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잠실구장이 지난 20일 열린 KIA타이거즈와 LG트윈스의 준플레이오프를 끝으로 마지막 공식경기 일정을 마쳤다. 사진은 올시즌 잠실구장을 가득 메운 관중./뉴시스


KIA타이거즈가 LG트윈스를 꺾고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이와 함께 서울 잠실구장에서의 공식경기도 막을 내렸다. 개장 44년만에 잠실구장 시대가 종료됐다.

한국 야구의 상징 중 하나인 잠실구장은 1982년 7월15일 잠실종합운동장 야구장이라는 이름으로 준공 및 공식 개장식을 가졌다. 첫 경기는 개장식 이튿날인 16일 부산고, 천안북일고, 경북고, 군산상고가 참가하는 우수고교초청야구대회였다.



이 대회를 통해 잠실구장 첫 홈런의 주인공도 나왔다. 경북고 류중일은 17일 결승전에서 부산고를 상대로 6회말 솔로 홈런을 뽑아냈다. 하지만 승부는 연장전 끝에 부산고가 4-3으로 승리했다. 류중일은 당시 홈런으로 잠실구장 역사와 함께 늘 거론되는 인물이 됐다.

프로야구 경기가 처음으로 열린 것은 1982년 8월1일이다. 당시 MBC청룡(LG트윈스의 전신)이 롯데 자이언츠를 불러들여 잠실구장 첫 프로야구 경기가 열렸다. 이 경기는 롯데가 6-3으로 승리하면서 잠실구장 프로야구 첫 승의 주인공으로 기록됐다.

1982년에 열린 세계야구선수권대회도 잠실구장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다. 9월4일부터 14일까지 잠실구장을 비롯한 몇몇 구장에서 열렸다. 10팀이 참가해 풀리그로 열린 대회에서 한국은 9승1패로 우승을 차지했는데 이탈리아와의 1차전에서 패한 이후 나머지 8경기를 모두 승리했다.



우승을 위한 마지막 관문이었던 일본과의 경기는 마지막 9차전이었다. 9월14일에 열린 경기에서 한국은 0-2로 끌려가던 8회말 5점을 뽑아내며 5-2의 짜릿한 역전승을 거뒀다. 8회 1점을 뽑아낸 한국은 계속된 1사 3루에서 한국 야구사의 명장면으로 꼽히는 김재박의 개구리 번트가 나오면서 동점을 만들었다. 결국 한국은 8회 한대화의 역전 3점홈런까지 나오면서 5-2를 만들었고 결국 승리했다. 동국대 재학중이던 한대화는 이를 계기로 해결사라는 애칭을 본격적으로 얻게 됐다.

1984년 잠실구장에서 롯데가 역사에 남을 우승을 차지했다. 삼성 라이온즈와 한국시리즈를 치른 롯데는 3승3패로 7차전에서 우승의 향방이 갈렸고 10월9일 잠실구장에서 우승을 확정했다. 당시는 전기리그 우승팀 구장에서 1,2차전에 열렸고 후기리그 우승팀 구장에서 3,4차전이 열린 후 5차전부터는 중립지역인 잠실구장에서 한국시리즈가 열리는 방식이었다.

7차전은 당초 10월8일에 열릴 예정이었다. 하지만 연고전으로 인해 하루 연기됐고 그렇게 휴식일 하루를 얻은 최동원은 5,6차전 13이닝 투구에도 7차전에 다시 선발로 나섰다. 결국 롯데는 6-4로 승리했고 최동원은 이 경기에서 완투승을 거두며 한국시리즈에서 롯데가 거둔 4승을 모두 챙기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겼다.

김일융을 상대로 8회 유두열의 역전 3점 홈런이 나오면서 롯데가 승리했지만 4승을 챙긴 최동원의 역투가 없었다면 롯데의 우승도 없었다. 더 놀라운 점은 최동원이 7번의 경기에서 1,3,5,6,7차전 등 무려 5번이나 등판해 4승과 함께 1패도 있었다는 점이다. 당시 시리즈에서 최동원은 3번 완투했고 투구수는 총 610개였다.

2000년에는 잠실구장 첫 장외홈런이 나왔다. 주인공은 김동주(두산 베어스)였다. 5월4일 롯데전에서 나온 기록으로 김동주는 에밀리아노 기론을 상대로 왼쪽 담장을 넘어가는 홈런을 날렸다. 공식 비거리는 150m였다. 이후 김동엽과 제이미 로맥(이상 SK와이번스)이 2018년에 순차적으로 잠실에서 장외홈런을 때렸고 로맥은 2020년에도 또 하나의 장외홈런을 잠실에서 기록했다.

이밖에도 잠실구장은 크고 작은 다양한 스토리들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잠실구장에서 경기를 치르는 모습을 볼 수는 없다. 한국야구의 성지로 꼽혔던 잠실구장은 자취를 감추게 됐지만 2032년에는 최신 돔구장이 같은 자리에 들어서 새로운 역사를 쓸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