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동네 중학교 교문 앞에 걸린 플래카드를 봤다. 야구부 출신 졸업생 두 명이 2027 KBO 신인드래프트에서 롯데와 두산에 지명된 것을 축하하는 내용이었다. 한 명은 고교 졸업을 앞두고 있었고, 다른 한 명은 대학을 거쳐 꿈을 이뤘다.

아들이 다닌 학교였고 과거 학부모 시험감독관으로 교실에 들어간 적이 있다. 당시 시험지를 받자마자 답안지에 이름만 쓰고 종이 울릴 때까지 엎드려 자는 아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머리를 짧게 깎은 야구부 학생들이었다. 새벽부터 밤까지 공을 던지고 배트를 휘두르던 아이들에게 시험 시간은 잠깐 눈붙일 수 있는 휴식이었을지도 모른다. 야구장에 함성이 터질 때면 가끔 그 아이들이 떠오른다.



올해 한국 프로야구는 정규시즌에 역대 가장 많은 1277만 551명의 관중을 모았다. 10개 구단 중 8개 구단이 100만 관중을 넘긴 것도 처음이다. 통계매체 플로우의 집계에서는 KBO리그가 총관중 기준으로 전 세계 프로스포츠리그 7위에 올랐다.

한국 야구는 최고의 호황을 누리고 있지만 화려한 프로무대에 오르는 문은 여전히 좁다. 지난달 열린 2027 KBO 신인드래프트에 고교·대학 졸업 예정자 등을 포함해 1280명이 도전했다. 프로구단에 선택받은 선수는 110명뿐으로 전체의 8.6%였다.

지명은 프로에 들어가기 위한 첫 관문일 뿐이다. 지명 뒤 계약으로 이어지지 않기도 하고, 프로 유니폼을 입어도 1군 무대를 밟지 못한 채 방출되는 선수도 적지 않다. 초등학교 때부터 10년 넘게 야구만 바라본 선수들에게 프로에서 살아남는 길은 드래프트 숫자보다 더 좁다.



플래카드에 이름을 올린 두 명 뒤에는 그렇지 못한 많은 선수가 있다. 그들은 어디로 갈까.

선택지가 많지 않아 대학에 진학거나 독립야구단에서 다시 프로에 도전한다. 대다수는 20대 초반, 야구 외에는 제대로 해본 게 거의 없는 상태에서 유니폼을 벗고 사회로 나가야 한다.

최근 끝난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은 다른 가능성을 보여줬다. 프로선수들로 구성된 한국 대표팀은 슈퍼라운드에서 일본에 0-5로 졌다. 일본 대표팀은 전원 사회인야구, 즉 실업팀 소속이었다. 결승에서 한국이 일본을 꺾고 금메달을 지켰지만, 프로가 아닌 선수들로도 수준 높은 야구가 가능한 일본 야구의 저변은 눈여겨볼 만하다.

일본야구연맹에 등록된 사회인야구팀은 300개가 넘고, 이 가운데 90여개가 기업팀이다. 프로에 가지 못해도 회사에 소속돼 야구를 이어갈 수 있고, 뒤늦게 프로에 입문하는 선수들도 나온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프로 지명에 실패하는 순간 야구선수로 살아갈 길이 사실상 끊긴다.

학교 현장은 조금씩 변하고 있다. 최저학력제가 시행돼 일정 성적에 미치지 못한 학생선수는 보충 프로그램을 이수해야 대회에 출전할 수 있다. 운동을 그만두더라도 다른 삶을 준비할 수 있도록 학습권을 보장하자는 취지로 도입됐다. 하지만 운동에 공부까지 챙겨야 하는 '이중고'로 경기력이 떨어진다는 지도자와 학부모의 하소연이 적지 않다. 더 큰 문제는 학교를 나선 뒤의 길은 여전히 좁다는 점이다.

1277만 관중 시대라면 이제는 야구계가 프로구단에 선택받지 못한 선수들의 삶까지 생각할 때가 됐다. 독립리그와 아마추어 야구의 기반을 넓히고, 낮에는 회사원으로 일하고 저녁에는 운동하는 일본식 실업야구를 기업과 지역사회가 함께 꾸려볼 수도 있다. 일찍 유니폼을 벗은 선수들이 지도자나 트레이너, 전력분석원 등 스포츠산업으로 진로를 전환할 통로도 더 많아져야 한다.

프로야구의 호황은 스타 몇 명만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그라운드에 선 선수들 뒤에는 같은 꿈을 꾸며 수없이 공을 던지고 배트를 휘둘렀다가 어느 순간 멈춘 더 많은 선수들이 있다. 이들이 야구를 그만뒀다고 그동안의 시간까지 실패가 되지 않도록, 다음 길을 열어주는 일도 야구계가 함께 고민해야 할 몫이다.

플래카드에 이름을 올리지 못한 아이들에게도 다음 이닝이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