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 BYD코리아 관계자가 지난 6월 부산 모빌리티쇼 언론 공개 행사에서 차세대 하이브리드 기술을 탑재한 차량을 선보이고 있다. (우) 완전체로 복귀한 BTS의 공연이 지난 3월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렸다. 각국 팬들이 모인 가운데 세계 190개국에도 생중계됐다./뉴시스, 공동취재단


BYD가 한국 진출을 한창 준비하던 지난해 봄이었다. 조인철 BYD코리아 승용부문 대표를 만났다. 중국차를 보는 시선이 곱지 않을 때였다. 앞서 인천 청라에서 중국 배터리를 탑재한 벤츠 전기차의 화재 때문이었다. 무려 차량 80여대가 불에 탄 대형 사건이었다. 조 대표에게 "중국산 반감 정서가 있는데 한국 시장에서 고전하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그는 의외로 담담했다. "본사에서 마케팅 지원이나 많이 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BMW 산하의 미니 브랜드 총괄본부장을 거친 그는 수입차 업계에서 잔뼈가 굵었다. 하지만 그런 내공과는 별개로 '중국차'라는 꼬리표가 결국 장벽이 될 수밖에 없다고 내심 생각했다.

1년 반이 지난 9월 말, 그 생각은 오판으로 돌아왔다. 뜻밖의 점수가 공개됐다. '829 대 828.' 앞의 점수는 BYD, 뒤는 BMW의 몫이다. 컨슈머 인사이트가 국내 소비자를 상대로 '2026년 자동차 상품성'을 평가한 결과였다. BYD는 한국 진출 뒤 처음으로 평가 대상이 됐다. 그런데도 독일차 주 무대인 한국에서 BMW를 밀어내며 전체 5위에 올랐다. 특히 저렴한 가격을 무기 삼아 '경제성' 부문에선 만족도 1위로 기염을 토했다.



그러나 뜻밖의 반전도 있다. BYD를 사서 뒷면의 영문 엠블럼과 모델명을 떼는 차주들이 있다고 한다. 로고를 검게 가리는 일명 '랩핑' 작업도 이뤄진다. 최근 방송사가 이런 모습을 보도하면서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중국 브랜드 감추기'라는 해석과 '개인적인 디자인 취향'이라는 의견이 맞섰다. 어느 쪽이든 이런 모습을 주요 방송사가 뉴스로 다룬다는 사실 자체가 뉴스다. 중국차가 한국인 일상에 그만큼 깊숙이 들어왔다는 징표다.

현대차 입장도 궁금했다. 'BYD, 나아가 중국차를 어떻게 보느냐'고 물었다. 구구절절한 설명 대신 기사를 하나 보내왔다. 4월 베이징 모터쇼에 출동해 중국차를 접한 현대차 수뇌부의 화두가 '겸손과 혁신'이라는 취지의 기사였다. 세계 3위 현대차그룹이 '겸손'이라니. 중국차 경쟁력을 그만큼 인정한다는 뜻이었다. BYD가 한국에서 질주하는 이유도 짐작할 만하다.

그런데 BYD 질주를 볼수록 하나의 의문이 커졌다. 중국차는 한국 시장에서 보란 듯이 경쟁력을 발휘한다. 그렇다면 한국이 세계적 경쟁력을 가진 분야에도 중국의 문은 그만큼 열려 있을까. 대표적인 게 문화콘텐츠다. 싱가포르 매체인 연합조보는 올 초 BTS가 30여개 도시에서 복귀 공연을 예고하자, 중국 본토가 빠진 사실에 주목했다. 한국 문화콘텐츠의 중국 진출을 제한하는 이른바 '한한령'(한류 제한령)이 여전하다고 지적했다. 중국은 공식적으로 한한령을 부인한다. 그러나 한국 기업이 마주하는 중국 정치와 제도의 문턱은 여전히 높다. 비단 BTS뿐이 아니다. 인기를 누리거나 각광받는 K팝 그룹들도 중국 시장에 마음껏 들어가기 어렵다.



정부 차원에서도 물꼬를 트기가 쉽지 않았다. 산업통상부는 지난 6월 베이징에서 문화콘텐츠를 포함한 서비스·투자 분야의 개방 협상을 진행하면서 이례적으로 어려움을 털어놨다. "양국 자유무역협정(FTA)이 2015년 발효된 뒤 해당 분야에서 14차례 협상을 지속했지만, 입장차를 좁히지 못했다"고 했다. 10년 넘게 존재하던 '벽'을 인정한 셈이다. 다만 산업부는 올 초 양국 정상이 만나 후속 협상을 진전키로 하면서 추가 협상에 나섰고, 이제 실질적인 성과를 내겠다고 다짐했다.

그 벽이 높은 데는 이유가 있어 보인다. 한·중 FTA 문화서비스 협상에 참여한 서재권 박사에 따르면 시진핑 정부는 '중국몽' 실현을 위해 공연∙예술∙게임 등 문화 산업을 전략적으로 육성한다. 한국이 세계적으로 경쟁력을 가진 분야들이기도 하다. 최근 중국 문화여유부는 2030년까지 문화 강국 달성을 진전시키기 위해 창작 역량의 강화 등 54개 중점 사업도 제시했다.

그렇다면 벽을 낮출 열쇠도 중국의 이해관계에서 찾을 필요가 있다.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교수 출신인 데이비드 랙스 등이 제시한 '3차원 협상'에서 힌트를 얻을 만하다. 이들은 협상을 1차원(설득), 2차원(거래 설계), 3차원(판 짜기)로 나눠 접근한다. 가령 BTS 공연을 허락해달라고 요청하고 설득하는 게 1차원이면, 공연과 콘텐츠 공동제작을 묶어 양국에 이익이 되는 방안을 설계하는 건 2차원이다. 3차원은 협상의 구도 자체를 바꾸는 전략이다. 이 대목에서 BYD의 선전을 눈여겨볼 수 있다. 중국차가 한국에서 질주하듯 한국 문화콘텐츠에도 기회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동차를 비롯한 산업에서 양국이 누리는 이익까지 폭넓게 살펴 협상의 판을 짜는데 활용할 필요가 있다. 물론 이런 협상 전략은 실무단에만 맡길 수는 없다. 양국 정상과 고위급의 정치적 결단과 더 많은 대화가 필요한 문제다.

지난 1월 이재명 대통령은 시진핑 주석이 선물한 샤오미폰으로 함께 셀카를 찍었다. 정부는 '한중 관계 복원'을 상징하는 장면이라고 했다. 그러나 양국 시장의 문턱에는 아직도 비대칭적인 모습이 존재한다. 재시동을 건 협상에서는 이 문턱을 낮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양국 관계 복원은 셀카를 넘어 '상호주의'로 완성된다.
김준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