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모습./머니투데이


의과대학 졸업자라는 이유로 자녀를 키우는 현역병의 상근예비역 편입을 막는 병무청 규정은 평등권 침해라는 국가인권위원회 판단이 나왔다.

인권위는 지난 13일 병무청장에 '현역병 입영업무 규정' 제41조 제2항 제2호 단서 조항을 삭제하고, 병역과 자녀 양육·돌봄을 병행할 수 있도록 관련 제도를 개선하라고 권고했다고 26일 밝혔다.



인권위 결정문에 따르면 진정인 A씨는 2024년 2월 의대를 졸업하고 의사면허를 취득했다. 하지만 의대 정원 확대를 둘러싼 의정 갈등으로 1년 넘게 인턴 수련을 받지 않다가 지난해 5월 현역병으로 입대했다. 같은 해 8월 경기 포천시의 한 육군 여단에 배치된 A씨는 올해 1월 아내가 출산하자 자녀 양육을 사유로 상근예비역 편입을 신청했다. 그러나 육군본부는 같은 달 22일 A씨가 국내 의대 졸업자라는 이유로 '편입 비대상'이라고 통지했다.

육군이 근거로 든 규정은 자녀를 양육하는 사람을 상근예비역 우선선발 대상으로 정하도록 한 규정의 단서 조항이었다. '박사학위 과정 입학 이상의 학력자'와 '국내 의·치·한·수의과 대학(원) 졸업자(졸업예정자 포함)'는 제외하도록 한 것이다. 복무 중인 현역병의 상근예비역 편입 역시 이 기준에 따른다.

병무청은 의대 졸업자 등을 제외한 것은 의무장교 등 군 필수 인력 충원과 현역 복무자와의 형평성, 사회 지도층의 병역 이행에 대한 국민 정서와 특혜 시비 등을 고려한 정책적 결정이라고 소명했다.



인권위는 자녀를 키워야 하는 현역병이라는 점에서 의대 졸업자 등과 그렇지 않은 현역병은 본질적으로 같은 집단인데도, 학력이나 전공을 이유로 선발·편입 기회를 달리한 것은 합리적 이유가 없는 차별이라고 봤다. 의무장교 부족 문제 역시 3년에 이르는 복무기간 단축 여부처럼 제도 차원에서 다룰 사안이지 이미 현역병으로 입대한 사람의 복무 형태와는 별개라고 지적했다.

병력 충원에 미치는 영향도 크지 않다고 봤다. 저출생 심화로 자녀를 둔 병사 자체가 줄었고, 그 가운데 의대 졸업자 등은 극히 적다는 것이다. 결정문에 따르면 최근 3년간 복무 중 자녀 양육을 사유로 상근예비역 편입을 신청한 현역병은 2023년 41명, 2024년 46명, 2025년 30명 등 117명이었다. 이 중 학력·전공 제한 대상은 2024년 박사학위 과정 이상 학력자 1명, 2025년 의대 졸업자 1명 등 2명(1.7%)으로 모두 승인되지 않았다. 나머지 115명 중에서는 103명(89.6%)이 승인받았다.

인권위는 또 병역의무자의 학력이 높다고 해서 배우자가 홀로 아이를 키우기 수월하다고 볼 근거가 없고, 공무원·군인의 육아시간 제도 등 다른 육아 지원 제도도 학력을 따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인권위는 "자녀 양육 사유 상근예비역 제도는 병역의무자에게 특혜를 주려는 것이 아니라 병역 이행과 자녀 양육을 함께 할 수 있도록 하려는 제도"라며 "학력이나 전공에 따라 그 기회를 달리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