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바이오로직스는 생산능력 확대를 위한 선제 투자를 바탕으로 성장해왔다. 사진은 인천 송도 삼성바이오로직스 본사 전경./삼성바이오로직스


송도 공장을 처음 봤을 때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규모가 아니었다. 비어 있는 공간이었다. 설비가 들어오지 않은 자리, 계약되지 않은 고객 몫의 공간이 곳곳에 남아 있었다. 거대한 건물 안에는 현재보다 미래가 더 많이 들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당시 현장 관계자에게 물었다. "여기는 어디에 쓰입니까." "아직 모릅니다." 제조업에서는 듣기 어려운 답이었다. 누가 쓸지, 무엇을 만들지 정해지지 않은 공간에 이미 막대한 자금이 투입돼 있었다. 돌이켜보면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성장사는 바로 그 한 문장으로 설명할 수 있다.



대부분 산업은 주문이 먼저다. 물건이 팔리면 공장을 짓고 수요가 확인되면 생산능력을 늘린다. 손님이 오면 방을 만든다.

바이오는 종종 순서가 다르다. 공장을 먼저 짓고 고객을 기다린다. 계약보다 크레인이 먼저 들어오고 수주보다 콘크리트가 먼저 올라간다. 글로벌 제약사는 생산능력이 준비된 회사를 찾는다. 바이오 위탁개발생산(CDMO) 산업에서 캐파(생산능력)는 결과가 아니라 출발점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그 길을 걸어왔다. 공장을 지을 때마다 과잉투자라는 비판이 따라붙었다. 그럼에도 증설을 멈추지 않았다. 비어 있는 공간은 언젠가 채워질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결과는 알려져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세계 최대 수준의 생산능력을 확보했고 글로벌 CDMO 시장 선두권으로 올라섰다. 지금의 매출과 이익은 몇 년 전 비어 있던 공간에 대한 선제적 투자가 만들어낸 결과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성장 공식은 명확하다. 수주가 투자를 만든 것이 아니다. 투자가 수주를 만들었다. 그래서 최근 노사 갈등을 보며 의문이 들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구성원들은 이 산업의 속성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들 아닌가. 생산능력이 경쟁력이고 투자가 미래 수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이들이다.

노조는 영업이익의 일정 비율을 성과급 재원으로 활용하는 이른바 N% 방식의 성과공유를 요구해왔다. 응당 노동조합으로서 제기할 수 있는 요구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현재의 이익을 미래 생산시설과 기술 투자에 다시 투입해야 성장할 수 있는 기업이다. 이 산업에서 이익은 결산서에 찍히는 숫자로 끝나지 않는다. 다음 생산라인을 만들고 새로운 고객을 유치하기 위한 투자 재원이다.

최근 노사 갈등은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법원은 배양과 정제 등 핵심 생산공정을 '보안작업'으로 판단했다. 노조는 예정했던 집회를 취소한 데 이어 26일 총파업을 잠정 연기했다. 생산 차질을 통한 압박이 쉽지 않은 산업이라는 점이 다시 한번 확인된 셈이다.

이번 사태는 노사 분쟁 이상의 의미를 남겼다. 살아 있는 세포를 다루는 CDMO 산업이 일반 제조업과 얼마나 다른지를 보여줬기 때문이다. CDMO에서 생산설비는 단순한 공장이 아니다. 미래 수주를 끌어오는 자산이며 고객의 신뢰를 담보하는 기반이다.

흉년에도 농부는 이듬해에 뿌릴 볍씨를 남긴다. 모두 소비하는 순간 다음 수확은 기약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기업의 이익도 때로는 그런 성격을 갖는다. 오늘의 결실인 동시에 내일의 씨앗이다.

송도의 빈 공간은 부지가 아니다. 미래를 위해 남겨 둔 자리다. 생산능력을 먼저 확보해야 고객이 따라온다는 산업의 논리가 그 안에 담겨 있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를 세계 정상급 CDMO로 만든 것은 이미 체결된 계약이 아니었다. 아직 체결되지 않은 계약을 믿고 먼저 지은 공장이었다. 고객보다 먼저 확보한 캐파였고 수주보다 먼저 집행한 투자였다.

송도 공장을 둘러보던 날, 현장 관계자는 말했다. "아직 모릅니다." 누가 쓸지, 무엇을 만들지 정해지지 않은 공간이었다. 당시에는 텅 비어 있었지만 결국 고객으로 채워졌다. 가장 비어 있던 곳이 결국 가장 큰 성장의 원천이 됐다. 삼성바이오로직스를 키운 것은 이미 확보한 계약이 아니라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믿고 남겨둔 빈 공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