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기업들이 차기 최고경영자(CEO)를 사전에 발굴·육성하는 체계를 강화하고 있다. 인공지능(AI) 확산 등 경영 환경이 빠르게 변하고 CEO 교체 주기가 짧아지면서 갑작스러운 경영 공백에 대비할 필요성이 커졌다.
28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SK·현대자동차·LG 등 4대 그룹은 차기 CEO 후보자들에게 다양한 사업 경험과 전문 교육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이들의 경영 역량을 점검하며 당장 CEO를 맡을 수 있는 인물과 장기 육성 대상을 나눠 관리하는 그룹도 있다.
주요 그룹들이 차기 CEO 후보군 관리에 공을 들이는 배경은 빠르게 변하는 경영 환경 때문이다. 기술 발전 속도가 빨라지면서 CEO에게 요구되는 역량도 달라졌다. 연공과 관리 능력보다 신기술에 대한 이해와 실행력이 중요해졌다. 임기 중 교체도 잦아지면서 CEO 교체 주기는 짧아지는 추세다.
글로벌 헤드헌팅 기업 러셀레이놀즈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주요 상장사에서 물러난 CEO는 234명으로 2년 연속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물러난 CEO의 평균 재임 기간도 2021년 8.3년에서 지난해 7.1년으로 줄었다. 업종별로는 기술 업종 CEO 퇴임이 2024년 40명에서 지난해 20명으로 절반으로 줄었다.
준비된 후보 없이 CEO가 물러나면 새 경영진을 찾는 동안 투자 결정과 사업 전략 실행이 미뤄질 수 있다. 대규모 투자가 장기간 이어지는 첨단산업일수록 경영 공백에 따른 불확실성은 커진다. 미국 인텔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2024년12월 팻 겔싱어 CEO가 물러난 뒤 인텔은 3개월 넘게 임시 공동 CEO 체제로 운영됐다. 겔싱어 CEO가 주도하던 파운드리 사업을 놓고 투자자들의 우려가 커졌으며 회사 내부에서도 혼란이 빚어졌다.
4대 그룹은 각자의 방식으로 경영 공백에 대비하고 있다. 삼성그룹은 CEO 후보군을 이사회에 정례 보고하는 체계를 삼성전자·삼성물산에서 삼성전기와 삼성SDI까지 확대한다. 삼성전자와 삼성물산은 2022년부터 차기 CEO 후보군 관리 현황을 연 1회 이사회에 보고해 왔다. 삼성전기와 삼성SDI도 이번 주 이사회에서 이를 정식 안건으로 다룰 계획이다. 기존에 내부적으로 관리하던 후보군을 이사회가 정기적으로 점검하도록 해 경영진 선임 절차의 투명성을 높이려는 취지다.
SK그룹은 지주회사인 SK(주)를 중심으로 CEO 교체 절차를 체계화하고 있다. SK(주)는 지난해 CEO 후보자 자격 요건, 후보군 관리·평가, 선임 절차 등을 담은 정책을 명문화했다. 갑작스러운 경영진 교체에도 대응할 수 있도록 기존 인사 체계를 공식화한 것이다. 이사회도 CEO 선임과 평가 과정에 관여하고 있다. 독립이사 2명·사내이사 1명으로 구성된 이사회 산하 인사위원회는 대표이사 후보자를 검토하고 현직 대표이사의 경영 성과와 유임 여부 등을 심의한다.
현대차그룹은 매년 주요 직책별로 후임자 선임 계획을 수립하고 후보군을 검증하고 있다. 필요한 자격과 역량을 정하고 내부 임원뿐 아니라 외부 인재까지 폭넓게 검토한다. 이후 단기 및 중장기 후보군을 선정하고 맞춤형 교육과 다양한 직무 경험을 통해 경영 역량을 키우도록 지원한다. 적임자는 이사회 추천을 거쳐 주주총회에서 사내이사로 선임된 뒤 이사회 의결을 통해 대표이사에 오른다.
LG그룹은 지주회사인 (주)LG의 경영진 인사협의체를 통해 주요 계열사 CEO 후보군을 관리하고 있다. 즉시 CEO를 맡을 수 있는 후보와 3~5년 뒤 선임할 장기 후보를 필요한 인원의 2~3배수로 선정한다. 후보자에게 직무 순환과 전문 교육 기회를 제공하고 성과와 역량을 지속적으로 평가한다. CEO 교체가 필요할 경우 인사협의체가 최종 후보자를 정하고, 이사회 심의와 주주총회를 거쳐 대표이사로 선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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