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연천 울산대학교 총장



필자에게 리더가 갖추어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 하나만을 골라보라고 한다면 '열린 귀'를 들고 싶다. '열린 귀'는 자신이 옳다고 믿어온 것마저도 거두어들일 수 있으면서 때로는 자신과 다른 입장을 수용하는 자세를 말한다. 어떻게 보면 쉬운 일 같지만 평범한 일상생활에서도 실천하기가 어렵다. 하물며 복잡다단한 국정운영 과정에서 이런 자세를 견지함은 그야말로 경세가적 자질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김영삼 대통령의 야당 총재 시절(1989년), 소장 교수였던 필자는 통일민주당 의원총회의 '세제개혁 토론회'에서 주제 강연을 한 바 있다. 토론회 말미에 김영삼 총재가 진지한 어조로 "영세 상공인들의 불만이 많은 부가가치세를 폐지하는 당론을 정립하려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라고 질문했다. 필자는 "우리나라 내국세 수입의 30%를 넘는 부가가치세를 폐지하려면 공무원의 20∼30%를 감축하고 상당 수준의 국방비 감축을 실행하지 않는 한 고려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라고 단호히 응답했다. 젊은 교수가 다소 무례한 답변을 했지만, 김 총재는 오찬 자리에서 "오 교수의 진언이 부가가치세 폐지 당론을 재론하게 한 계기가 되었다"라고 덕담을 해주었다.



1998년 외환위기 극복에 직면한 김대중 대통령은 거대 재벌에 대한 엄중한 구조조정에 내심 신중한 입장을 취했지만, 단호한 구조조정의 시행이 긴요하다는 핵심 공직자들의 권고를 받아들임으로써 '열린 귀'를 몸소 실천한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주기적 선거를 통해 국회의원과 대통령을 선출하는 민주시스템 하에서는 '열린 귀'가 체화된 정치 지도자가 많을수록 원활한 국정운영이 가동되고 장기적 국가비전에 접근할 수 있다.

정치 지도자의 가치관과 특정 정당의 이념에 대한 지지기반이 상존한다고 해도 이는 권력 행사의 출발점에 불과하며 궁극적으로 종합적 안목으로 조율을 거쳐 격상된 보편적 목표에 매진해야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정치 지도자는 때로는 양보를 선택하고 타협을 우선시하는 '포용과 긍정'의 지도력을 발휘해야 한다. 혹자는 개혁이 혁명보다 어렵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개혁은 혁명처럼 공포와 위엄이 수반되지 않으면서 견고한 기득이익의 벽을 원만히 극복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도자의 '열린 귀'가 구체적 가치 실현으로 귀결되려면 공동체의 보편적 목표 실현에 기여할 수 있는 역량과 의지를 지닌 인재의 포진이 필수적이다. 주변 강대국과 늘 겨루어야 하는 우리나라의 위상에 비추어 볼 때 상대 국가 고위 공직자의 평균적 경쟁력을 뛰어넘는 '고유의 역량'을 보유해야 국가이익을 방어하고 격상시킬 수 있다는 사실이 결코 과소평가되어서는 안 된다.



이런 점에서 정권 창출에 따른 논공행상은 최소한도에 머물면서 여·야, 지역, 연대의식에 집착하지 않고 해당 분야에서 보편적 경쟁력을 갖춘 인재를 발굴하는 데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특히 국제 경제 및 안보 영역에서의 핵심 공직자는 사실상 거국내각의 차원에서 치밀한 물색을 통해 삼고초려하는 '격상된 임용 관행'을 실행해야 한다.

법무행정을 총괄하는 자리에 지도자의 미래 안위에 초점을 맞추는 인사를 단행한다면, 정권 내부의 심리적 안정 효과는 거둘지 몰라도 미래의 사법정의 실현과는 거리가 멀어질 수 있다. 만일 사법정의 구현에 일관성 있는 진언과 정책목표 지향을 서슴지 않는 인사를 기용한다면 궁극적으로 지도자의 실질적 정당성을 보강해 줄 수 있는 지름길이 될 수 있다.

대통령은 '열린 귀'를 통해 다양한 의견, 경우에 따라서는 대립되는 입장을 경청하면서 최대공약수가 상대적으로 큰 대안을 최종 선택하는 균형적 결정 시스템을 원활히 가동해야 한다. 소위 핵심 사안의 최종 결정이 결정주체들의 원숙한 숙의를 거쳐 도출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추어질 때 대통령→총리→장관→관료로 연결되는 톱다운(top-down)식 권위주의적 수직형 의사결정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

필자가 1990년대 후반, 영국 옥스퍼드 대학의 리더십 포럼에 참석해 접했던 「완전하다고 자칭하는 사람들이 불완전한 팀을 이루지 않도록 스스로 불완전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모여 서로 약점을 보강하고 장점을 살릴 수 있는 원숙한 팀플레이가 리더십의 요체」라는 슬로건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자신의 약점을 인정하고 평소의 시각을 유보하면서, 참모의 예기치 못했던 제언을 격려함으로써 최종 결정의 가치와 수용성을 높이려는 자세야말로 공동체의 보편적 목표 달성에 기여하는 지도자의 진면목이라고 생각한다. 지도자의 '귀'는 정치적 경쟁자와 이념적 반대 그룹에도 열려야 한다. 후세에 남을 경세가로서의 백미는 바로 자신과 자신의 정당을 지지하지 않았던 상당수 국민들의 심경을 헤아리고 자신의 입장에서 한발 물러나 최종 결론을 도출하는 결단 역량에 있다고 한다면 지나친 기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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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연천 울산대학교 총장은 서울대학교 총장을 지냈다. 미국 뉴욕대에서 재정관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서울대에서 공공경제, 정치경제학, 공기업론 등 재정관리 분야에서 30년간 강의·연구를 수행했다. 정보통신정책심의 위원장, 정부투자기관 경영평가 단장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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