원시스템, 영업지원시스템 등 외부 접점이 많은 주변 시스템을 대상으로 이뤄졌다는 점이다. 금융당국은 여러 금융회사에서 동일한 IP가 확인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임 교수는 이번 공격의 속도와 규모에 주목했다. 그는 "불과 며칠 만에 전 금융권에서 이처럼 빠르고 대규모로 공격이 이뤄진 것은 사람이 하기 어렵다. 속도와 규모를 보면 사람이 뛰는 것과 페라리가 달리는 것의 차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공격과 관련해서 중국어 기반 AI 침투테스트 도구인 'ARTEX'(아르텍스)의 흔적이 발견됐지만 공격 주체가 중국이라는 근거는 확인되지 않았다. 보안업계에 따르면 신한은행 공격에 이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웹서버에서 'ARTEX-自主渗透测试控制台'(자율 침투테스트 콘솔)이라는 중국어 문자열이 발견됐다. ARTEX는 AI를 활용해 시스템을 탐색하고 취약점을 분석하는 오픈소스 침투테스트 도구다. 다만 이 흔적만으로 ARTEX가 실제 공격에 쓰였다고 단정할 수 없고, 공격자의 국적도 특정되지 않았다.



임 교수도 중국을 공격 주체로 단정하는 데는 선을 그었다. 그는 "주체는 알 수 없다"면서 중국이 공개한 사이버 보안 특화 AI의 제한 조건을 누군가 풀어 공격용으로 바꿨을 가능성을 언급했다. 그러면서 "중국 모델들은 오픈 웨이트로 설계도를 공개하고 보통 가드레일이 약해서 전 세계 누구나 내려받을 수 있는 만큼 중국 측의 소행으로 단정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임 교수는 이번 공격이 시작에 불과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1차 공격으로 한국 금융기관의 방어 수준을 분석한 뒤 특정 기관을 마비시키거나 대규모 자금을 탈취하려는 목적이 있다면 타깃을 정해 2차 공격을 더 정교하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경제·산업 안보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중요 산업의 핵심 시스템이 멈추면 전산 장애를 넘어 국가 경제에 타격이 될 수 있으므로 대통령 직속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 등에 민간을 포함해 최고 전문가들로 구성한 보안 분과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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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공격 우려…AI 방어 도입 시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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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를 이용한 사이버 공격은 해외에서 이미 현실이 됐다. 미국 AI 기업 앤트로픽은 지난해 중국 정부가 지원한 해킹 조직이 자사 AI를 활용해 금융기관 등 30여개를 공격했고 이 중 80~90%를 AI가 수행했다고 공개했다. AI가 해커의 작업을 보조하는 수준을 넘어 공격 과정 상당 부분을 자동화할 수 있는 점을 보여준 사례다.

국내 금융당국도 방어용 AI 도입을 서두르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보안 목적의 AI 활용을 위한 2차 망분리 규제 긴급 완화 조치를 확정했다. 대상은 금융회사와 전자금융업자 75곳으로 1차보다 26곳 늘었다. 금융위는 1차 테스트에서 프런티어 AI가 방대한 소스코드를 수시간 안에 분석해 취약점을 찾아내는 능력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방어체계 자체를 AI 중심으로 다시 짜야 한다고 제언했다. 염흥열 순천향대 정보보호학과 교수는 "AI를 이용한 공격에 대한 대응도 AI를 활용해야 한다. 취약성을 보완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크게 단축할 수 있도록 금융권이 AI 기반 관리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염 교수는 "지원망의 보안체계가 핵심 금융망보다 미흡한 데 원인이 있다. 핵심망이든 지원망이든 구분하지 말고 외부 접점에 대한 보안 관리와 강한 인증체계를 구축·운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제로트러스트(내·외부망 관계없이 모든 접근 요청을 검증하는 보안기준) 기반 보안 체계와 보안 자동화, 이를 뒷받침할 거버넌스와 규제 강화도 주문했다.

박춘식 서울여대 정보보호학과 교수도 "기존 전통적인 방어체계에 AI 기반 방어와 제로트러스트 기술을 결합해 고도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AI가 새로운 공격 방식을 만들어냈다기보다 기존 공격을 훨씬 빠르게 반복할 수 있게 했다고 분석했다. 박 교수는 "개인정보가 많이 유출돼 있는 상황에서 AI를 이용하면 아이디와 비밀번호 등을 활용해 계속 공격을 시도할 수 있다. 기존의 전통적인 공격 방식이 AI를 통해 훨씬 빠르게 자동화되는 것이 문제"라고 설명했다.

유진호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는 내부 통제의 허점을 짚었다. 그는 "업무부서가 정보보호최고책임자(CISO)에게 알리는 절차를 누락하고 자체 또는 협력사를 통해 시스템을 구축해 보안부서 모르게 운영하는 경우가 있다"며 "이런 시스템은 보안 수준이 낮아 공격에 취약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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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형사 보안 수준 격차 해소…"금융권 집단면역 만들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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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회사에 따라 보안 역량의 격차가 큰 점도 문제다. 염 교수는 "중소형 금융회사의 긴급 보안 점검이 필요하다"고 요구했다. 유 교수도 "투자 여력이 부족한 중소 금융회사가 AI 보안 방어체계를 갖춘 클라우드 환경을 활용하는 것은 대안이 될 수 있다. 금융당국이 전문인력을 지원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공격을 완벽히 막겠다는 발상을 벗어나야 한다는 점도 강조됐다. 유 교수는 "해킹 위협을 100% 막는 것은 쉽지 않다. 개별 금융기관을 넘어 금융권 전체로 사이버 레질리언스(복원력) 체계를 확대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를 위해 위험정보의 공유 범위를 공격 IP나 악성코드 수준에서 공격자의 기법과 탐지 규칙, 대응 방안으로 넓혀 하나의 금융회사에 발생한 공격을 금융권 전체 '집단면역'으로 바꿔야 한다는 게 유 교수의 설명이다. 보안 패치와 자산 식별의 책임이 CISO와 정보기술최고책임자(CIO) 중 누구에게 있는지 명확히 하고 CISO에게 책임을 묻는다면 그에 맞는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